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재자투표 부정선거를 고발중인 이지문 중위군 부재자투표 과정에서 일어난 선거부정을 목격한 이지문 중위는 1992년 3월 22일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를 찾아 양심선언을 한다. 그의 고발 이후 군 부재자 투표는 영외에서 하도록 선거법이 바뀌었다.
경실련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1992년 3월 22일, 현역 육군 중위였던 이지문 중위가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아래 공선협) 사무실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충격적인 양심선언을 합니다. 군부대 내에서 벌어진 총체적인 부정 선거의 진실이었습니다. 부대 지휘관이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군인이니 무조건 여당인 민주자유당(현 새누리당 전신) 후보를 찍으라"는 정신 교육이 있었던 후, 사실상 공개 투표로 민자당 후보를 찍었다는 폭로였습니다.
사실 이지문 중위 양심선언 내용은 그 시절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모르던 진실은 아니었습니다. 이 같은 부정선거가 군대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시기 군 복무를 한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이었기 때문입니다. 1987년 정연관 상병이 군 복무 중 구타로 사망했는데 당시 정 상병이 사망한 이유가 대선 투표 당시 김대중 후보를 찍었다는 이유였음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비밀 아닌 비밀'을 양심선언을 통해 최초로 밝힌 사람, 바로 이지문 중위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이지문 중위의 이 용기 있는 양심선언은 이후 군 부정 투표를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그동안 부대 내에서 군인들끼리 투표 업무를 함으로써 가능했던 공개 투표를 방지하기 위해 군인의 투표를 영외 투표소에서 하도록 제도를 바꾼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적어도 지휘관이 보는 앞에서 지휘관이 손가락으로 여당 후보를 짚고 있는 가운데 투표하던 무지막지한 부정선거는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지문 중위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큰 역할을 해준 이지문 중위는 자신이 선택한 그 양심으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했을까요? 제가 윤성두 중위를 안타깝게 떠올린 이유입니다.
이등병 강등, 삼성 특채 취소... 이지문 중위, 미안합니다군 부정선거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이지문 중위는 대기하고 있던 헌병에 의해 바로 끌려가 구속됩니다. 영화 <변호인>에서 나오는 윤성두 중위와 똑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구속된 사유 역시 '무단이탈' 혐의였습니다. 이 역시 윤성두 중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후 이지문 중위가 감당해야 할 고난은 영화 속 <변호인>에서 사무장이 송변에게 말한 대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돈 잘 벌고 탄탄대로를 약속한 세무 변호사를 버리며 공안 사건 변호인으로 나가겠다는 그에게 사무장이 던진 한마디입니다.
"오늘부로 송변, 니는 니 편한 인생, 니 발로 잡아찬 기다."이지문 중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실 이 중위가 양심선언을 할 당시 그는 이미 삼성그룹의 장교 출신 전역자 특채에 합격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에 남은 군 복무 기간 동안 조용히 있다가 제대했다면 그는 지금쯤 연말 상여금으로만 수천만 원을 받는 안녕한 대기업 임원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양심선언은 그의 삼성그룹 특채를 없던 일로 만들었습니다. 불행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군 검찰에 구속되었던 그는 이후 기소유예로 풀려 나오지만, 육군 중위 신분에서 작대기 하나인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불명예 제대하게 됩니다. 아마도 윤성두 중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윤성두 중위와 이지문 중위가 다른 한 가지가 있었다면 이지문 중위에게 군 검찰이 '무단이탈' 외에도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중위에게 추가 적용된 이 명예훼손의 근거 경위를 확인하면서 참으로 먹먹한 심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군 수사당국이 이 중위에게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한 경위는 이렇습니다.
이지문 중위가 군 부재자 부정 선거를 폭로하자 군 수사당국은 이 중위가 근무하던 부대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이지문 중위의 주장처럼 여당 후보를 지지하라는 정신 교육과 공개 투표가 실제 있었냐"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이지문 중위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응답한 부대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부대와 개인의 명예를 이 중위가 훼손했다며 군 검찰이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 적용했다는 것이 그 전말이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처음 전해 들었을 때 이지문 중위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그래서 이 중위에게 물었습니다. 그 당시 심정이 어땠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9사단 헌병대 영창에 있을 때 군 검찰이 하는 말이 500명 부대원 모두가 제 양심 선언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며 명예훼손을 추가 적용하겠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절망했습니다. 아. 내 생각처럼 세상이 그렇지 않구나 하는 좌절감 같은 것이 들지 않을 수 없더라구요. 많이 힘들었습니다."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후회하지 않았냐고. 그런데 이 중위는 자신의 양심 선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왜냐고 재차 묻자 이 중위는 거기에 얽힌 일화를 조용히 건넸습니다. 자신이 말한 진실을 500명 부대원이 모두 부인했다는 말을 듣고, 그래서 절망의 심정으로 헌병대 영창에 갇혀 있을 때 자신의 철창 안으로 한 헌병이 쪽지를 넣어주고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워 펼쳐본 쪽지에 이런 글이 써 있었다고 합니다.
"이지문 중위님. 저는 이 중위님이 말씀하신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그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용기를 잃지 마세요. 고맙습니다."또 다른 윤성두 중위, 고난받는 이 땅의 양심 선언자들고난 받았던,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난받는 양심 선언자는 이지문 중위만이 아닙니다. 또 다른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유죄 확정 판결로 공무원 신분을 잃은 장진수 전 주무관입니다. 이 사건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내용의 동영상을 민간인 김종익씨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에 게재하면서 시작됩니다. 이러한 김종익씨에 대해 당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직원들이 대통령 비방 동영상을 게재했다 하여 민간인 신분인 그를 대상으로 사찰과 압수수색을 했습니다. 명백한 불법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금융회사를 운영하던 김종익씨에게 사장직 사퇴를 강압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자 다급해진 쪽은 불법을 자행한 그들이었습니다. 어떡해서든 이 범죄 행각을 은폐하자며 이번엔 그 증거가 담긴 컴퓨터 등을 인멸하는 공모에 나섰습니다. 이같은 증거 인멸로 인해 최초 수사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온전히 밝혀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 사찰'의 진실이 꼬리 자르기로 끝나려던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