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삶에 대한 나의 불편함이
더 살기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225일 대한문 미사, 희망을 낳다①]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장동훈 신부

등록 2013.11.29 08:15수정 2013.11.2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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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건너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선 지난 4월 8일부터 225일간 매일 미사가 열렸습니다. 2009년 6월 쌍용자동차에서 정리해고된 후 4년 넘게 거리 투쟁 중인 해고자들을 위한 미사였지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여 7개월 넘게 미사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225일간의 미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기원하며 서울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길거리 미사'를 집전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장동훈 신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기원하며 서울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길거리 미사'를 집전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장동훈 신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이희훈

정리해고자 2646명, 점거파업 77일, 송전탑 고공 농성 171일, 단식 41일, 해고자·가족 24명의 죽음.

2009년 시작돼 4년 넘게 진행 중인 쌍용자동차 사태의 기록들이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아래 사제단)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은 엄연한 타살"이라며 지난 4월 8일부터 대한문 앞에서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미사(아래 미사)'를 시작했다. 통행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서울 중구청이 대한문 천막농성장을 기습 철거한 지 4일만의 일이었다. 

당시 사제단 노동위원장으로서 미사를 처음 제안했던 장동훈 신부(인천교구)는 27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당시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이고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라도 나서지 않으면 이 사람들(쌍용차 해고노동자)이 또 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사실 저희가 이 해고자들을 회사에 복직시키겠다는 명백한 목표나,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뭔가를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우리라도 없으면 또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아서. 이미 주변의 동료들을 너무나 많이 떠나보낸 사람들이라 자살, 절망, 이런 게 너무 쉽잖아요."

당시는 이미 정리해고자·해고자 가족들이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마비와 뇌출혈, 자살 등으로 22명이 숨진 상황. 미사를 시작하기 전인 3월말에도 조합원 한 명이 김포에서 투신자살 했다. 분향소가 있던 천막농성장이 철거된 직후 대한문을 찾은 장 신부는, 엉망진창인 현장을 보며 "무기력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기원하며 서울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길거리 미사'를 집전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장동훈 신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기원하며 서울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길거리 미사'를 집전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장동훈 신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이희훈

"그날 사제단의 나승구 대표 신부님과 함께 해고자들이 임시로 만든 천막에서 노숙을 했어요. 비닐을 덮고 잤는데 사실 거의 못 잤죠. 신부들이 뭔가 해야 할 것 같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무기력했거든요. 이게 뭐하는 짓인가. 노동자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국가와 경찰이 이렇게까지 하나, 서럽다는 생각도 들고…."


이후 나승구 대표와 함께 시작한 매일 미사는 그에게 있어 "무기력함을 극복한 시간"이었다. 사제단의 '매일 미사'에는 대구·청주·부산교구 등 전국의 신부들이 참가했으며 천주교 신자들을 포함해 적게는 50여명, 많게는 300여명까지 모였다. 교회의 설교 격인 '강론'은 누가 지정하지 않아도 신부들이 자원해서 돌아가면서 했다. 

장 신부는 "우리는 영웅이나 선인(善人)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본성 때문에 해고자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미사를 통해 희망이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지만 이제는 너무 흔해져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았다"고 말했다.


"사실 신부들이 쌍용차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어요. 수도자들은 가진 것도 없고요. 우리와 이들은 아무 관계도 없지만, 그냥 끌려 다니고 두드려 맞는 사람들이 마음 아픈 거예요. 사제단은 활동비도 없는데도 대한문 미사 하면서 일부러 이 분들과 밥을 먹으러 다녔습니다. 돌려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주는 것, 저희는 그런 걸 훈련했고 쌍용차 노동자들도 그런 진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쌍용차 사태는 우리 노동의 현주소... "내 불편함이 더 나은 세상 만든다"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서 정부와 사측의 부당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와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한 해고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다.
언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에서 정부와 사측의 부당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와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한 해고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돌아서고 있다.이희훈

장 신부는 또 "이건 단순히 해고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한 노동문제의 현 주소"라며 쌍용차 문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함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경찰은 우리 신부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데모한다'고 얘기하는데, 저희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사제와 수녀들이, 오히려 길거리에 나온다고 욕먹고 비판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해고노동자들과 매일 미사를 드렸겠습니까. 한편으로 쌍용차 문제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상처인 겁니다."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였다. 장 신부는 "노동자는 사회의 기반인 사람들인데도 어느새 최고의 약자로 전락해버렸다"며 "김영삼·김대중·이명박 정부 등에서 '노동악법'들이 통과되고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이후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 예를 들어 사람의 생명마저도 계량화되고 수치화됐다"고 덧붙였다.

"예전에는 전태일 열사 한 명이 분신했는데도 노동법이 만들어지는 등 사회에 경각심을 크게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 하나 죽는 걸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기잖습니까? 몇 백일, 심지어 더위 추위도 가리지 않고 1만 볼트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가는데도 꼼짝을 안 해요. 기업들은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고 해도 묵묵부답이에요.

우리가 미사 주제를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라고 뽑았는데 여기서 사람은 사실 한 사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돌아가신 24명 중 한 분이라고 하면, 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빠이고 아들이고 친구인, 엄청나게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한꺼번에 죽은 거거든요. 쌍용차로 대표되는 지금의 노동문제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사회적으로 다시 한번 검토해봐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왜 이들의 고요한 일상이 파괴가 됐는지, 대체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말이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계속된 225일 간의 미사를 통해 해고자들은 천천히 변해갔다. 장 신부는 처음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서로를 믿지 않던 해고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솔직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우리를 의심하고 경계부터 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미사가 왜 이렇게 짧으냐, 왜 이렇게 성의없이 하냐며 훈수를 둘 정도였다"고 웃었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기원하며 서울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길거리 미사'를 집전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장동훈 신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기원하며 서울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길거리 미사'를 집전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장동훈 신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며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이희훈

"저는 그래요.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은, 유능한 정치인이나 힘 있는 자본가가 만드는 게 아니라 '불편함'이 만드는 거라고 봐요. 네 삶에 대한 나의 불편함, 나만 편하게 잘 살고 있다는 미안함 같은 거요. 그게 거북스러울 수도 있고 피하고 싶어도 더 많이 불편해져야 합니다. 그게 우리 인간성에 내재돼있는 걸 회복하는 길이고, 이 불편함을 못 느끼는 순간 우린 맛이 간 거거든요.

어떤 수녀님은 제게 그러더라고요. '원래는 계절이 바뀌거나 비가 오는 걸 참 좋아했는데, 쌍용차 노동자들을 알게 되면서 날이 흐리면 걱정부터 되더라'고요. 지금 우리 사회의 몰골은 어떤지, 내 모습은 어떤지를 정직하게 좀 봤으면 좋겠습니다."

4월 시작돼 7개월 넘게 이어진 매일 미사는 지난 11월 18일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회사가 있는 평택으로 내려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일단 쉬겠지만, 사제단은 언제고 저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한 장 신부는 마지막 미사에서 나승구 대표신부가 한 강론을 인용하며 말을 마쳤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사제들과 줄 것 없는 수도자들, 그리고 능력 없는 신자들을 기꺼이 동료로 맞아준, 그래서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쌍용자동차 동지들에게 감사합니다."  

#쌍용차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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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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