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사과 요구하는 최종범씨의 유족들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 기사였던 최종범씨의 유가족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삼성의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소연
둘째형 옆에 선 고 최종범씨의 부인은 주변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계속 흐느끼다 결국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 측에서 마련한 의자에 앉아 내내 고개를 숙인 채로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기자회견에는 사회진보연대, 대학생나눔문화 등 시민단체 관계자 20여 명도 함께 했다.
최씨가 생전에 다니던 직장의 팀장인 김기수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센터분회장은 노조원들을 상대로 한 표적감사 등을 볼 때 이번 사고가 자살이 아닌 "삼성이 저지른 타살"이라고 말했다.
목이 메는 듯 발언 중간중간 숨을 고른 그는, "항상 우리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종범이의 해맑은 웃음이 가슴에 사무친다"며 "이건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명백히 삼성이 저지른 타살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종범 열사 대책위 공동대표인 권영국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삼성이 분기 10조 원의 순이익을 올렸다는데, 제가 어제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 다녀온 결과 노동자들은 기본급도 없고 노동체계도 없는 말도 안 되는 근로 체계 아래 일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A4용지에 복사된 천안센터 노동자들의 급여명세서를 손에 들고 "여기에는 자재비와 유류비, 휴대폰비, 수리비 미수금 등을 공제하고 난 후 한 달 급여가 19만 원으로 돼 있었다, 삼성 무노조 경영의 실체가 이 급여명세서 하나로 다 나타나고 있다"며 "삼성은 물론 이에 면죄부를 주고 있는 고용노동부와 박근혜 정부도 함께 최종범 열사 죽음에 대해 즉각 사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봉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도 "최종범 열사의 죽음은 삼성그룹에 의한 타살"이라면서 "최 열사 뿐 아니라 백혈병으로 죽어간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삼성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권을 제대로 보장할 때까지 민주노총은 삼성과 전쟁하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전규석 전국금속노조 위원장 등 2명은 이날 최씨가 일한 천안센터를 비롯해 4개 삼성서비스센터를 대상으로 임금산정근거에 관한 증명서 발급 등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천안지방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근로기준법 42조에는 임금대장 등 근로계약에 관한 서류를 3년간 사용자가 보존해야 할 의무가, 39조에는 이를 요청할 즉시 제공해야 할 의무가 명시돼 있다.
대책위는 유족의 뜻에 따라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오는 9일 밤부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천여 명이 삼성 본관 앞에서 투쟁에 들어간 뒤, 10일 오전 11시에 규탄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종범 열사 유족 입장 전문 |
저는 최종범의 작은 형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돈 벌며 행복을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동생의 죽음 전까지 노조라는 단어나 노동 운동은 그저 뉴스에서나 보는 딴 세상 얘기였습니다. 올 해 나이 36인 저는 결혼 계획이 없습니다. 제 관심은 병환중인 홀어머니와 내 형제들이 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 조카들이 나보다는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31일 제 인생의 소중한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제게는 하나뿐인 동생입니다. 지난 33년간을 함께 해온 동생은 비록 성인이 되었다지만 아직도 제겐 업어달라고 조르던, 썰매를 끌어 달라고 떼를 쓰던, 제가 놀러 나갈 때마다 귀찮도록 쫓아다니던 아이였습니다. 그런 동생이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행복을 찾아 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웠고 5년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주려고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부족했나 봅니다.
동생은 이제 싸늘한 주검이 되었습니다. 죽은 동생의 얼굴을 부여잡고 아무리 울어도 동생은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아직 막내의 죽음을 알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더 메어 집니다. 형만 믿으라는 말을 못해 줬던 제 자신이 원망스럽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동생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동생의 죽음 뒤에야 동생이 차마 말을 못한 아픔을 알았습니다.
동생이 자신이 꿈꾸던 소박한 행복을 위해 얼마나 힘들고 위험하게 장시간 일을 하며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동생은 그저 순진하게 일만하고 살다가 노조 활동을 하면서 불합리한 사회 구조에 눈을 뜨기 시작했나 봅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세상의 불합리한 면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나 봅니다.
전태일님에 대해 처음 알고 난 후에 그렇게 훌륭한 분이 계셨는지 몰랐다고 열심히 하면 바꿔지겠죠? 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동생은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었나 봅니다. 일감이 줄어들고 표적감사의 대상이 되었다는 현실에 좌절을 느꼈나 봅니다. 하지만 본인이 노조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알게 되고 갖게 되었던 신념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신념을 위해 결국 하나뿐인 목숨을 희생했습니다. 이제 곧 돌이 되는 사랑하는 딸 별이와 아내, 그리고 목숨보다도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남겨 두고 말입니다.
동생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동생의 죽음 앞에 원망도 해 보았지만 동생을 지켜 주지 못한 형으로서 제가 동생을 위하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동생의 뜻을 지켜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게 평범한 소시민에 지나지 않은 제가 감히 여러분 앞에 있는 이유입니다. 동생은 자신의 죽음이 자신과 같이 불합리한 구조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있는 노동자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은 종범이를 죽게 만든 삼성이 종범이의 주검 앞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생은 자신이 배고팠고 힘들었다고 투정부리려 죽은 게 아닙니다. 동생과 같은 처지 또는 더 열악한 환경속에서 일방적으로 희생만 강요당하는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입니다. 본질을 왜곡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삼성은 언론에 동생의 죽음을 더 이상 모욕하는 행위를 그만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노조탄압으로 종범이를 죽게 만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종범이가 그토록 바랐던 노동조합이 인정되고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탄압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종범이 유언에 대한 대답일 것입니다. 우리 유족들은 이것에 대한 삼성의 답변이 있을 때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가족들이 종범이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신념과 바꾸고 싶었던 현실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아생전 동생은 그저 딸 별이와 아내와 그리고 어머니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랬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소박하더라도 행복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생각하고 그 소박한 행복을 위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현실을 바꿔보려 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젊은 33세 나이에 생명을 희생한 제 사랑하는 동생의 외침에 많은 분들이 단 한 번이라도 귀를 기울여 주시고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2013.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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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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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사과할 때까지 종범이 장례 치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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