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탄압 박근혜 정권 규탄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10월 24일 오후 서울 세종로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전교조 조합원과 시민들이 전교조 탄압 박근혜 정권 규탄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권우성
전교조에 대해서 법외노조 통보를 했던 박근혜 정부가 법원에서 세게 한 방을 먹었다. 13일 서울행정법원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판결을 내렸다. 이로서 전교조는 계속 합법노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박근혜 정부의 일방통행은 일단 질주를 멈추었다.
우리 사회에, 특히 우리 교육에 전교조가 어떤 공헌을 했는지에 대한 의견은 다를 수 있다. 촌지 거부와 참교육이라는 모토로 대표되는 전교조의 공헌을 부정하는 이는 없지만 여러 비판적인 견해 역시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전교조 이전의 사립학교 천태만상전교조가 없던 시절의 사립학교 교사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전교조가 사립학교에서 무엇을 했는지, 적어도 무엇을 하려고 노력했는지 따져보자.
# 이사장에게 '조인트' 까이던 교장과 교사들인천에 있는 어느 학교. 일제강점기 일본군 장교와 장성 출신인 이사장 형제는 거의 학교에서는 '신(神)'적 존재다. 이사장 형제에게 교사와 학생은 군대로 치면 졸병, 사회로 치면 자기가 먹여살리는(월급을 주는) '종'이나 '하인'쯤 되는 존재들이었다.
학교에 군복을 입고 와서는 행동 하나하나를 시비 걸며 교사들의 조인트(정말로 군홧발로 교사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고 함)를 깠다. 교사와 학생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기 싫다며 교사들에게도 예비군복을 입고 학교 보초를 서도록 했다.
학교 확장 과정에서 공사비를 아끼기 위하여 '돌 하나 나르기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공사 인부로 부려먹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입학 장사와 졸업장 장사를 하면서 그 대가로 뒷돈을 챙겼고,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들은 가차 없이 해고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까지 학교 부지만 1천 평에, 학생 수는 3만 명인 학교 재벌이었다.
교문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돈이라고 흐뭇해했다는 이사장 형제들도 그의 든든한 후원자인 박정희 대통령(이사장 형제 중 형은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사형이 구형된 박정희를 구원해준 인물이며, 동생은 박정희가 사단장이던 시절 그의 상관인 군단장이었음)가 없어진 후 각종 비리가 드러나 구속되면서 학교에서 쫓겨났다.
# 친일파 이사장 전기 읽고 독후감 쓰게 하던 학교서울 서대문의 사립학교 이야기다. 이 학교 설립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제자를 정신대로 보내면서 제자에게 일장기를 머리에 두르게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친일파 여성이다. 그런데, 설립 이후 이 학교 학생들은 친일파는커녕 그를 독립운동가로 알고 있었다. 친일파 설립자를 애국자로 포장한 전기를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했는데, 멋모르는 교사들이 앞장서야 했다.
그런데 2000년 이 학교가 건물을 신축하면서 교정에 설립자의 동상을 세우면서 사건이 터졌다. 이 학교 교사들이 전교조에 가입했고, 역사 단체를 통하여 학교 설립자가 친일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교사들은 설립자가 제자의 머리에 일장기를 두르게 하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경악했다. 교사의 양심상 도저히 친일파를 미화하는 일에 앞장설 수 없다며 동상 철거 운동을 하고 친일파 전기 읽기를 거부하고 나섰다. 그의 제삿날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도 막았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학생들과 졸업생들이 더 크게 분노하면서 교사들의 편을 들었고, 결국 친일파의 동상은 세워진 지 며칠 만에 포클레인으로 철거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에 앞장 선 전교조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교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불순교사 취급을 당했다.
이 학교 외에도 설립자 또는 교장이 친일파였던 사립학교들이 전국에 있고, 이들 학교들의 대부분에는 교정에 친일파 교육자들의 동상이 세워져있다. 그나마 이 학교를 비롯해 동상이 철거된 학교들이 있는데 대부분 전교조 교사들이 시민단체들과 나서서 운동을 벌인 결과들이다.
# 집단 촌지 받으러 가정방문... 반별 할당 못 채우면 책상 빼!서울 금천구의 어느 사립학교 이야기다. 학기 초 교사들이 가정방문을 다닌다. 학생의 생활 환경 파악이 공식적 목적이지만 비공식적 목적은 반별로 할당된 금액을 학부모들로부터 받아 채우기 위해서이다. 가정 방문을 다니면서 집단 촌지를 받아 이를 학교에 갖다바친 것이다. 이 돈을 채우지 못한 교사는 하루 아침에 교무실에서 자리가 없어지고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있지도 않은 동창회비 명목으로 수십 년 동안 졸업생들에게 돈을 받았지만 동창회 장학금 하나 없는 학교였다. 설립자의 딸과 며느리는 교사로 등재되어 있지만 수업이 한 시간도 없는 유령교사였다. 인쇄하는 종이값이 아깝다며 시험지는 모두 8포인트로 인쇄하여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았고, 복사기는 교장실에 갖다놓아 교사들이 수업 자료를 사비로 복사해와야 했다.
학생들 밥값을 수십억 원을 남겨먹은 것 등 각종 비리에 대해서 교사들이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자 민원제기 교사들을 불러 면박을 주고 협박했다. 협박으로 모자라 이에 앞장선 전교조 교사들을 3명이나 해직시켰다.
# 단군 이래 최대 비리사학... 이거 정말이야?이 학교는 전국에서 학생들의 머리가 가장 짧고 스파르타식 교육을 한다고 알려진 강남의 입시명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사들의 양심선언으로 이 학교의 감추어진 추악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소재로도 쓰였던, 단군 이래 최대의 사학비리로 알려진 바로 그 학교이다.
영어, 수학 교사들은 학교 설립자이자 교장이라는 이의 아들에게 비밀과외수업을 해야 했고, 화학교사는 미국 유학 중인 아들의 시험문제를 대신 풀어서 팩스로 미국으로 보내야 하는 수모를 당하고는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수업 시간에 교장 아버지 묘소에 가서 자갈을 고르고 풀을 베게 하고, 체육시간에는 교장이 운영하는 골프장에 가서 골프공을 줍고 돌을 골라내야 했다. 반장은 100만 원, 학생회장은 200만 원, 우등상은 150만 원 등 각종 임명장과 상장을 돈으로 바꾸고, 힘 있는 학부모 자녀들의 내신 성적까지 교사들이 조작해주어야 했다. 졸업앨범, 각종 공사, 커텐 등 학교와 관련된 모든 것이 돈이었다. 교장은 당시 재산이 200억 원이 넘었다고 한다.
학교의 방침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교장에게 불려가서 뺨을 맞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교사들이 전교조에 가입하고 양심선언을 하면서 학교의 흑역사가 드러났다. 이 부패사학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전교조 교사 3명이 해직당했다. 한 분은 정년이 지나 영원히 교직을 떠났고, 나머지 2명은 현재 교육부가 법외노조 통보의 구실로 삼고 있는 바로 '전교조 해직교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