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시인이 판결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
신종철
안도현 시인은 왜 재판부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 이런 말을 했을까. 재판부의 판결 내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날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런데 안 시인이 '언어유희'라고 질타했듯이 알쏭달쏭한 부분이 실제로 있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은 전원일치로 허위사실공표죄 위반 부분뿐만 아니라 후보자비방죄 위반 부분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 평결을 했다. 즉, 공소사실은 모두 죄가 되지 않으므로 피고인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평결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와 배심원 쌍방의 의사가 충돌한 경우 과연 어느 일방의 의사를 우월적 지위에 두고 타방의 의사를 이에 기속시킬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는 법의 지배의 이념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적 정당성을 우선할 것인가의 이념적 가치의 갈등, 대립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또 "현행 헌법과 법원조직법,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체계 하에서 이 사건 국민참여재판 판단의 궁극적 주체는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이고, 따라서 이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판결의 최종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므로 권고적 효력만을 가진 (배심원) 평결은 이와 어긋나는 이 법원의 심증을 법률적으로 기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따른 배심원의 의견은 국가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뜻과 의지를 표출하는 것으로 봐야 하고, 다소 지역적, 감성적으로 보이고, 때로는 정치적 색채가 짙어 보이더라도 이를 존중해 판결에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며 "더욱이 배심원의 의견이 다수의견을 넘어 전원일치의 의견이라면 그 뜻과 의지를 판결에 그대로 반영함이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국민의 의사에 따라 도입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의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것이고, 민주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따르는 것"이라며 "이로써 이 사건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은 이 재판부에 대해 사실상의 기속력을 가지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죄가 되나 처벌하지 않는다"는 재판부, 왜?그런데 재판부는 다른 설명을 이어갔다.
재판부는 "다만 배심원의 의견이 법관의 직업적 양심과 근본적으로 충돌할 경우에는 전원일치의 배심원 의견이라 하더라도, 법관의 존재 이유로서 포기할 수 없는 법관의 직업적 양심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 한해서만 기속력을 가진다고 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공소사실은 피고인의 트윗 게재행위가 드러난 사실관계를 기초로 법리적으로 봐 그 내용이 사실적시에 해당하는지, 허위사실인지,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낙선목적과 비방의도가 있었는지, 공익목적의 위법성조각사유가 있는지 여부 등이 쟁점인 사건으로서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사안의 성격상 배심원의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그 판단이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면, 법의 지배 이념의 축으로서 법령의 해석과 적용은 확립된 법리에 따라 통일적으로 평등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법적 안정성 원칙에 비춰 이 사건에 대한 법관의 직업적 양심의 본질적 부분은 적어도 공소사실의 유무죄에 대한 법적 평가 부분"이라며 "따라서 공소사실의 유무죄에 대한 법적 평가 부분에 관한 배심원의 의견은 재판부를 기속할 수 없고, 나머지 양형 부분에 한해 사실상 기속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인으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도 했다.
재판부는 "그러므로 배심원의 전원일치 무죄 평결 내용 중 공소사실이 모두 무죄라는 법적 평가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공소사실로 인해 피고인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률효과 부분에 한해 이를 최대한 판결에 반영함이 상당하다"며 "이로써 '피고인의 행위는 죄가 되나, 이로 인해 피고인을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일응 모순적으로 보이나, 실제 양립가능한 결론으로 귀착한다"고 말했다.
이어 "'죄는 되나 처벌하지 않는다'는 이 법원의 최종 판단에 걸맞은 선고는 형 면제이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형 면제 선고는 적용 법률에 형 면제를 선고할 근거가 있거나 법률상 자수, 자복, 친족관계 등 형 면제 사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것인데, 이 사건에서 형 면제를 선고할 법적 근거나 사유가 보이지 않는다"며 "따라서 배심원 평결을 최대한 존중해 이를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 법원으로서는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죄는 되나 처벌하지 않는다'에 가장 근접한 형에 해당하는 선고유예 이외 다른 형을 선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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