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밥상공동체 사랑의 연탄나누기 벽화
이기원
연탄에 대한 두려움이 재현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친한 친구가 여동생과 함께 자취방을 얻어 자취하면서 학교를 다니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여동생은 죽고 친구는 후유증으로 왼손 신경이 마비되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 하는 지경이 되었다. 연탄이 난방의 주 연료로 사용되던 시절 연탄가스 중독으로 화를 당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겨울철 뉴스에 단골 메뉴처럼 연탄가스 중독 사고로 화를 당했다는 소식이 등장할 정도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연탄은 많은 사람들의 겨울나기에 꼭 필요한 연료였다. 겨울철, 광에 연탄 그득히 들여 놓아야 든든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연탄을 한꺼번에 들여놓지 못 했다. 형편 대로 조금씩 사다 쓰거나 당장 필요한 연탄 두어 장씩 새끼줄에 묶어 사들고 와 힘겹게 겨울을 났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에는 연탄 들여놓기도 힘들었다. 연탄집 아저씨가 리어카에 연탄 가득 싣고 동네 입구에 도착하면 온 식구들이 다 동원되어 세숫대, 양동 등에 연탄을 담아 날랐다. 세숫대야에 서너 장씩 담아 가파른 비탈길 오르다보면 팔이 떨어질 듯 아파 주저앉은 적도 많다.
새하얀 함박눈이 푸짐하게 내려 달동네 비탈길이 빙판으로 변하면 사람들은 연탄재를 부수어 깔았다. 검은 연탄 세숫대야에 담아 옮길 때는 깨트리면 욕을 바가지로 먹을 일이지만, 희뿌연 재로 변한 연탄재 빙판길에 깔 때는 함부로 차고 밟아 부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딱 한 시인만 빼고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