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째 문화재 발굴을 해온 석장리 주민들. 28일 공주 살구쟁이 유해발굴을 마친 후 한자리에 앉았다. 왼쪽부터 전은성(60), 김희환 (73), 박홍래(79), 김종근(76)
심규상
"자 증말 고생들 했어유."
27일 공주 왕촌 살구쟁이에 묻힌 유해발굴이 마무리됐다. 1950년 군경에 의해 억울하게 짧은 생을 마감한 79구의 유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14일 동안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유해발굴 작업을 벌였다. 그래도 예상보다 작업 속도가 빨랐다. 유해 발굴 현장을 총지휘해온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가 비법(?)을 공개했다.
"40여 년간 발굴 현장을 누볐던 석장리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 덕분입니다. 정말 베테랑이에요."
박 교수가 말한 '석장리 어르신들'은 김종근(76), 김희환(73), 박홍래(79), 전은성(60)씨 등 4명이다. 박 교수가 다시 이들을 치켜세웠다.
"한국의 어지간한 구석기 문화재 발굴현장은 다 참여했어요. 유물발굴에 관해서는 최고 전문가예요."'석장리 어르신들'의 주업은 농업이다. 공주 금강변에 있는 작은 농촌마을에서 대대손손 땅을 일구며 논농사와 밭농사로 삶을 잇고 있다. 이들이 유물 발굴 최고 실력자라고?
이들의 얘기를 듣기에 앞서 공주 석장리에 대한 약간의 상식이 필요하다. 한반도 구석기시대 유물의 발굴은 1964년 공주 석장리 금강 변에서 시작됐다. 한반도에는 구석기 시대가 없다던 학설을 보기 좋게 뒤집은 곳이 석장리다. 교과서에 처음으로 구석기 유물 분포지역으로 소개된 곳도 석장리다.
40년간 주업같은 부업, 우리는 '자칭 문화재발굴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