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풍경 숙지원 주변의 가을 풍경이다.
홍광석
자연의 사계는 늘 감동이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넉넉하지 못해도 그 감동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자연의 색과 맛과 소리를 완벽하게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래서 시골 가을의 색과 소리 그리고 맛을 사진처럼 보여주고 새소리를 녹음처럼 들려주며 맛을 사실적으로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의 한계라는 사실을 알지만 아쉽기만 하다. 하긴 색과 맛과 소리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전할 수 있었으면 사람은 식물이나 동물과도 소통이 가능할지 모른다. 때문에 신은 인간에게 그런 능력까지 허락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얼마 전 수선화를 포기 나눔 하여 옮기고 튤립을 심었다. 달리아는 캐서 얼지 않도록 망에 담에 창고 벽에 걸어두고 생강도 종자를 따로 챙겼다. 괭이질은 내리찍는 반동의 힘과 괭이의 무게로 흙을 파는 일이다. 팔에 힘을 주면 팔은 더 아프고 땀만 많이 흐르는 일이다.
그런 사실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내가 괭이질을 하면 심거나 갈무리는 아내의 몫이었다. 추운 겨울 흙속에서 생명을 키운 수선화와 튤립은 이른 봄이면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꽃을 볼 뿐 아내와 나의 땀을 못 볼 것이다. 현상은 본질에 앞서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알 수 없는 냄새와 먼지, 인공적인 소음,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를 떠날 수 없는 불편함을. 흙을 만지는 일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땀나는 일, 손이 거칠어지고 얼굴이 까맣게 타는 일이다. 그러나 흙을 다루는 일은 자연의 색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계절의 변화를 그대로 볼 수 있는 일이다.
숙지원은 일이 느리다고 채근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뒷밭에 괭이를 두고 앞 텃밭에서 찾더라도 그런 나를 놀리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가끔 옛날 노래를 흥얼거리고 옛 일을 회상하며 혼자 웃는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는 곳이다. 아직 나는 곡식이 영글고 꽃이 피기 까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다 알지 못한다. 시간의 길이와 무게도 헤아릴 줄 모른다. 하지만 남은 달력을 보며 언젠가는 나에게도 그 끝이 오리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고 또 세월이 가면, 나에게 남은 세월은 더 짧아지겠지만 그날을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그냥 지금처럼 흐르는 계절을 보며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