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 사랑하겠어"는 개뿔... 속마음을 들켰다

[마이동풍 아이 키우기③] 스마트폰 떼려다가 한 자 멀어진 아이와의 거리

등록 2013.11.02 20:28수정 2013.11.0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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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엄마 사이를 갈라놓는 얘가 정말 미워! 끊어야겠다."
"정말 그럴 거야? 정말?"
"더 이상 안되겠어."


"그만하면 되잖아", 아이는 던지듯이 그 애를 옆으로 밀어놓는다. 스마트폰 말이다. 아이의 스마트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마련해줬다. 카톡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아이들 사이에 급속히 파고들면서 우리 집 아이는 '친구관계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스마트폰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카톡에 끼고 싶다고. 그때 차라리 그 친구들을 포기하라고 했어야했다.

차라리 친구를 포기하라고 할 것을...

 우리 집 아이는 '친구관계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스마트폰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카톡에 끼고 싶다고. 그때 차라리 그 친구들을 포기하라고 했어야했다.
우리 집 아이는 '친구관계 유지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스마트폰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카톡에 끼고 싶다고. 그때 차라리 그 친구들을 포기하라고 했어야했다.카카오톡

스마트폰이 생긴 후 아이는 카톡은 물론 카스(카카오스토리)까지 종횡무진하며 인간관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학교 복도에선 아는 척만 하던 옆 반 아이도 카톡에서 같이 수다 떠는 절친이 되기도 했고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사촌들의 이야기도 카스에서 확인하고 소식을 주고받곤 했다.

어… 하는 사이 아이는 하루에 한 시간도 넘게 스마트폰에 눈을 박고 있게 됐고 조용하다 싶으면 스마스폰 세계에 퐁당 빠진 상태가 잦아졌다. 친구들이 저마다 학원에 가고 제 할 일들로 바빠 혼자 한가한 방과후 시간이면 어김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아이. 그 요물을 손에 들려준 내가 내 발등을 찍고 싶을 정도였다.

심심한 시간이 너무 많아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건지 아님 스마트폰으로 뭔가 위로를 받고 있는 건지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분명한 사실은 내가 더 이상 못 보겠다는 것. 차라리 그 시간 아이가 낮잠을 잔다면 이리 심사가 뒤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구장창 뒹굴거리는 아이를 보면 그것도 못 볼 꼴이 되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스마트폰은 어찌해야겠다.


"엄마가 마음 약한 거 알지 너. 그래서 끊지는 않고 알뜰폰으로 바꿀 거야."
"알뜰폰은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안 되는 게 많은 게 엄마는 무척 맘에 들어. 파쇼 엄마라고 불러도 좋아!"

스마트폰을 조금만 하면 엄마가 마음 바꿀까 싶었는지 아이는 책을 보기 시작한다. 평소 읽고 싶다는 책들을 한꺼번에 주문했었다. 중고생이 볼 만한 소설이 대부분이고 그 중에 법륜스님의 신작 <인생수업>까지 껴있다. 선생님 추천 도서란다.  


한 시간 책보고 엄마 기미 살펴 잠깐 스마트폰 하는 식이더니 어느 날 아이는 자기 꿈이 바뀌었다고 한다. 중학교 입학할 때 자기 꿈은 작곡가라고 했었다. 그 즈음에 아빠가 기타를 선물하기도 했다. 노래를 좋아하지만 특별한 재능은 없으니 작곡을 해보고 싶었나보다. 그럼 작곡 공부 좀 해볼래했더니 무반응. 뭐여… 했었다. 선물 받은 기타를 먼지 속에 방치하더니 그 사이 꿈이 바뀐 모양이다.

"라디오 대본 작가 해볼래."
"작곡가에서 작가로? 그것도 좋지."

어릴 적 아이의 꿈은 아나운서.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아나운서 되는 길이 몹시 험난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아이는 작곡가를 꿈꾸면서 몇 편의 작곡을 해보기도 했단다. 나한테는 보여주지 않았으니 작곡 솜씨는 확인할 길이 없고. 대본 작가가 되려면 지금 시기에 뭘 해야 하나? 공부 밖에 없나? 작곡가든 작가든 일단 대학을 가야하므로? 아니지. 생각 그만.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지켜봐주는 것이 최선이렷다. 제 길은 제가 뚫든지 파든지 하게.

나도 헤매면서 아이에겐 완벽을 바란 거였나

엄마도 갈 길 멀다 엄마라고 너만 보고 있진 않는다. 인생 이모작 중이지. 가운데 손가락 끝이 짓눌리도록 써대고 있다. 손이 아플수록 겸손 모드가 된다. 아이한테 뭘 지적하나. 남의 인생 베끼는 주제에...
엄마도 갈 길 멀다엄마라고 너만 보고 있진 않는다. 인생 이모작 중이지. 가운데 손가락 끝이 짓눌리도록 써대고 있다. 손이 아플수록 겸손 모드가 된다. 아이한테 뭘 지적하나. 남의 인생 베끼는 주제에...한진숙
사실 엄마도 내 꿈꾸기 바쁘다. 불혹 넘은 나이에 문학 소녀가 내 속에 자라고 있다. 요즘 나를 매료시킨 문체를 가진 작가의 작품을 손으로 베껴쓰기 중이다. 그 작가도 등단 전에 베껴쓰기를 많이 했다고 해서 그 방법까지 베끼는 중이다. 손가락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그거 베끼는 사이에 한 살 더 먹을 것 같지만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게 낫다. 엄마 하는 짓을 보는 아이들은 "왜 따라 써?"라고 묻는다. "공부하는 거야"라고 답한다. 베껴쓰기 공부하는 엄마 옆에 꼬맹이들도 앉아 책을 보거나 한글 쓰기를 한다. 큰 놈은 자기 요새에 은둔 중이고. 

어느 날, "이것 좀 봐줘. 이상한데 없어?"라며 아이는 글을 한 편 내민다. 학교 문학상 모집에 응모할 소설이란다. 요새에 앉아 뭔가 쓰고 있었군. 열심히 들여다본다. 문맥상 비문은 없지만 상당히 난해한 소설. 그래도 군데군데 감정표현이 꽤 정교하다. 누가 아는가. 장차 작가가 될 우리 아이의 첫 번째 습작으로써 후배들이 꼭 챙겨보고 싶어하는 소설이 될지. "괜찮네"라고 말해준다. 문학상 장원은 어렵겠다는 말은 삼키고.

근 3일 동안 소설 집필에 전념하던 아이는 작품을 내고 난 후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아니면 노트북으로 <응답하라 1994> 삼매경에 빠져 "밥 먹자" 부르는 소리도 못 듣거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빠져 있는 아이는 곧 공부 안 하고, 나태하고, 밉고, 안 예쁘고, 노는 아이다.

법륜스님은 아이가 컴퓨터에 빠져있으면 '컴퓨터를 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라고 감사기도 하라고 하셨다. 나가서 나쁜 짓은 안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스님들이 입적하면 괜히 사리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맛있는 저녁 반찬 해서 배부르게 먹여 놓고 아이가 식탁을 떠나기 전에 재빠르게 물어본다.

"가끔 공부 하는 거지?"
"그럼. 수학도 하고 영어도 하고."
"그래? 매일매일? 얼마나?"
"매일 하려고 했는데 이틀에 한 번꼴로…. 다섯 문제씩 풀기, 푼 다섯 문제는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기."
"수학은 서술형이니까 그렇다 쳐도 영어는 그것만으론 안 되지."
"중1 영포자(영어 포기한 자)는 없어? 영어는 정말 나랑 안 맞아."
"중1 영포자면 공포자(공부 포기한 자) 아닐까? 발음기호 읽을 줄은 알지?"

자기 아이가 고등학교 가서야 영어 발음기호를 익혔다는 어떤 엄마 말이 생각나 발음기호 얘기를 꺼냈다. "그건 알지"라는 대답에 일단 안심하고 영어 문장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는 알아? to 부정사 다음은 동사원형인 건 알아? 속사포 질문을 해댄다. 배우긴 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녀석.

문법 따로 공부 안해도 돼. 선생님이 가르치는 문장을 익히면 되는 거야. 영어는 하는 만큼 나와. 네 막내동생이 엄마라는 말을 말하고 쓰기까지 얼마나 자주 엄마라고 발음하고 엄마라고 썼겠니. 영어도 국어처럼 그렇게 여러 번 하면서 익히는 거야. 주절주절…. 긴 잔소리에 피곤해진 아이는 소파에 누워버린다.

"혼자 하기 어려우면 학원도 생각해보자. 아니면 엄마랑 영어 들은 날 1시간씩 같이 복습하자. 무슨 요일이야, 영어 들은 날?"
"월화수목금!"

아이는 재빠르게 대답하고 얼굴을 돌려버린다. 엄마도 일이 있는데 저 혼자 좀 해보지!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욕심이 선명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엄마는 의젓하고, 성실하고, 예쁘고, 밝고, 제 할 일 스스로 하고,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 곧 완벽한 아이를 요구했던 것이다. 팔랑귀고, 툭 하면 외식하고, 돈도 못 벌고, D자 몸매고, 아직도 헤매는 엄마면서. 밥이나 다 소화시킨 다음에 말할 걸.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어"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요새 속에 붙은 격문 살짝 들여다본 아이 책상에 붙은 포스트잇. 아이는 자신의 요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나보다. 격문이 격하게 귀엽다. 그런데... 울기도 하나?
요새 속에 붙은 격문살짝 들여다본 아이 책상에 붙은 포스트잇. 아이는 자신의 요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나보다. 격문이 격하게 귀엽다. 그런데... 울기도 하나? 한진숙
가슴이 무거운 채로 마을 회의에 갔다 오니 꼬맹이들은 장난감 핸드폰으로 놀고 있고 큰 놈은 진짜 핸드폰으로 놀고 있다. 저 요물을 치워야 엄마가 살겠다.

"핸드폰 안 끌래?"
"알뜰폰으로 바꾸는 거 찬성. 스마트폰은 너무 재밌어서 나도 안 되겠어."
"진짜지! 엄마 안 미워 할 거지?"
"응. 안 미워해."

신바람 나서 핸드폰 가게에 갔더니 알뜰폰은 구형 2G인데다 모델도 너무 구려 내가 봐도 정이 안 간다. 게다가 스마트폰 약정이 한참 남았고 폰 새로 사는 비용도 들어야하고. 핸드폰 가게 주인도 스마트폰 쓰다가 2G로 바꾸러 오는 애들이 수없이 많다며 백 명이 바꾸었다면 그 백 명이 몇 달 안 돼 다시 스마트폰으로 돌아가느라 또 비용 들이고 있다 한다.

폰에서 인터넷 기능 끊으면 어떠냐 했더니, 그런 아이들이 와이파이 되는 곳 찾아 거리를 헤맨다, 와이파이 되는 핸드폰 가게 앞에서 죽치고 있다며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아이도 결심하기는 했지만 막상 같이 핸드폰 가게 가서 알뜰폰의 실체를 보고, 가게 주인의 말을 듣더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어이 짜증이 나나보다.

"엄마는 내가 만날 핸드폰만 하는 거 같아?"
"응!"
"어쩌다 하고 있을 때 엄마가 본 거겠지. 내가 내내 핸드폰 하다가 엄마 올 때쯤 공부하는 척 하면 내내 공부한 줄 알 거잖아!"
"그… 그렇지."

체면 구겼다. 키만 크는 줄 알았더니 말발도 세지는 녀석. 결국 자기를 못 믿는 거 아니냐, 공부만 하면 되는 거냐, 변명할 길 없는 일침을 놓고 아이는 요새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아이와 엄마 사이가 한 자는 멀어졌다. 있는 그대로 내 아이를 사랑하겠다, 지켜봐주겠다 했던 다짐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였다. 있는 그대로 너를 사랑하겠다, 공부를 한다면. 너를 지켜봐주기만 하겠다, 공부를 한다면!이었던 거지.(계속)
#공부 #꿈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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