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까?

저항 안에 삶의 열쇠가 들어있다... 변호인에 대한 소회

등록 2013.12.27 15:11수정 2013.12.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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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함께 보실래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님들과 함께하는 오연호의 겨울데이트 참가 신청자 모집을 보는 순간, 참가 신청을 했다. 사실 '변호인'은 신청하기 전부터 관람 계획을 갖고 있었고, 신청 후 발표자 선정이 되기 전에 이미 관람을 한 터였다.


하지만 지난 21일 오랫동안 자원봉사를 하며 알고 지내던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하고 난 후, 딸아이와 같이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방학이니, 고 2가 되기 전에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엄마 아빠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영화를 같이 보는 것도 교육상 의미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변호인 함께 보실래요' 라는 제안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학생부 보조 자료에 부모님이 원하는 진로 희망에 그냥 내가 원하는 거 쓴다?"
"응"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방 정리하고 퇴사해."
"일찍 하네. 혼자 와야겠다."
"응 알아서 갈게"

그런데 아이와 문자를 교환하며 계획이 틀어졌음을 알았다. 기숙학교라는 곳의 학사 일정을 학부모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딸아이는 지난 성탄 전야인 24일에 귀가를 한 후, 성탄절 밤에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런데 방학이 26일이 아닌 27일부터란다. 방학이라고 하지만, 27일 오전까지 퇴사 후에 내년 1월 4일까지 귀사를 해야 한다. 아이가 집에서 보낼 수 있는 방학 기간은 1주일인 셈이다. 결국 26일을 건너뛰고 방학을 하는 통에 아이와 영화를 보겠다는 계획을 접어야 했다.

아이를 데리러 기숙사에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학교가 아이들에게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남는다. 얼마 전 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을 때도 아이들은 눈싸움 한 번 하지 않았는지, 학교 교정에 쌓인 눈밭엔 발자국 하나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눈밭에 눈길 한 번 제대로 줄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방학이라고 해도 아이는 집에서 책과 씨름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런 아이 손을 잡고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이유는 '변호인'이 주는 울림 때문이다. 나는 그 울림을 딸아이도 느낄 거라고 믿는다.


변호인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야 다들 다를 수 있겠지만, 송우석 변호사가 절규하듯 뱉어낸 말,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왜 이 시대에 울림이 있는가 하는 부분은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 울림은 나로 하여금 '이스탄불의 사생아'로 잘 알려진 앨리프 샤팍(Elif Shafak)이 그의 소설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일어서서 항거할 수 없는 사람이나 반대할 능력이 결핍된 사람은 살아도 사는 게 아니다. 저항 안에 삶의 열쇠가 들어있다."


변호인은 MB정부를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민사회 전반에 폭넓게 자리 잡은 패배감, 무력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말해주며 앨리프 샤팍의 말을 곱씹게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정권에 반대하거나 체제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불의한 일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차별이 없고 인권이 바로 선 세상을 꿈꾸는 보통사람들일 뿐이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고, 그러한 반대가 받아들여지는 상식적인 세상을 원할 뿐이다.

공권력이 부당하게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를 짓밟는 것에 대해 일어서서 항거하지 못하고, 반대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마이뉴스 기자들과의 관람 계획은 물 건너갔지만, 딸아이와는 해를 넘기기 전에 변호인을 관람하며 사는 게 뭔지 이야기해 봐야겠다.
#변호인 #저항 #노무현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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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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