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석 군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류상태 전 목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등학생이던 강의석 군이 학내 종교의 자유를 외치기까지 힘들게 고민했던 것처럼 그 학교의 교목실장이었던 류씨도 숱한 번민에 힘들어 해야 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교목실장 자리를 내놓았던 류씨. 그 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류씨는 어떻게 살아왔을까?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슈 털어주는 남자>(이털남)에서 만난 류씨는 안 해 본 게 없단다. 액세서리 노점부터 다마스 퀵서비스까지. 설교단이 아닌 저잣거리에서 생업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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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털남2-494]'류상태 전 목사, 기독교 변질의 역사를 드러내다' 기독교에 배타적 교리를 버리고 '예수정신'으로 돌아가라는 일침을 날리는 류상태 전 목사. ⓒ 이종호
류씨가 저잣거리에서 힘든 노동을 하는 이유는 더 이상 목회 활동을 하지 못하는 처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다른 데 있다. 기독교의 역사를 소설 시리즈로 펴내기로 작심하면서 '글쟁이'의 길로 나섰지만 '돈'이 되기는 힘든 일. 그래서 생업을 위해 저잣거리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틈틈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주업'으로 글을 쓴 결과 최근에 역사 소설인 <콘스탄티누스>를 발표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큰 분기점을 만들었던 콘스탄티누스를 조명함으로써 기독교 변질의 역사를 되짚어보고자 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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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변질'의 역사를 드러내고 싶다
류씨가 2000년이 넘는 기독교 역사의 상당 부분을 변질의 역사로 규정하는 이유가 있다. 그 역사가 '예수정신'이 뒤로 밀리고 '교리'가 득세한 과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예수정신'이 박제화 돼 버렸다는 것.
그의 이런 시선 때문일까? 정교분리를 앞세워 박창신 신부와 천주교 사제단을 공격한 보수세력에 대한 그의 시선은 매서웠다. 류씨는 "정교분리는 정치계와 종교계의 역할 분리이지 서로 아예 관심을 두지 말자는 뜻이 아니다. 종교가 잘못하면 정치가 법적인 제재를 할 수 있고, 반대로 정치가 괜한 사람을 괴롭히면 종교가 모든 사람은 귀하니 사람 괴롭히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다"며 정교분리를 근거로 천주교 사제단을 비판하는 입장을 정면 반박했다.
류씨는 사제단의 정치적 발언을 문제 삼는 사람들을 '몰라서 문제 삼거나', '알면서 문제 삼는 것'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몰라서 문제 삼는 사람들은 비난하고 싶지 않단다. 그렇게 배운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니까. 문제는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류씨는 이들을 "곧이곧대로 말하면 자신의 삶이 편하지 않고 문제 삼아야 이익이 되니 그걸 계산하고 말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류씨는 나아가 이렇게 이익셈법에 따라 행동하는 기독교인이 적지 않다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문제의 뿌리를 뽑아내지 않으면 끊임없이 가지치기를 해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류씨가 기독교 의식 개혁 운동을 벌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류씨는 문제의 뿌리를 기독교의 교조화 되고 배타적인 교리라 보았다.
강의석 사건, 신념을 되찾는 분기점이 되다
류씨가 지금의 기독교에 대해 이렇게 날선 비판의식을 세운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강의석 군 사건'이다.
강의석 사건이 일어나기 2~3년 전부터 류씨는 생계와 신념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을 겪어야 했다. 종교다원주의자임에도 학교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감췄던 시기는 류씨에게 가장 비참한 순간이었다.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독선적 교리와 배타주의에 반하는, 기독교 입장에선 이단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교목실장이 됐을 때부터 내가 생각하는 기독교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윗선에서 부르더니 '당신 다원주의자냐'는 질문을 했다. 순간적으로 가족들이 생각나면서 바로 '아닙니다. 저는 포용주의자입니다'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면서 내가 포용주의가 뭔지 쭉 설명하고 있더라. 그걸로 위기를 모면하고 돌아서는데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검증(?)을 당하고 신념에 반하는 대답을 반복하다가 '강의석 사건'이 발생했다. 강 군에 대한 학교의 대처는 너무나 무자비했다. 류씨는 다시금 선택의 기로에 빠졌다. 강 군을 찾아갔다. 강 군의 생각에 허점이 보이면 도망갈 구멍, 자신의 합리화할 여지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솔직히 말하면 허점이 보이길 바랐다. 그걸 핑계대서라도 한 발 물러서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얘길 해봐도 허점이 없었다. 내가 위선자가 되지 않는 한 이 아이를 내칠 수 없었다." 결국 류씨는 강 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해라. 나도 그렇게 하마."
류씨는 "이 사건이 없었다면 마음의 병을 앓다가 저 세상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며 강의석 군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했다. 물론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후련한 건 아니다. 계속 미련이 남고 두렵고 겁이 났었으니까. 사건 이후로도 약 5개월 간 학교에 미련을 갖는 바람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이후 지금까지 류씨는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단' 취급을 당당히 감내하며 오히려 기독교단을 향해 '예수정신'으로 돌아가라고 일침을 날리고 있다. 예수님 말씀인지도 불확실한 성경 구절을 외울 게 아니라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예수정신에 입각해 세상과 호흡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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