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대자보'가 대학가에 이어지던 지난 15일 졸업을 앞둔 대학생 제자도 대자보를 써 붙였다.
임정훈
이른바 '안녕 대자보'가 대학가에 이어지던 지난 15일, 졸업을 앞둔 대학생 제자도 페이스북에 대자보를 올렸다.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 써서 붙인 대자보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는 "내가 속해 있는 '우리'의 이야기에 너무 무관심했던 나의 과거를 고백합니다. 이제는 불의에 침묵하고 내 앞길만 신경 쓰면 그만이도록 우리를 길들여놓은 교육의 폭력성에 종언을 고하고자 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자신의 성찰에서 시작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철도노조 파업 등 시국 현안까지 짚었다.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의 복잡한 마음도 보였다. 나는 그 글을 학교에서 세상으로 나가기 전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의지나 몸짓으로 이해했다. 세상과의 온전한 소통과 연대를 꿈꾸는 몸짓 같은 것. 당연히 그 녀석에게 대견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고는 다음날인 16일 페이스북에 짧은 글 하나를 타전했다.
"응답하라 제자들아, 지금 안녕한 친구들도, 안녕하지 않은 자네들도 모두 12월 21일(토) 저녁에 만나자."
낙관적이지 않은 현재를 사는 제자들의 고해성사를 그냥 바라보는 일이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들과 만나서 헛헛한 이야기라도 하는 게 도리라 여겼다. 도처에서 "안녕하느냐"고 묻는데 대답이라도 하는 게 예의라 생각했다. 나 혼자만 안녕한 척 하고 살 수는 없다. 제자들의 시린 삶 앞에서는 더더욱 그래서는 안 된다고 되뇌었다.
제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다들 이 황량한 시절과 무관하지 않게 살고 있음을 방증이라도 하듯 20대 중후반인 녀석들부터 즉각적인 '응답'이 왔다. 평소 자주 만나던 녀석들부터 졸업 후 감감무소식이던 녀석, 멀리 외국에서 유학 중인 아이들까지 응답을 보내왔다. 문자메시지와 카톡으로 응답한 녀석도 있었다.
그 가운데는 "의료 민영화되면 진짜 사람 죽습니다. 지금도 돈 없어서 제대로 치료 안 받고 가는 사람 태반인데..."라며 병원 근무 때문에 모임에는 함께할 수 없지만 의료민영화는 꼭 막아야 한다고 메시지를 보낸 직장인 녀석도 있었다.
또 자신이 조교로 근무하던 대학에서 학생들의 등록금을 학생이 아닌 학교 직원과 학교 측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어느 교수가 교육과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걸 더는 보지 못하고 문제제기하고 조교직을 그만둔 대학원생 녀석도 있었다. 다들 그렇게 힘겹고 안타깝게, 애쓰며, 열심히, 생각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저 친구들이 하는 말에는 어떤 불온함, 불순함도 없어 보인다. 대학생이든 고등학생이든 그저 자신이 보고 느낀 자신의 삶을 이야기 했을 뿐이다. 좀 서투르고 부족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왜 순수성을 의심받아야 하는지, 왜 찢기고 짓밟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저들의 "안녕하느냐"는 외침에 응답하는 것은 함께 사는 인간에 대한 예의다. 나 혼자만 안녕한 척 외면하고 살 수는 없다. 더욱이 교육 혹은 학교(교사)라는 이름으로 저들을 불온시하거나 범죄자인 양 지레 단속하고 나서는 죄를 더는 저지르지 않았으면 한다. 최소한 교사(학교)가 앞장은 서지 못 하더라도, 아이들 옆에 서 있기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21일 저녁, 녀석들과 모이면 술값이며 안줏값이 제법 들 것 같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오랜만에 그들과 어울려 서로 세상의 안부, 안녕을 묻고 나눌 수 있다면 무엇보다 값지리라.
교학상장(敎學相長. 가르치고 배우면서 성장함)은 교실(학교)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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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이 학생 신고... 교사인 제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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