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군산좌. 화재로 소실되기 전 찍은 것으로 보인다.
군산시청
위 교수는 "초창기 군산좌가 있던 강호정(죽성동)은 일본인 거류지 끝자락인 죽성리(竹城里)로, 일본 거류민단 주요 사업의 하나였던 유곽(遊廓)을 조성할 때 후보지로 거론됐던 지역이다"며 "군산좌는 군산은 물론 전북 최초의 옥내 공연장으로 1920년대 개복동에 개관한 희소관(喜笑館)과 함께 군산 지역 극장을 대표했다"고 말했다.
군산좌는 2층 건물로 개관 초기 일본 전통극 가부키(歌舞) 중심으로 공연하였고, 변사가 진행하는 신파극(활동사진)과 연극(국극, 창극)도 상영하는 다기능 공연장이었다. 당시 군산좌는 관객이 표를 사서 입장하면 신발을 보관함에 맡기고 번호표를 받았다. 실내는 좌석이 없는 널찍한 다다미방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방바닥에 앉아 공연을 관람했다.
겨울에는 자부동(방석)을 빌려 무릎을 덮었으며, 차와 모찌(찹쌀떡) 등을 파는 여종업원이 있었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등받이가 있는 기다란 나무 의자가 놓였다가, 철재로 만든 개인 좌석이 등장하였고, 차와 찹쌀떡 대신 껌, 땅콩, 캐러멜, 오징어, 음료수를 팔았다. 그러나 방석은 스팀 시설을 갖춘 제일극장이 개관하는 1963년 이전까지 극장에서 요금을 받고 대여해주었다.
군산좌는 1925년 화재로 문을 닫고 1926년 2월 개복동에 건평 240평 규모의 건물(군산극장)을 신축한다. 당시 군산극장은 연극·영화를 동시에 공연할 수 있는 다기능 공연장으로 원형 무대를 갖추었고, 공연할 때는 사람이 들어가 무대를 돌렸다. 정전(停電)에 대비하여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던 군산극장은 1996년 우일시네마로 바뀌었다가 2007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군산극장과의 거리가 불과 100여 미터 거리(개복동)에 있었던 희소관 역시 2층 건물로 초기에는 오후 1시와 오후 8시 하루 2회 상영하였다. 영화 전문 상영관이었기에 학생 단체관람이 많았다고 한다. 해방 후에는 여러 차례 극장주가 바뀌고 명칭도 남도극장, 국도극장 등으로 바꿔가며 운영되다가 군산극장과 비슷한 시기에 문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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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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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지역 극장을 대표했던 '군산좌'와 '희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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