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 소재 간디고등학교 강당에 김성은(3년) 학생이 쓴 "간디인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어 있다.
오마이뉴스 제보 독자
다음은 간디학교 김성은 학생이 쓴 대자보 전문이다.
간디인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요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뭉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에 붙은 한 장의 대자보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안녕을 묻는 물음이 이렇게나 되풀이되는 이유는 아마 우리가 사는 이 사회가 그만큼 안녕치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저는 간디인 여러분께 묻습니다.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을 간디에서 살면서 우리가 질리도록 들어온 말들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생태, 사랑과 자발성, 폭력에 대한 불복종, 그리고 그 위의 많은 것들. 그런데, 학교 안의 문제들은 제쳐두고서라도, 간디 바깥의 세상은 우리가 여태 배운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공공재였던 것들이 민영화의 이름을 달고 '사유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국정원의 불법적인 정치개입 문제는 점점 커지고 심각해지고 있지만, 1년이 다 가도록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밀양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목숨을 걸고 전경들과 대치하며, 강정은 이미 우리 머릿속에서 잊히고 말았습니다. 방사능폐기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원자력발전소를 늘리려고만 합니다. 보호받아 마땅할 철도파업을 불법이라 부르며 탄압합니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독재를 정당화 하며 포털 사이트에서 긁어온 글이 버젓이 실린 교과서가 정식으로 승인되었습니다.
더욱 잔인한 것은, 이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나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국가, 빨갱이, 국가보안법, 내란음모,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여 제거해버리곤 합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우리 곁에서 보란 듯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간디인 여러분, 저는 무섭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폭력이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픈 소식들이 우리 안에서 그저 한 줄의 기사에 불과한 것으로 남는 것이 무섭고, 그것들에 점점 둔감해지는 것이 무섭습니다. 절박하게 싸우는 사람들의 호소에 습관적으로 누르는 '좋아요'가 무섭고, 이 모든 것이 '나'의 모습이어서 정말로 무섭습니다.문득 생각해 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요. 고등학교 시절을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다르게' 보낸 우리는 이 사회에 얼마만큼이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혹, 우리가 그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하여 지키며 노력했던 것들이 그저 우리만의 리그에 불과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물음들은 너무도 크고 무거워서, 마치 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것처럼 막막해집니다.그러나 아무리 거대한 벽에도 틈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어쩌면 그 틈새를 찾아내 아주 아주 조금씩 후벼 파내는, 답이 보이지 않는 삽질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간디인 여러분, 조금만 더 불온해집시다. 대자보도 좋고, 시국선언도 좋고, 일제고사 거부도 좋고, 촛불집회도 좋습니다. 하다못해 페이스북 담벼락에 한 줄 끄적이는 것도 좋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당연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기를 조금 불편하게 할 한 마디의 말, 그것으로 충분합니다.간디인 여러분께 다시 묻습니다, 그간의 '식구총회'는 어떠셨습니까? 어떤 마음으로 이 학교에서 살아내고 있습니까? 부당한 것들을 묵인하지 않을 용기가 우리에게는 있습니까? 유난히 길고 힘겨운 겨울을 보내고 계신 간디인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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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대자보 "여러분, 조금만 더 불온해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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