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바람 풍(風)은 소리부인 범(凡)과 형태부인 충(?)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漢典
중국 선종 불교의 기풍을 마련한 혜능(慧能)스님이 설법을 하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 불상 앞 깃발이 흔들렸다. 한 스님이 그걸 보고 깃발이 흔들렸다고 하자 옆에 있던 스님은 깃발이 흔들린 것이 아니라 바람이 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을 지켜보던 혜능은 깃발이 흔들린 것도 바람이 분 것도 아니고 두 스님의 마음이 흔들린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흔들린 것은 깃발일까 바람일까 아니면 마음일까.
바람 풍(風, fēng)은 소리부인 범(凡)과 형태부인 충(虫)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바람을 형상화하여 한자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처럼 風자에 해석도 다양하다. 대체로 뱀(虫)처럼 휘어져 불어오는 바람이 돛(帆)을 움직이거나 겨우내 움츠렸던 벌레들을 움직이게 한 데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인들은 모든 자연현상에 정령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의미의 실체로 여기며 상징화하였는데 바람도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파악한 듯하다.
절의 입구에는 사천왕상이 서 있는데 칼, 비파, 우산, 뱀을 각각 들고 있다. 흔히 칼은 바람처럼 복잡한 문제를 단칼에 자르는 결단력을, 비파는 음악에서의 화음과 같은 조화를, 우산은 때맞춰 내리는 비와 같은 자연의 도움을, 뱀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감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중국인들은 이를 바람이 순조롭게 불고 때맞추어 비가 내린다는 의미로 '풍조우순(風調雨順)'이라고 한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 절에서 기식하며 일하던 시절에 사천왕상 사이에 낙엽과 먼지를 청소하기 힘들어 황제가 된 이후에 모든 절의 사천왕상의 한 발을 들도록 명령했다고 하여 1368년 명나라 건국 이후에 세워진 절의 사천왕상은 한중일 모두 한 발을 들고 있다고 하니 풍조우순의 의미와 함께 주의 깊게 살펴보면 흥미롭다.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지구 자전으로 겨울에 북서풍이 주로 분다. 서북풍을 마신다(喝西北风)라는 표현은 그래서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 굶주린다는 의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제갈공명은 208년 겨울 적벽대전에서 북서풍이 남동풍으로 바뀌는 것을 감지하고 화공을 통해 80만 조조군을 물리친다. 그래서 지금도 모든 준비를 마쳤으나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중국어로 '만사구비, 지차동풍(萬事俱备,只欠东风)'이라고 말한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吹了什么风)'라는 말이 한중 양국에서 함께 쓰이는데 바람이 뭔가 새로운 기운을 불러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혜능스님의 가르침과 달리 어쩌면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바람이 깃발을 움직이게 하고, 마음을 흔들어 새로운 것을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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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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