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남상일
박민희 기자
- 국악인들에게 국악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국악이 더욱 널리 사랑받지 못한 이유를 대중에게 돌릴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언론이나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이 크다. 국악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려면 미디어에서 국악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음악방송을 하지만 국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몇 되지 않는다.
일본의 전통예술인 노(能, 가면악극의 일종)나 가부키는 현재까지도 고유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전해 내려온다. 우리나라는 창극만 하더라도 대중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 버렸다. 예전에는 옛날 것 그대로 했는데 최근 창극 작품들은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대중의 기호에 맞추려다 보니 국악을 들려주려다 다른 것을 들려주게 되는 것이다.
특강을 다녀 보면 많은 분이 국악을 좋아하신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먹어보지 않았으니 맛있는지, 맛없는지 모르는 것이다. 진정으로 국악을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듣고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유럽에서는 오래된 건물 그대로 지금까지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와집 같은 옛 건물을 다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다. 문화예술의 유행에 너무 민감한 탓이다."
- '국악인 남상일'에게 국악은 어떤 의미인가?"일각에서는 우리 음악을 '한'(恨)의 문화라고 하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한다.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처럼 가난하고 눈이 멀어야 소리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음악은 흥의 문화이고 신명의 문화다.
우리는 슬퍼도 노래를 부르는 민족이다. 상여를 옮길 때, 곡을 할 때 내는 소리도 다 노래다. 또 국악이 전부 느리고 슬프고 한스러운 음악은 아니다. 판소리를 들어보면 랩보다 박진감 넘치는 것들도 많다. 국악은 흥과 신명이 제대로 어우러지는 음악이다.
판소리는 정말 훌륭한 예술이다. 최근 '창극' 판소리가 '뮤지컬' 판소리에 너무 밀려 있다. '뮤지컬' 판소리는 판소리에 나오는 인물들의 역할을 나눠 뮤지컬처럼 하는 형식이다. '창극'이 아닌 '극창'이 돼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다른 예술가들이 판소리를 지나치게 현대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고 본다. 춘향이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댕기 머리를 해야 춘향이다. 중국 경극에 파마를 하고 나오는 배우는 없다. 일본 가부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이들의 전통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다.
전통은 전통대로 지켜나가야 한다. 전통도 클래식인데, 푯값이 십만 원을 호가하는 해외 오케스트라가 내한하면 앞다투어 보러 가면서 우리 클래식인 국악 공연은 몇만 원만 돼도 비싸다고 한다. 정신적인 것을 중시하는 인도에서는 그 나라 음악을 하는 사람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볼쇼이 발레단이 와도 비할 데가 못 된다고 한다. 이것 또한 그들의 전통에 저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공연할 때마다 늘 기억에 남지만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이전에 KBS '아침마당' 고정 패널로 출연할 때 병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마지막 생을 두 달 남겨 놓은 여성 환자가 있었다. 보호자인 남편분이 '아내가 남상일 씨 팬이다'라며 환자분을 꼭 한 번만 만나달라고 하셨다. 환자분이 저를 보고 '죽기 전 남상일 씨 같은 분을 한 번 보는 게 소원이었다'며 우셨다. 저도 같이 울었다. 예술인으로서 제가 '주는' 것보다 그 환자분이 '받은' 감동이 훨씬 큰 것 같았다. 그것이 우리 소리의 힘이고 전통의 힘이 아닐까 한다."
-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편안하고 익숙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꿈이다. 국악을 대중화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남상일 그 판소리꾼, 그 사람이 하는 게 재밌지'라는 말을 듣고 싶다. 저 자신이 곧 국악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 올해 마무리를 함안에서 하게 됐다. 관객에게 전할 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해준다면."12월 28일 함안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송년국악콘서트'는 외국인들이 와도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한 해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던져버리고, 같이 울고 웃고 노래 부르다 가셨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이 우리 음악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는 '계획'이 없다. 사람이 계획대로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자는 입장이다. 대외적인 계획은 창극을 우리 식의 소박하고 전통적인 무대로 마련하는 것이다. 별개로 남상일의 개별적인 쇼를 펼치고 싶은 것도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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