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모> 표지.
문학동네
충격적으로 읽은 <대한민국 부모>란 책에서 저자들은 자녀 교육 문제로 일그러진 한국 사회의 가정 문제를 깊이 있게 풀어냈다.
대한민국은 자녀 교육의 늪에 빠져서 가정과 사회, 특히 부부를 찢어 놓고 있다. 따지고 보면 엄마가 매니저가 될 정도로, 아빠가 다른 가족을 이민 보내고 기러기 생활을 할 정도로 자녀 교육에 '올인'하게 된 건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과거 아이들은 특별한 조치 없이도 그냥 자랐다. 그 세대를 동경하거나 옳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모든 부부들이 온 정성을 쏟는 육아와 자연스레 이어지는 자녀 교육, 고가의 사교육 그리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흔들리는 중년 남녀의 삶의 방향성을 생각해볼 때, 그 효능조차 검증되지 않은 '아이 성공시키기 프로젝트'에 너무 깊이 매몰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덜컥 들곤 한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내 삶도 변했다. 나는 일상에서 더욱 보수적으로 변해간다. 진보적인 생각을 하던 청년 때와 달리 직장 생활도 '가늘고 길게' 가기를 진심으로 바랄 때도 있다. 적어도 아이가 자라는 동안은 좀 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아내와 나누던 대화의 질도 비교할 수 없이 낮아졌다.
그저 아내가 지치지 않기를, 그녀의 여가 시간을 확보해주기 위해 육아와 가사를 효과적으로 분담해주는 행위, 그 자체에 몰입할 뿐 우리 부부 관계의 깊이, 영혼의 대화, 이 사람과 진정 마음이 관통한 것 같은 느낌은… 감을 잃은 것도 같다. 잠시만 고생하면 될 것 같던 이 부모 노릇은 생각하면 할수록 단기 프로젝트가 아님을 새삼 절감한다. 우리는 그저 이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 결혼을 했던 걸까.
다행히도 아내는 자주 나를 돌아보기를 권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내와 나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환기시켜줄 때가 많다. 요즘 특히 더 그렇다. 바꿔 말하면 나는 그만큼 육아과정에서 산만하고, 갈피를 못 잡고, 나를 잃어버리고 있고 아내와의 관계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 부모>에 등장하는 부부들이 그렇듯 나도 육아 과정에서 표류할 조짐이 보인다.
사회에서 내 고통을 감수하면서도 집에서는 아내를 돕기 위해 '영혼 없는' 가사·육아의 분담을 선택하는 많은 남편들은 가정 안에서 정작 중요한 정서적인 유대감을 잃고 있다. 회사에서 멍 때리면서 집에 가기를 미루거나, 유흥가에서 돈을 주고 연인에게 받았던 위로와 사랑을 구걸하거나, 다른 명예나 성공을 통해 정서적 결핍을 보상받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즐거운 나의 집'을 위해 시작된 중년 남성들의 희생의 종국은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을까. 요즘 나의 고민은 이런 류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4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