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과 성실로 38년 세월 백화점을 유지해온 주인 김재씨가 포장을 하고 있다.
장선애
"이 거리가 1970년대만해도 상가가 아니라 일반주택처럼 돼 있었어요. 우리집도 처음에는 3~4평짜리 하꼬방(작은 가게)에서 함석에 페인트글씨로 간판을 만들었죠. 예산에서는 드물게 유리창을 크게 냈는데, 어린애들이 유리창에 붙어서 코묻히며 구경을 해도 남편에게 '우리 손님 될 애들이니 그냥두라'고 했더니, 말처럼 되더라고요. 그런거 보면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죠."김씨는 60이 넘은 나이에도 손님을 앉아서 맞지 않는다. '손님이 최고다. 주인이 앉서 손님을 맞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낳은 오래된 습관이다.
그리고 '시류를 읽는 눈'<쬐끄만백화점>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맞은편 <그린조이>라는 옷가게 자리였다. 이 일대가 모두 상가건물로 새로 지어질 무렵(김씨는 80년대 초반으로 기억했다), 있던 자리에 건축된 건물에 세를 든 뒤, 점차 점포를 늘리다가 건물을 매입한 뒤에는 1층 전체를 털었다.
그 뒤로 여러 해 동안 다른 업종에 투자하면서 사업확장을 꿈꾸던 김씨가 <쬐끄만백화점>에만 매진하게 된 것은 IMF 때였다.
"사람이 살다보면 계속 올라가는 경우만 있지 않더라고요. 돈은 욕심내는 게 아니라 따라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욕심 때문에 다시 빚이 생기면서 겸손해지고, 초심으로 돌아온거죠." 이즈음 <쬐끄만백화점>의 두번째 성공비결인 '시류를 읽는 눈'이 빛을 발한다. 현재 자리로 이전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모두 말렸다고 한다. 주택은행이 있다가 합병되면서 나갔으니 '죽은 자리'라고 다들 꺼려했던 것.
그러나 김씨는 '앞으로는 상가에 반드시 주차장이 있어야 된다'는 확신을 갖고 실행에 옮겨 멋지게 성공했다.
물건의 내용에도 큰 변화를 줬다.
"처음 저희집에서 취급한 물건들은 주로 이태리산, 일본산 등 고급 수입품들이었는데, 지금은 누구나 부담없이 사갈 수 있도록 대중화했죠. 단골손님 중에는 '전처럼 물건이 고급스럽지 않다'고도 하시지만, 저는 서민화된 게 좋아요."마지막 키워드는 '성실'<쬐끄만백화점>은 일대 상가에서 제일 먼저 문을 열고 제일 늦게 닫는다. 김씨는 오전 8시 30분에 나와 안팎 청소를 말끔하게 하고, 오전 9시면 손님 맞을 준비를 끝낸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은 그로부터 13시간 뒤인, 밤 10시다.
1년 365일 가운데 문을 닫는 날은 다섯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 많은 물건의 위치를 일일이 기억할 수 있는 비결도 사입(상인들이 물건을 사들이는 것)부터 가격표 붙이기, 진열, 판매, 포장까지 직접 다 하기 때문이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쬐끄만백화점>의 롱런 이유, 그 세번째다.
꽃다운 2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예산읍내 상가를 지키고 있는 김씨는 이제 가격표를 보려면 눈을 가늘게 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 친절하고 성실한 상인을 만날 수 있을까?
"글쎄요, 전에는 50만 되면…, 60만 되면… 했었는데 여기까지 와보니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어요. 손님도 저도 놀이터 삼을 수 있는 날까지..." 손님을 맞는 중간중간 이어가던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김재씨가 나즈막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네, 백화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