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을 싸잡아 종북으로 모는 새누리당의 이 같은 낙인찍기는 '이석기 사건'이 불거진 후 계속돼왔다.
김지현
'종북'이 씹던 껌이 됐다. 북한을 추종하는 행위나 그 세력을 뜻하는 무시무시한 말, '종북'을 박근혜 정부는 숱하게 써먹었다. 국가기관 대선 개입, 종교계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등 정부 여당에 불리한 이슈가 터질 때마다 꺼내 문 '종북'이란 단어는 1년 동안 지독하게도 소비됐다. 종국에는 단물이 모두 빠져나간 후다.
이제 면역력이 생긴 야당은 쏟아지는 '종북' 지적에 '종박(박근혜 대통령을 따르는)'이나 신경쓰라고 일갈한다. 누리꾼들은 "대한민국 용어 1.평화주의자=종북좌빨 2.반친일파=종북좌빨 3.반불평등FTA=종북좌빨 4.정치비판=종북좌빨 5.반여당=종북좌빨 6.구럼비보호=종북좌빨...세상천지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나라가 또 어디에 있을까"(트위터, RageP***)라고 한탄한다.
"'종북'이 북을 따라 사는 걸 말한다면, 북처럼 언론 탄압하고 민간인 사찰하는 새누리당 정권이 꼴'종북'"(트위터, actorm***)이라며 정부 여당을 향해 역공을 펴기도 한다. 가수 백자는 "종각 가서 '종'을 보고 서점에 가서 '북'을 보고 콘서트에 참가하라"며 '종북 예술제'를 열기도 했다.
'내 편 아니면 종북'이라는 이분법적 도식이 반복되자 '종북'이라는 말이 갖던 어마어마한 힘은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풍자 대상으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 1년 내내 씹은 껌, 종북은 이제 딱딱하게 굳어 다시 입에 물기도 힘들 지경이 돼가고 있다.
정부 여당이 '종북'을 1년 동안 어떻게 소비했기에 이 단계에 이르렀을까. 그래서, 박근혜 정부가 자의적으로 정의한 '종북'을 정리해봤다. 즉, 박근혜 정부판 <종북용어사전>이다. 정부로부터 '종북'으로 몰리기 싫다면, 아래 '사전적 의미'들을 유념해 두시라.
①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 정당화 됐다"지난 11월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와 관련 "당의 설립 목적과 활동에 위헌성이 있고 당 전체가 '종북 정당화' 돼 존치할 경우 우리나라 존립을 위태롭게 할 우려가 높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당원은 당원에 가입했다는 그 자체로 '종북'이 되었다.
심재철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에 앞선 지난 3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책임이 미국과 우리 정부에 있다는 통진당의 주장에 대해 "북한 감싸기로 종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며 "통진당은 어느 나라 정당인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을 바에야 차라리 북한으로 가라"고 주장했다.
② "민주당은 종북 숙주"
일찌감치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못박은 새누리당의 다음 먹잇감은 민주당이었다. 정부 여당은 '종북 숙주론'을 설파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6일 "민주당이 이석기 사건과 관련 제명에도 반대하고 통진당 해산 청구도 반대했다, 사실상 싸고 도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종북 숙주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통해 통합진보당 국회 진출의 디딤돌을 마련했다는 '원죄론'이다.
지난 9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민주주의 훼손세력과 무분별하게 연대해서 자유민주주의에 기생해온 종북세력의 숙주노력을 하지는 않았는지 정치권은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같은 맥락에서, 홍문총 사무총장은 "민주당의 죄가 이석기 의원의 죄보다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공개된 후 홍지만 원내대변인은 "2007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공개되면서 민주당이 종북 좌파세력의 원천적인 근원임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정상회담 회의록이 대선 전에 불법으로 유출 됐다는 논란이 불거진 때로, '불법 유출'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종북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③ "신 야권연대? 종북 숙주"국정원 개혁을 위해 야권이 한 데 뭉치자 조급해진 새누리당은 '종북 숙주론'을 다시 들고 나왔다. 지난 11월 심재철 최고위원은 "민주당·정의당·안철수 의원·시민단체·재야인사와 함께 내일 연석회의를 출범시킨다고 한다, '묻지마 연대'의 백낙청 서울대 교수·함세웅 신부·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 면면을 보면 '구 야권조합'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이어 그는 "이들은 작년 총선 때 이른바 원탁회의를 구성해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의 연대를 촉구했던 사람들이고, 민주당은 이 같은 요구에 따라 이른바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워 이석기 같은 종북세력이 국회로 침투하는데 숙주 노릇을 한 바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의 '종북숙주론'은 참으로 광범위하게도 쓰였다.
④ "이석기 체포 동의안에 기권·무효·반대표 던지면 '종북 의원'"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9월 내란 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체포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나온 '기권·무효·반대'표를 모두 종북표로 규정했다. 그는 "반대는 완전 대놓고 종북, 기권도 사실상 종북, 무효는 은근슬쩍 종북"이라며 "대한민국 국회에 종북 의원이 최소 31명"이라고 밝혔다.
반대표를 던진 일부 의원들은 이 의원에 대한 혐의가, 민주당이 폐지를 주장해온 국가보안법 위반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임에도 김 의원은 일방적으로 '종북'이라 몰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