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 지킴이 고굉무 사장이 음반을 고르고 있다
이상옥
해거름 지킴이 고굉무 사장. 그는 풍채가 좋고, 넉넉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1980년 문을 연 창동의 해거름은 경남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인 카페의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고굉무 지킴이는 해거름의 2대 주인장이다.
해거름은 '해질 무렵'이란 순우리말이다. 아이들이 해질 무렵이면 친구들과 놀다가도 모두 집으로 돌아가듯이 언제나 편안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해거름이다. 해거름을 창업한 분은 정의교 사장이다. 정 사장 당시 해거름은 100가지 종류의 칵테일과 50가지의 위스키 등 각종 술을 구비하고 1500장의 레코드판을 보유하여 명실상부한 음악과 추억의 카페로써 마산 창동의 명물 역할을 톡톡히 했다.
경남 카페의 효시 해거름의 2대 지킴이 고굉무 사장 그러던 정의교 사장이 불의 사고로 카페를 운영할 수 없는 처지가 되면서 뜻하지 않게 2대 사장 고굉무 지킴이가 정의교 사장이 앉았던 턴테이블 앞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고굉무 사장 역시 해거름의 단골이었는데, 농담으로 해거름 카페를 저희들에게 물려 달라고 지나가는 말로 한 것이, 우연찮게 현실이 되고 말았다. 고굉무 사장은 2008년 해거름을 인수하여 지킴이로 해거름의 2대 주인으로 1대 주인의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하며 해거름을 지키고 있다.
고굉무 사장 역시 단골손님이 좋아하는 곡을 기억해두었다가 틀어준다. 손님이 들어온다고 말로 인사하지 않고 이심전심으로 그냥 음악으로 소통하는 것이다.
80년에 첫발을 내디딘 해거름은 제1대 지킴이 정의교 사장이 27년, 2대 지킴이 고굉무 사장이 7년으로 34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뜻하지 않게 해거름을 맡게 된 고 사장은 이제 경제적인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도 모르게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 해거름 운영만으로는 생활하게 힘들기 때문에 낮에는 의류업을 하고 있다.
고굉무 사장은 생활은 의류업으로 하고, 창동의 문화적 상징인 해거름 경영은 봉사활동으로 여기는 듯했다. 이걸 기사로 써서 판넬로 하여 해거름에 게시해두자고 해도 굳이 사양한다. 인위적으로 해거름을 알리고 싶지 않다는 것.
가톨릭 신자인 고굉무 지킴이는 해거름만큼이나 융숭 깊어 보였다. 세상살이에 찌들고 지친 이들이 해거름으로 찾아오면 말벗이 되어주며 LP판으로 추억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을 보람으로 느낀다. 고 사장은 수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주다보니, 그걸 책으로 묶어도 될 정도이다. 조만간 해거름 이야기를 책으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