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종하. 그는 <사람의 얼굴>을 시작으로 앞으로 5년 안에 5권짜리 연작소설을 써낼 계획이다.
성낙선
"그 시절, 전태일이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언제인가? 노동자로 살면서 노동 현실을 바꾸는 일에 전념하다가, 어느 날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88년 올림픽 개회식 날, 스물여덟 살 때 노동 현장을 떠났다. 그동안 최소 7개 회사에서 노조를 설립하는 데 간여했다. 그 당시는 노조 신고필증을 받아내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올림픽 개회식 날, 마지막으로 한 회사의 하청노조연합을 만들었다. 그것이 나한테는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때 하청회사 사장들에게 납치도 되고 협박도 받았다. 그 하청회사 사장들이 한때는 내가 잘 알던 형들이었다. 그런 일들이 있고 나서, 올림픽 개회식이 있던 날 1년 넘게 고생해서 어렵게 신고필증을 받아낸 것이다. 그때, 노동 현장을 떠나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를 계속하고 대학도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서른 살 무렵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습작을 하게 됐다. 그때 마음을 먹었던 게, 소설을 통해서 전태일을 살려내자는 것이었다."
- '전태일을 살려내자'라는 말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내가 처음에 전태일을 알았을 때는 이름 외에 아무 것도 몰랐다. 그러고 나서 전태일을 알게 되고, 조금 더 세월이 흘러 노동 현장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나서는 전태일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 그러면서 전태일 열사가 내가 20대를 보냈던 시대를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적어도 나보다는 잘했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 내 주변에서 자기 스스로를 노동운동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또 전태일을 떠올렸다. 전태일을 앞세워 노동운동을 하는 그 사람들이 과연 아무런 가식 없이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태일을 살려내자는 생각은 그런 고민 끝에 나왔다."
- 그동안 소설을 쓰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먹기는 했지만, 노동 문제에서 완전히 손을 뗄 수는 없었다. 노조가 설립된 뒤에도 회사가 임금을 체불하거나, 또 노동 조건을 잘 지키지 않는 일들이 자주 발생했다. 그런 일들과 관련해서 후배들이 도움을 청하면, 또 그들이 하는 일을 도와야 했다. 그 일을 3년을 더했다. 그러는 동안 소설 쓰는 일을 잠시 중단하기도 했다. 그 후, 93년 들어 한 문학잡지에 응모한 단편소설이 최종심에 올랐다. 응모는 계속 했지만, 등단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생계 문제도 걸림돌이 됐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 때문에 또 중간 중간 소설 쓰는 일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소설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꽤 노력했다. 소설은 누구한테 배운 것이 아니었다. 유명 작가들의 소설을 여러 번 필사했다.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 시기에 발표되는 소설이나 평론은 거의 다 읽었다."
- 이전에 써온 소설들과 <사람의 얼굴>은 주제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습작을 할 때는 심리 묘사에 많이 주력했다. 그러다 문단에 등단을 한 시점이 서른여덟 살이다. 문학사상이 내건 신인상 공모에서, 중편소설 <바람의 끝은 어디인가>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그 소설은 '진실찾기'를 주제로 했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가족사를 다룬 소설이다.
그 소설은 처음에 소설을 쓰려고 했던 시점에, 내가 마음에 품었던 주제를 다룬 소설은 아니다. 그것은 왜 그랬냐 하면,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은 내가 정말로 소설을 잘 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습작하고, 공부하고 그러는 단계에서, 작품을 써서 내 자신한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등단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계속해서 소설 공부를 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마흔 살에 홍천에 내려온 것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 나는 소설을 처음 쓰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그 이야기를 주제로 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잊은 적은 없다."
- 10여 전부터 강원도 홍천에 거처를 정해서 살고 있다. 굳이 홍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홍천은 내가 어려서 살던 시골 고향과 비슷하다. 푸근한 정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힘들었던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평소 나 자신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곳으로 내가 평소 자주 여행을 다니던 강원도, 그중에서도 서울에서 가까운 홍천이 떠올랐다.
홍천을 택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처음 홍천에 내려 왔을 때는, 소설을 쓰는 것보다 마을 사람들하고 어울려 지내는 게 더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엔 홍천에 눌러앉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홍천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홍천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멀리서 혼자 내려와 사는 내게 먹을 것을 건네며 따듯한 정을 나눠줬다.
<오마이뉴스>에 접속해 가끔씩 기사를 쓰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그때 쓴 첫 기사가 내가 살던 산골마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결혼도 하고 싶어졌고, 그래서 지금은 한 여인과 결혼해 홍천에서 일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
- 앞으로 원고지 5권에 달하는 연작 소설을 쓰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 외에도 지역에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소설을 쓰는 작업을 계속 할 예정이다. 연작소설은 이미 구상이 다 되어 있다. 5년 안에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다. 또, 조만간 지금까지 써온 소설들을 한데 모아 소설집을 펴낼 생각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만 쓰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전태일 정신'은 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족이 될 수 없다. 전태일 정신은 사람을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려면, 언제 어디서든 사회 참여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홍천은 내 아이들이 태어난 고향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사는 이곳을 내 편과 네 편, 편을 가르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로 만들어야 한다. 소통이 잘 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내가 지역에서 인터넷 신문을 운영하고, 정당에 가입해 정당 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들 중에 하나다. 그 일들은 내게, 소설을 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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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을 쓰게 된 계기, 전태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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