푸틴 대통령은 왜 한국 방문을 희망했나

극동개발과 한러FTA 동시 추진 필요

등록 2013.10.17 09:44수정 2013.10.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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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1월 중에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주변 4강(미·중·일·러) 정상 가운데 첫 번째로 방한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은 올 초부터 논의되었지만 양국 정상의 바쁜 일정 때문에 시간 내기가 결코 쉽지가 않았다. 방문의 형식도 지난 9월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러 정상회담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푸틴 대통령은 하루 정도 서울에 머무르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여러 가지 외교적 정황으로 보았을 때, 우리 정부보다는 러시아가 정상회담을 더욱 희망했다는 시그널이 보인다.

러시아의 극동개발계획

푸틴 대통령이 한국 방문을 강력히 추진한 배경은 작년부터 야심차게 추진해온 극동개발과 남북러 가스관 사업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이다. 푸틴 대통령은 2012년 12월 12일 국정연설에서 "21세기 러시아 발전의 방향은 동쪽을 향하고 있다. 시베리아와 극동은 우리의 거대한 잠재력이며 이 잠재력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내각에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극동투자에 필요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극동개발공사를 설립하였다.

푸틴 정부의 극동개발 핵심은 시베리아 가스를 동아시아 시장에 공급하는데 있다. 러시아는 유럽을 보완할 수 있는 거대 에너지 시장을 동아시아에 구축함으로써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극동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이 프로젝트가 거의 무산지경에 놓여 있다.

2011년 11월 한러 정상은 남북러 가스관 사업의 로드맵에 대해 포괄적으로 합의하고 2013년 9월부터는 본격적인 가스관 공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과 가격 문제로 한러 양국은 이 사업을 착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단된 러시아 천연가스 사업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이 주춤하는 사이 한국은 미국의 셰일가스를 그 대안으로 도입하고 있다. 가스공사는 2011년 말 미국의 Sabine Pass LNG 장기도입계약을 체결하였으며, SK E&S는 2013년 미국 Freeport LNG로부터 2019년부터 연간 220만 톤의 LNG를 수입하기로 하였다. 가스공사가 2017년부터 수입하는 미국의 셰일가스 도입 물량 350만 톤은 750만 톤 규모의 러시아 물량의 반 이상이나 된다. 한국과 러시아가 가격 문제와 북한 통과 문제로 삐걱거리는 사이 한국과 미국은 가격과 공급물량까지 이미 계약해버린 것이다.


러시아는 최근 북한 리스크를 고려하여 동해 해저로 가스관 설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가 비용적 부담을 안고 해저 가스관 설치에 나선 이유는 동아시아 시장에서 셰일가스와 경쟁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의 셰일가스는 2011년 한국에 대한 수출을 시작으로 일본과 중국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러시아가 미국산 셰일가스의 동아시아 시장 장악을 방치할 경우 러시아 천연가스는 이 지역 시장을 놓쳐버리고 극동개발마저 재원 부족으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

가격 측면에서 미국산 셰일가스와 러시아의 천연가스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은 셰일가스를 MMBtu당 10.5달러에 한국에 판매하기로 하였고 이것은 한국이 러시아 천연가스를 tcm당 300달러 수준에서 구매한다면 거의 비슷한 가격 수준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스 가격 결정 방식과 부대조건에 달려 있다. 러시아는 한국에 판매하는 가스 가격 결정방식을 유럽산 수출가격과 석유 가격에 연동시킬 것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이 경우 한국은 중동산 LNG와 비슷한 수준으로 러시아산 가스를 수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석탄연동지수(NAI)를 포함한 실질적인 국제 시세가 반영된 가격 연동을 강력하게 주장해왔다.

러시아 가스 대신 미국의 세일가스가

반면 미국의 셰일가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헨리 허브(Henry Hub) 가격에 의해 공급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유가 상승을 전제로 한다면 미국산 셰일가스가 가격적으로 유리하다. 가격 연동 측면뿐만 아니라 미국의 셰일가스는 부분적으로 한국이 수입하여 재판매가 가능한 반면 러시아 천연가스는 제3자 판매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동안 한국은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 프로젝트를 주저해왔던 것이다. 더욱이 최근 감사원이 한국의 가스 도입 예정 물량이 장기 수요를 초과한 과다 물량이 계약되었다는 지적하였기 때문에 러시아 천연가스 도입은 더욱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2011년 양국 정부가 합의한 가스 공급 안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할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 리스크에 대한 대안으로 해저가스관을 제시하고 가격과 공급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요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지난 정권에서 체결된 국가적 합의사항을 지키겠다는 강력한 약속 이행과 함께 어떤 형태든 러시아산 가스를 받아들이겠다는 의지 표명이 중요하다. 최근 우리 정부는 발전 원료에서 원자력 비중을 절대적으로 줄여 나가겠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는데, 러시아 가스는 친환경적인 자원으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도 LNG 위주의 일방적인 가스 수급체계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통해 공급 안전성과 다양성, 합리적인 가격 메커니즘을 구성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러시아의 주장을 적극 수용하면서 이를 한 차원 발전시켜 러시아와 FTA를 적극 추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러 FTA는 다른 어떤 국가보다 경제적 상호보완성이 높다. 산업별로 볼 때 한국은 주로 러시아에 자동차, 가전제품, 기계류 등 제조업 제품을 수출하고 러시아는 석유, 가스, 철강, 금속제품과 천연자원을 수출하는 보완적인 구조가 매우 뚜렷하다. 이러한 양국 교역구조의 보완성은 두 나라가 FTA를 체결할 경우 각자의 비교우위에 입각한 교역을 통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한러 FTA는 한미 FTA와 달리 심각한 국내갈등을 야기할 만한 걸림돌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은 한러 FTA를 통해 러시아의 비관세장벽을 더욱 낮춰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보다 먼저 러시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으며,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 러시아 관세동맹 국가와도 간접적인 FTA 체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은 또한 한러 FTA 체결을 통해 러시아의 통관제도 개선, 투자자 보호 및 투자분야 확대, 지식재산권 보호, 인력이동, 수산물 쿼터 확보, 에너지자원 협력, 의료관광 분야 등에서 현저한 진전을 이룰 제도적 기반 마련이 가능할 것이다.

극동개발참여와 한러FTA

그러다 그동안 한러 FTA 논의가 진척되지 못한 것은 한국이 얻을 기대이익에 비추어 러시아의 실익은 크지 않는 반면 자국 제조업 시장을 개방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원수출의 비중을 줄이고 자동차, 기계류 등의 제조업 육성을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데, 한러 FTA는 이 분야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는 2008년 이후 한러 FTA의 전과정인 경제동반자협정(BEPA)을 위한 공동연구그룹을 구성하여 2차례 회의를 개최하였으나, 이후 협상을 중단시킨 상태이다.

따라서 한국은 러시아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한러 FTA에 에너지와 극동개발 협력을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이 동아시아의 어떤 국가보다 먼저 미국의 셰일가스를 수입할 수 있었던 것은 한미 FTA 덕분이다. 한러 FTA를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을 보장하고 관세 인하 및 기타 규제를 완화시켜준다면 러시아는 충분히 한러 FTA에 참여할 메리트를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한러 FTA를 통해 러시아는 극동개발에 필요한 한국 정부와 기업의 투자를 적극 유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야 한다.

한국과 러시아 양국은 단순한 원자재와 소비재를 사고파는 전통적 교역 형태를 벗어나 자원, 인프라, 첨단산업과 혁신 분야 등에서 협력 방안을 추진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한러 FTA라는 제도는 절대적인 조건이다. 한국은 러시아와 FTA를 통해 다른 어떤 국가보다 먼저 극동과 시베리아에 진출하여 이 지역을 선점하는 것이 국가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극동지역에서 한국의 경제 영토가 확대되고 러시아와의 협력이 강화된다면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평화와 번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윤성학님은 고려대학교 러시아 CIS 연구소 연구교수입니다.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릴 예정입니다.
#한러정상회담 #극동개발 #러시아 가스관 #미국 세일가스 #한러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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