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주현우씨의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가 사회의 주목을 받은데 이에 14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길에 담벼락에 대자보들이 줄지어 붙어 있다.
이희훈
이날 발언대회는 고려대 학생 주현우(27)씨가 지난 10일 학내에 붙인 대자보 한 장에서 비롯됐다. 주씨는 이 대자보에서 노동자들이 철도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다가 직위해제된 일과 송전탑을 막기 위해 목숨을 끊은 밀양 주민을 거론하며 "(이런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고 물음을 던졌다.
본인을 00학번이라고 밝힌 서강대 학생 정아무개씨 역시 주씨의 대자보를 보고 자신의 학교에 안녕하지 않다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마이크를 잡은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점점 학교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것 같은데, 고려대학교 학생들도 1년 전까지는 제 마음과 같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는 "우리는 가해자를 벌하지 않고 침묵으로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정씨는 학내에 대자보를 붙인 후에 "'어떻게 학교 후배가 뒤통수를 치느냐'는 얘기를 들었다"는 밝혔다.
국민대에서 온 한 남학생 역시 '발언할 수 없는 사회'에 대한 피로감을 토로했다. 그는 "얘기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 같다"면서 "그래서 대자보에 '꽃혔'던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얘기만 하면 욕 먹는 상황이라 답답했다"고 고백했다.
한신대에서 온 한 학생은 "명문 대학부터 대기업 직원까지 다들 열심히 먹고사느라 바쁜 것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모두의 고통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고, 이제는 '아프다'고 말하기 위해서 모인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사회에서는 대학생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면서 우리 고통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못하게 한다"면서 "모두의 고통에 대해 소리치자"고 제안했다.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해야 '안녕'할 수 있는 것 같다"
▲"우리 안녕하지 않습니다"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로 주목받게된 고려대 주현우씨와 이에 동참하는 참가자들이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모여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서울역나들이' 행진을 앞두고 집회를 열고 있다
이희훈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밝힌 한 여학생은 "우리 사회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분명히 '틀린 것'을 '다른 것'으로 넘기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밀양 송전탑 문제나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철도노조원들을 직위해제하는 정부에게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학생은 "앞으로 침묵하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여러분들도 앞으로 안녕하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대자보를 붙이고 싶어도 붙일 곳이 없어서 나왔다는 시민도 있었다. 자신을 '겁나 찌질한 청소년'이라고 밝힌 한 고등학생은 "학교에서 입시와 정치적 무관심을 강요당한다"면서 "저희도 갑갑한 마음은 마찬가지라 안녕하지 못하다는 선언을 하려고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노동가수 송을채씨는 "저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며 입을 뗐다. 그는 "대학에 가지 못한 저같은 사람도, 노동자도, 대학에 간 사람도, 위장이 녹아내리는 제초제를 먹고 죽어간 밀양 어르신도 모두 안녕하지 못하다"면서 "대자보를 붙이고 싶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붙일 데가 없어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60세라고 밝힌 한 시민은 "젊은 친구가 대자보를 읽어보라고 해서 읽고 응원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침묵의 1인"이라고 소개하며 "나같은 사람도 모였으면 한다"면서 "학생들이 어서 '안녕'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철도민영화 막아야 내 삶이 안녕해져"
▲'밀양할머니 안녕들하십니까?'철도민영화 반대하는 고려대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를 지지하는 '서울역나들이' 참가자들이 14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 열린 밀양송전탑 반대 주민 '고 유한숙씨 추모 문화제'에 참가하고 있다.
이희훈
이날 모인 시민들은 발언대회를 마치고 시청역으로 이동해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중 자결한 고 유한숙씨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이후 5시부터 서울역에서 열린 '관권부정선거규탄, 철도민영화 저지 촛불대회'에 참가했다.
주현우씨는 촛불대회에서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규모만큼이나 '안녕하지 못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면서 "그걸 얘기해야 비로소 안녕함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가) 무슨 말만 하면 '종북' '대안 없이 비판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 진보신당 당적을 문제삼으며 대자보 현상을 깎아내린 보수 언론에 대해서도 "우리는 우리의 정치를 하기 위해 나온 것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모두가 자신의 정치를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씨는 "철도 민영화와 밀양 송전탑을 막아야 저의 삶이 안녕해지기 때문에 대자보를 쓰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철도민영화 반대하는 학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를 지지하는 '서울역나들이' 한 참가자가 1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서 열린 철도민영화 반대 집회에서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피켓을 들고 있다.
이희훈
"박근혜 정권, 철도 다음은 의료 민영화" |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촛불대회에는 영하 4도의 날씨에도 15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앞서 대회를 진행하고 있던 철도노조 노동자들은 고대에서 출발한 '안녕하십니까' 대학생들이 도착하자 크게 호응했다.
박태권 KTX범대위 상황실장은 "소위 귀족노조, '좌빨'이라고 불리던 공기업 노조가 파업을 하는데 국민들이 손가락질을 하는 게 아니라 응원해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훈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장은 철도노조 파업이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최근 가스노조는 다수의 시민단체들과 결합해 SK등 '에너지 재벌'에게 국내 가스판매를 허용해 주는 내용의 도시가스사업법 일부 개정안에서 민영화 관련 조항을 삭제시키는데 성공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박근혜 정권이 철도도 모자라 의료까지 민영화하려고 한다"면서 관심을 호소했다. 철도 다음은 의료 민영화라는 것이다.
우 정책실장은 "KTX 민영화되면 요금도 올라가지만 당장 사고로 죽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경고했다. 영국에서도 민영화 이후 56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는 "민영화에서 재 국유화 후 사고로 죽은 이는 2명에 불과했다"면서 "이 파업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파업"이라고 덧붙였다.
박주민 변호사는 국가정보원이 내놓은 자체 개혁안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국정원은 지난 12일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골자로 하면서도 강제 조항은 미비한 자체 개혁안을 국회 국정원개혁특위에 보고해 논란을 빚었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셀프 개혁안'을 내놨는데 대국민 심리전은 더욱 강화하겠다고 하고 있다"면서 "물건 훔치는 도둑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데 국민들 의식이나 정신을 훔치겠다고 하는 자들을 그냥 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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