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종북·좌파'로 몰면 뭐든 할 수 있다"

[런던 별곡⑨] 런던에 온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

등록 2013.10.17 11:29수정 2013.10.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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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영국 런던에 온 강동균 제주 강정마을 회장이 '기마병 박물관' 앞에서 '해군기지 반대' 홍보를 하고 있다.
15일 영국 런던에 온 강동균 제주 강정마을 회장이 '기마병 박물관' 앞에서 '해군기지 반대' 홍보를 하고 있다.이주빈

제주도 강정마을 강동균 회장이 15일 영국 런던에 왔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국제인권대회에 참석하고 영국으로 건너와 리버풀과 리즈에서 강연을 하고 오는 길이라 했다. 런던에서도 강연을 할 거라 했다. 물론 주제는 7년 동안 싸우고 있는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다.

말이 쉬워 7년이지 그동안 강정마을에선 700명의 주민과 활동가가 연행됐다. 연행된 사건 중 400건이 사법처리를 받았다. 그동안 25명이 구속됐고 현재도 5명이 구속된 상태다. 지금까지 낸 벌금만 1억5천만 원이 넘고, 앞으로 낼 벌금도 약 3억 원에 이른다.

토지보상 등 보상절차를 포함한 제주해군기지 공사 진척률은 약 50%(보상 제외한 실제 공사율은 35%). 몇몇 사람들은 '이미 끝나버린 싸움'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도 강정마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 성직자들은 해군기지 공사장 정문 앞에서 '해군기지 결사반대'를 외치다 경찰에 의해 들려나오고 있다. 끝나지 않은 싸움인 것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한국의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은 '갈등과제 48개 추진 현황'이라는 문건에서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를 '갈등 해소'로 분류했다.

강 회장은 "한국 정부 입장에서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없던 일로 잊히면 최고로 좋은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다 끝난 일처럼 쉬쉬 하고 넘어가면 그 다음으로 좋은 일일 것"이라며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지금 이 순간도 진행형이고, 최악의 경우 해군기지가 건설된다 하더라도 끝나지 않을 싸움"이라고 말했다. "7년이 아니라 앞으로 70년을 더 싸울 수도 있다"고 했다. "평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평화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람이 사이좋게 서로 손잡고 살아가는 것이죠. 또 사람이 사람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자연환경과 함께 사이좋게 살아가는 것이죠. 평화는 평화가 지키는 것이지 무력이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힘으로 지켜지는 평화는 더 큰 무력이 등장하면 무너지고 맙니다."


오후 6시(현지 시각), 런던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고 런던대학교의 한 강의실에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모여든다. 약 25명이 모였는데 유학생 두 명과 영국에서 결혼한 주부 두 명 등 한국인은 모두 4명이었다. 일본인 한 명을 빼곤 모두 영국인이었다. 영국인들이 동양의 작은 나라인 한국, 그곳의 작은 섬마을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까닭은 무엇일까.

19년 동안 싸워 미군기지 자리에 생태 공원 만든 영국 주민들


 1982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 3만 명이 손에 손을 맞잡고 영국 그린햄 커먼(Greenham Common) 미군 기지를 에워쌌다.
1982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 3만 명이 손에 손을 맞잡고 영국 그린햄 커먼(Greenham Common) 미군 기지를 에워쌌다.Greenham Common

 주민들은 19년 동안 싸워 미군 기지였던 그린햄 커먼(Greenham Common)을 생태공원으로 만들었다.
주민들은 19년 동안 싸워 미군 기지였던 그린햄 커먼(Greenham Common)을 생태공원으로 만들었다.Greenham Common

영국 역시 군사기지 문제로 인한 갈등이 많았다. 주로 미군기지 문제였다. 1990년대까지 영국에는 102개의 미군기지가 있었다. 세계평화운동사의 이정표가 된 '그린햄 커먼(Greenham Common) 투쟁' 역시 미군 기지를 반대하는 평화운동이었다.

1981년, 미군의 전략공군기지로 사용되던 그린햄 커먼 기지에 중거리 핵미사일이 배치된다. 명분은 소련의 핵무기에 대응해 영국의 안보를 지킨다는 것이었다. 핵전쟁에 대한 우려가 주민들 사이에 높아갔다.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을 대신해 나이를 초월한 여성들이 기지 철조망 옆에 텐트를 치고 노래하며 춤추며 시위를 벌였다. 1982년 주민들과 평화활동가 3만 명이 손에 손을 맞잡고 미군 기지를 에워쌌다. 반전 평화운동의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미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세상은 '다 끝난 싸움'이라며 외면하고 관심을 껐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싸웠다. 그렇게 투쟁한 지 10년만인 1991년 미군은 핵미사일을 철수한다. 세상은 주민들이 핵무기를 몰아냈다고 환호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군사기지를 주민들에게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9년을 더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만 19년을 싸운 주민들은 영국 정부가 미군 기지로 내줬던 평원을 돌려받아 생태공원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화내지 않습니다, 즐겁게 싸웁니다"

 런던대학교 한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
런던대학교 한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 이주빈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이 런던 빅벤이 보이는 곳에서 해군기지 반대 홍보를 하고 있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이 런던 빅벤이 보이는 곳에서 해군기지 반대 홍보를 하고 있다.이주빈

강 회장은 "제주해군기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거 필연적으로 미군의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기지로 활용될 것"이라며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 열강을 자극해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핵전쟁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제주도는 유네스코 지정한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가 지정 자연과학분야 3관왕입니다. 이곳에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합니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공군기지가 들어서고, 육군부대가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유네스코 3관왕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섬이 군사기지가 되는 것입니다."

강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시절 '해군기지가 필요하지만 제주도민이 원하지 않으면 건설해선 안 된다'고 발언했었는데 대통령이 되더니 더 몰아붙이고 있다"며 "주민들이 그렇게 반대하는데도 강경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국민대통합이냐"고 물었다.

"강정마을에서 했던 똑같은 행태를 지금 밀양에서 하고 있습니다. 수만 틀리면 종북·좌파라고 낙인찍고 외부세력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명분 없는 국책사업도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종북·좌파'로 몰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웃었지만 웃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 때문이었다. "너희들 보상금 더 받으려고 반대 투쟁 하는 것 아니냐"며 싸늘하게 응시하는 눈이 감옥살이보다 힘들었다고. 강정마을은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정부가 토지를 강제 수용한 이후 모든 행정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2시간 30분 동안 강의와 질의가 이어졌다. 강 회장은 "내일은 파리로 가서 강연한 뒤 저녁 비행기를 타고 강정마을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처음 시작할 때는 무슨 이 따위 국책사업이 있나 싶어 화를 많이 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화 내지 않습니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즐겁게 싸웁니다. 노래하고 춤추면서 말이에요. '씽잉, 댄싱(singing, dancing)!"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이 런던 다우닝가 총리 관저 앞에서 관광객들에게 제주해군기지 반대 홍보를 하자 고교생들이 함께 하고 있다.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이 런던 다우닝가 총리 관저 앞에서 관광객들에게 제주해군기지 반대 홍보를 하자 고교생들이 함께 하고 있다.이주빈

#강정마을 #미군기지 #제주해군기지 #박근혜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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