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좁은 지하동굴에서 아이를 낳았다고?

[터키 여행기④] 지하도시 데린구유를 가다

등록 2013.12.18 11:31수정 2013.12.1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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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린구유 아래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
데린구유 아래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 강정민

지하도시로 내려가는 계단, 너무 좁다. 허리를 숙이고 발을 딛는데 갑자기 무서워졌다. 불이라도 나면 어쩌지. 탈출? 통로가 이렇게 좁으니 탈출은 꿈도 못 꾸겠다. 좁은 공간이 이렇게 사람에게 두려움을 갖게 하는구나. 이 좁은 계단에서 빨리 벗어났으면 좋겠다.  좁은 통로를 지나야 닿을 수 있는 이 지하도시에서 로마 시대 기독교인들이 300년간 숨어서 살았다고 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던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여기서 아이도 낳았다고?"


300년이란 소릴 듣고 반사적으로 나온 첫 질문이었다. 그만큼 지하 동굴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300년을 살았으니까 당연히 아이도 낳았지."

남편의 대답은 건조하다.

"어떻게 지하 동굴에서 아이를 낳아?"

나는 눈이 더 커져서 물었다.


"그러니까 오래 못 살았대. 수명이 서른 정도로."

그들이 이곳에서 300년을 살아 낸 이유는 무엇일까?


지하공간에서 300년을... 대체 어떻게

 데린구유
데린구유 강정민

터키 여행 넷째 날, 지중해 휴양지인 안탈리아에서 출발한 우리는 지하도시 데린구유로 향했다. 데린구유는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에 있다. 터키의 동쪽으로 갈수록 날씨는 추워지고 바깥 풍경은 삭막해졌다. 거리엔 검은 히잡을 쓴 여성들이 여럿 보인다. 하얀 색의 지중해 여름 휴양지에서 모래바람만 날리는 삭막한 시골 마을까지 달려오니 꼭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

데린구유는 '깊은 우물'이라는 뜻으로 로마 시대에 박해받았던 기독교인이 숨어 지낸 지하도시 중 하나다. 깊이는 55m로 지하 8층 규모인데 개방된 곳은 일부에 불과하다. 이런 크고 작은 지하 도시들이 40여 개가 있다. 데린구유는 그중에 보존이 잘 된 곳이다. 얼마 전까지는 사람들이 지하 도시의 존재를 몰랐다. 그러다가 1960년대 닭이 데린구유의 환기구 통으로 빠지면서 닭을 찾아 나선 주인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단다.

  데린구유 넓은 방
데린구유 넓은 방 강정민

1층에 들어가니 너른 터가 보인다. 이곳은 사람들이 양을 숨겨 놓았던 곳이라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그리고 밖으로 난 구멍이 보인다. 밖에 있는 사람이 이 구멍을 통해서 포도를 던지고 안에 사람이 포도를 받았다. 그 포도로 포도주를 담가 먹었다. 포도주 항아리를 두었던 곳을 가이드가 알려준다. 그래도 양을 키워서 양털로 카펫을 만들어 깔았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생활공간을 아늑하게 꾸몄다.

좁은 계단을 통과하는 도중에 크고 동그란 돌을 보았다. 굴 안쪽에서 크고 동그란 돌을 굴려 출입구를 막았다. 혹시 로마군에 발각되었을 때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십자가 모양의 공간은 교회가 있던 장소다. 교회 기둥에 죄지은 사람을 묶어 벌을 받게 했다. 안에는 우물도 있고 환기를 위한 통로도 있다. 꽤 깊은 곳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지하도시의 손때 묻은 공간을 보면서 종교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인정할 때까지 300년간 기독교인들은 지하도시의 삶을 이어갔다. 얼마나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아마 탈출을 꿈꾼 젊은이도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다 일찍 죽었다. 이러한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기독교는 그들에게 무엇이 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화장실 갔다온 남편 "복대가 없어졌어"

 카펫 전시장의 카펫 만드는 여성
카펫 전시장의 카펫 만드는 여성 강정민

 카펫 전시장에서 실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여성
카펫 전시장에서 실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 여성 강정민

그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카펫 전시장이었다. 가이드는 터키의 카펫 기술이 세계 최고라고 했다. 전시장에는 카펫을 직접 만드는 여성이 여럿 보였다. 정교한 카펫은 두 명의 여성이 2년 동안을 작업해야 완성된다고 했다. 카펫의 아름다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안 좋았다. 정교한 카펫을 2년간 만들다 보면 일꾼은 눈을 다 버리겠다 싶었다.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됐다.

"터키 동부에서는 양을 많이 키워요. 다 방목하고요. 그래서 양고기가 아주 연하고 맛있어요. 그 양털로 카펫을 만들어요. 이슬람에선 전통적으로 여자들이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동부 지방은 여자들은 카펫 짜는 일만 하는 거예요. 그리고 또 아이도 많이 낳거든요. 그 인력들이 저임금에 손으로 카펫을 짜고 염색까지 자연염색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터키 카펫이 최고급이죠."

동부지역도 개방된다면 터키 카펫의 가격은 지금보다는 훨씬 비싸질 것이다. 아마도 그런 날이 곧 오겠지? 터키 여성들이 싼 임금 받고 눈 나빠지는 일이 없기 위해서라도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전시장 카펫 만드는 여성들
전시장 카펫 만드는 여성들 강정민

 카펫 전시장 판매할 카펫을 보여주는 홀에서
카펫 전시장 판매할 카펫을 보여주는 홀에서 강정민

이런 생각을 하면서 화장실에 간 남편을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뒤 나온 남편은 상기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복대가 없어졌어. 세수하고 복대를 차려고 하는데 없는 거야."

환전한 유로화를 남편이 가지고 있는데, 100만 원은 넘을 돈이다. 그 돈이 없어지면 어쩌지. 아니 그것보다 여권은 어쩌나? 여권을 잃어 버리면 한국에 제때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한국서 우릴 기다리고 있는 막내는? 머리가 멍해졌다.

남편은 우리 일행이 앉아서 카펫을 구경했던 홀로 뛰었다. 나도 쫓았다. 남편이 앉아있던 자리에 복대가 없다. 남편과 나는 각각 다른 문을 통해서 주차장에 세워진 버스로 뛰었다. 제발 버스에 복대가 있어야 한다. 한발 앞서 뛰어간 남편이 버스 통로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웃고 있다. 찾았구나. 다행이다. 그래 터키까지 왔는데 사건이 없을 수 없지. 이 정도는 일도 아니지 일도 아니야.

'15금' 밸리댄스 공연...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우린 카파도키아의 페리시아(PERISSIA) 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고 밸리 댄스를 보러 이동을 했다. 장시간 버스 이동 때문에 아이들은 지쳐 있었다. 공연이 열리는 곳은 동굴이었다. 둘째 녀석은 안쪽에 들어가서 잔다. 이슬람교의 새로운 종파 메블라나교의 셀마춤을 볼 수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하다. 키 큰 남자들이 나와서 계속 돌기만 한다. 정말 어지러울 듯싶다. 그리고 남녀가 만나고 결혼식을 올리는 내용의 민속춤을 추었다. 마지막으로 밸리댄스를 추었다.

 밸리댄스장에서 본 메블라니교의 종교의식 셀마춤
밸리댄스장에서 본 메블라니교의 종교의식 셀마춤 강정민

한국에서라면 최소 15금 공연일 텐데 여행지라서 그냥 아이들까지 제한 없이 본다. 이런 부분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여행 전에 여행사에서 공연에 대한 안내를 미리 하였다면 아이를 데려오진 않았을 텐데…. 아이와 같이 계속 공연을 보고 있자니 민망했다. 아이 둘을 데리고 공연장에서 먼저 나왔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 둘째는 피곤해서 곯아 떨어졌다. 옆에서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던 첫째가 내게 물었다.

"엄마, 밸리댄스장에서 메모리 카드 챙겨왔어?"
"모르겠는데."

밸리댄스장에서 사진을 찍다가 메모리가 꽉 차 보조 메모리 카드로 갈아 끼웠다. 그런데 챙겨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메모리 카드를 두고 왔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걸 가지러 가야 하는데 여기서 택시를 타고 가나? 그런데 메모리 카드가 거기에 없으면 어쩌지? 게다가 지금은 문을 닫았을 텐데 내일 아침에 가야 하나? 내일 아침엔 우리 일행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할 텐데….

메모리 카드를 못 찾으면 어떻게 될까? 여태 터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 없으면 나는 한국에 가서 기사를 어떻게 쓰나? 차라리 메모한 수첩을 잃어 버리면 기억을 더듬어 쓰면 되는 데 사진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 망했다. 공모전 수상으로 온 여행인데, 후기를 꼭 써야 하는데 기사에 쓸 사진이 없다니. 여행을 다시 와야 하나? 차라리 카메라를 잃어 버린 게 더 나았겠다. 머리가 어지럽다. 난 침대에 주저앉았다.

첫째는 카메라 가방을 샅샅이 뒤진다. "엄마 여기 있어." "진짜?" 살았다.  비싼 카메라보다 메모리 카드가 더 귀하다는 생각이 들긴 처음이다. 터키 여행 4일차, 카파도키아의 밤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으로 마쳤다. 다행히도.

 콘야 도시 모습 검은 히잡을 쓴 여성들이 보인다.
콘야 도시 모습 검은 히잡을 쓴 여성들이 보인다.강정민

#터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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