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빈자에게 같은 벌금, 과연 평등인가

형법에서 벌금제도의 의미... 경제적 사정에 따라 벌금 매기는 일수벌금제 도입 필요

등록 2013.12.10 09:30수정 2013.12.1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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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은 경제적 사정으로 벌금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될 경우 환산하는 금액을 1일 5만 원에서 금액을 상향해서 1일 10만 원으로 선고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벌금 100만 원이 선고되었지만,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20일이 아닌 1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벌금을 납입하지 않은 사람은 노역장에 유치한다. 지난 2011년에 헌법재판소는 벌금 미납자를 노역장에 유치하여 신체를 구금하는 형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2011헌바151)을 했다.

당시 사례를 보면,

홍길동은 2010년 2월 절도죄로 벌금 6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5만 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동안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내용의 판결을 선고받았다. 그 후 검사는 2010년 12월에 홍길동이 벌금을 납입하지 않은 이유로 노역장유치 집행을 했다. 홍길동은 2011년 1월, 검사의 노역장유치 집행처분에 대하여 이의를 신청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청구인의 주장을 살펴보면,

① 노역장유치는 벌금이나 과료를 선고받은 자가 벌금 등을 미납하는 경우 납입을 강제하거나 대체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들에 대하여는 벌금의 납부를 강제하는 효과가 없어 벌금형의 집행률을 높이는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
② 벌금의 분납·연납제도로도 벌금형의 집행률을 높이거나, 사회봉사명령으로 벌금형을 대체집행할 수 있음에도 노역장 유치를 강제하는 건 너무하다.
③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게 그보다 무거운 징역형을 집행한 것과 다를 바 없어 '책임의 정도를 초과하는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는 책임주의 원칙에도 반한다.
④ 벌금을 납부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들을 벌금을 납부할 경제적 능력이 있는 자들과 차별한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청구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까닭은,

① 노역장유치는 벌금미납자가 노역장에 유치되는 순간 유치일수만큼 벌금액이 탕감되므로 원칙적으로 벌금 납입의 대체수단이다. 노역장유치는 벌금형에 대한 환형처분이라는 점에서 노역형 자체를 내용으로 하는 형벌과는 구별된다.
② 벌금형에 대한 노역장 유치는 이미 형벌을 받은 사건에 대해 또 다시 형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형벌 집행 방법의 변경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중처벌금지원칙과는 관련이 없다.
③ 2009년 제정된 '벌금 미납자의 사회봉사 집행에 관한 특례법'은 경제적인 이유로 벌금을 낼 수 없는 사람의 노역장 유치로 인한 구금을 최소화하고있다. 또한 특별법에선 경제 능력이 없는 벌금 미납자에게 노역장 유치에 앞서 사회봉사로 대체하여 집행할 수 있도록 사회봉사명령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④ 노역장유치의 의미와 목적이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를 경제적 능력이 있는 자와 차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자와 빈자가 똑같은 범죄를 저지른 경우, 둘다 같은 벌금액수가 부과되는 것이 평등할까?

현재 국회에는 일수벌금제와 관련된 법률안이 발의되어있다. '일수벌금제'란 범죄자의 불법과 책임에 따라 정한 벌금 일수에 범죄자의 경제적 사정에 따라 1일 벌금액을 정해서 곱하는 방식으로 벌금액을 산정하는 제도다.

현행 제도인 총액벌금형제도는 벌금산정에 범죄인의 빈부차를 고려할 수 없어 가난한 자에게는 노역장유치 집행으로 자유형으로의 전환을 강제할 수 있다. 또한 부자에게는 형벌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핀란드가 1921년 최초로 도입한 이후 스웨덴, 덴마크, 독일, 오스트리아와 같은 국가에서 일수벌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범죄를 지은 자가 그 형벌로 벌금형을 선고 받은 경우에는 재산이나 소득에 따라 형벌의 가혹함이 다르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판매해서 몇만 원의 이득을 본 사람이 그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노역장에 유치된다면 경제력의 차이로 형벌의 불평등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법제도에 일수벌금제도입에 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여경수 기자는 헌법 연구가입니다. 지은 책으로 생활 헌법(좋은땅, 2012)이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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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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