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뼈에 금 갔는데도 일하러 나갔다"

우체국 집배원 노동실태 사례 모음... 아프고 다쳐도 제대로 못 쉬어

등록 2013.12.01 19:59수정 2013.12.0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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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지럼증과 현기증을 호소하던 집배원과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던 집배원이 세상을 떠났다.

집배원들이 각종 질병과 사고에 노출됐다. '집배원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방안'(노동자사회연구소 발간, 공성식·김동근·이진우 연구원)이 전한 집배원의 노동실태는 그들의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이 사고와 재해를 증가시킨다고 경고한다(관련 기사 : 우편물 받으셨나요? 집배원은 아픕니다).

매일 우리에게 각종 우편물을 전해주는 집배원들은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 걸까. 집배원 246명이 노동자사회연구소 조사에 응하면서 전한 사례들을 소개한다(개인정보는 비공개했다).

과일상자 나르고 계단 오르내리고... 성치 않은 어깨·허리

 설연휴를 일주일여 앞두고 서울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우체부와 택배직원들이 가득 쌓인 우편물들을 분류·정리하고 있는 모습.
설연휴를 일주일여 앞두고 서울 동서울우편집중국에서 우체부와 택배직원들이 가득 쌓인 우편물들을 분류·정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연구소 조사에 참여한 집배원 대부분은 매일 계속되는 격무로 온 몸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특히 허리 통증이나 어깨 결림 같은 근골격계 증상이 심각했다. 조사 대상자의 74.6%는 어깨·허리·무릎 등에 통증이 있다고 털어놨다. 자동차 제조나 운수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보다도 근골격계 증상이 심했다.

이들은 주로 우편물을 잔뜩 싣고 오토바이 운전을 하다 보니 어깨 근육이 아프다고 설명했다. 특히 명절 때는 과일상자처럼 무게가 나가는 소포를 배달하는데다가 우편물량 자체가 늘어나기 때문에 허리에 무리가 온다는 증언이 많았다. 배달하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많아 무릎 역시 성치 않았다. 배달에 앞서 우편물 분류 작업은 목에 무리를 줬다.

[사례①] "주로 편지를 구분함에 넣을 때 고개를 계속 움직이니까 목이 뻐근할 때가 많아요. 편지를 우편함에 넣을 때 한 쪽 팔만 움직이니까 어깨도 아파요. 허리는 떨리는 오토바이를 오래 타다 보니 아프고, 다리는 많이 걷다보니 겹질릴 때가 많아요. 계단을 많이 오르내리다 보니 무릎도 아파요."


[사례②] "집배원들은 무릎이랑 팔목이 아파요. 우편물을 들고 다니니까. 주택가 배달을 맡는 사람들은 빌라 배달이 60~70%인데,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힘들어요."

[사례③] "양쪽 다리 연골이 달아서 내시경으로 정리했어요. 왼쪽 무릎은 특별기 때 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내려오는데 갑자기 주저앉았어요. 오른쪽 다리는 겸배(다른 집배원 물량을 대신 배달)를 3주 정도 연속 하면서 아프게 됐어요."


사고를 겪은 집배원들도 있었다. 10명 중 5명은 우편물을 배달하다가 교통사고를 겪었다고 답했다. 특히 "지난해 겨울에 빙판길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 업무를 하다가 넘어졌다"는 등의 증언이 이어졌다.

아파도 쉬지 못하는 집배원... "특별기 때는 5시간 자고 일해"

집배원들은 일하는 시간이 길거나 물량이 많을 때 유독 아프거나 사고가 일어났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집배원은 "물량에 따라 사고가 많이 난다"며 "등기가 많고 소포가 많으면 마음이 급해져 사고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동시간은 그야말로 '살인적'이다. 일반노동자보다 연평균 1100~1200시간을 더 일한다. 매달 청구서가 몰리는 '폭주기'와 명절·선거기간인 '특별기'에는 법정 주당 근무시간인 60시간을 초과해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체감온도가 영하 23도까지 내려간 지난해 2월 2일 오전 서울중앙우체국 집배원이 배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체감온도가 영하 23도까지 내려간 지난해 2월 2일 오전 서울중앙우체국 집배원이 배달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집배원들은 "특별기 때는 7시에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일하기도 한다", "명절 때는 주말을 포함해 하루에 17시간 정도 일해본 적도 있다", "특별기에는 하루에 5시간씩 자면서 일한다"고 하소연했다. 물건을 나르면서 몸을 많이 쓰는데다가 노동시간까지 길어지면서 집배원들의 질병·사고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고서는 진단했다.

출근을 못한 다른 집배원의 배달 물량을 대신 소화하는 '겸배'도 업무과중 요인 중 하나다. 이들은 1인당 한 달 평균 5.7회 정도 겸배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겸배를 하면 노동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 집배원은 "(겸배를 하면) 정신적·육체적으로 힘이 들고,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겸배의 고충을 알다 보니 아프거나 다쳐도 선뜻 쉬지 못하는 집배원들도 있다. 인력이 워낙 부족하고 업무량이 많다 보니, 아픈데도 나와서 일해야 하고 병원도 마음대로 못 가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특히 폭주기나 특별기 때 쉬면 동료들이 더 고생해야하기 때문에 참고 일한다는 답이 많았다.

[사례④] "구정 때 계단에서 넘어져서 갈비뼈에 금이 갔다. 그런데 특별기 겸배가 시작돼 어쩔 수가 없이 그냥 일하러 나갔다."

[사례⑤] "내가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고생한다. 겸배가 제대로 안돼서 물량이 쌓이면 팀원들이 욕을 먹으니 휴가 쓸 때 눈치가 보인다."

'인력충원' '겸배 축소'로 노동시간·노동 강도 완화해야

집배원들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장 '인력충원'이 돼야 한다고 답했다. 77.1%가 개선사항 1순위로 '인력충원'을 꼽았을 정도다. 한 집배원은 "겸배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인력충원은 무조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 역시 "우정본부가 매년 수백 명에서 천 명이 넘는 규모의 집배원 인력 충원에 합의하고 추진해왔지만 실제로 인력충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인력을 충원해 집배원의 노동시간·노동 강도를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겸배와 시간외·무료노동을 줄여 과도한 우편 물량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배원 #우체국 #우정사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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