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에 세계 곳곳에서 고향을 찾아와 만난 왕산 후손들
박도
"소인기(少忍飢)하라"제가 2009년 9월 28일, 항일의병장 왕산 허위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초대받아 가보았더니 왕산 후손들이 100년 만에 중국, 러시아, 미국, 키르키즈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왔습니다. 이분들은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세계 곳곳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당신 할아버지가 서대문 감옥 개설 제1호로 순국당한 고국을 찾아 온 후손들은 페인트 통을 들고 다니거나, 공사장의 막일을 하다가 적응치 못하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거나, 또 한 손녀는 평생 만주로 중앙아시아로 유랑하다가 미혼인 채 귀국하여 고국에서 외로이 사신다는 얘기… 이것이 구한말 13도 창의군 군사장 후손들의 현주소입니다. 문득 돌아가신 조문기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아직 독립이 되지 않았습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일제강점기 때보다 더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일제강점기 때는 그래도 일본 놈들을 상전으로 모시느라 그놈들 눈치라도 봤지만 지금은 네 활개를 펴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그러면서 청와대 초청에도 응하지 않고 혼자 일인 시위를 하시던 그 기개가. 정 국장님 이사 간 집 방안에는 임종국 선생 사진 액자를 걸지 말라는 이 글을 쓰다가 제 책장 위를 올려다보자 15년째 지키고 있는 허형식 장군이 액자 속에서 한 마디 하는군요.
"우선 자네부터 내 사진을 걷고 정 국장에게 말하시게."어찌 보면 똥 묻은 돼지가 겨 묻은 돼지 나무라는 격이 되었고, 숯이 검정 나무라는 격이 되었습니다. 저는 정 국장과 견줄 만큼 처절하게 살아오지 못해 이 비유가 잘못된 줄 아오나 아무튼 아픈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정 국장님, 기왕에 새로운 곳으로 가셨다고 하오니 그곳에서 잘 적응하시며 조금만 더 참고 사십시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언젠가는 이 땅에도 정의의 싹이 돋아날 겁니다.
"소인기(少忍飢)하라."이 말은 조지훈의 '지조론'에서 나온 말로 "조금만 더 참으라"는 뜻입니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이육사 같은 분은 일제 총칼에 밀려 북방에서도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고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잉태하였습니다.
이제 밤이 깊으니 아마 곧 새벽이 올 겁니다. 두서 없는 저의 횡설수설이 정 국장님을 더욱 혼미케 할 듯하지만, 그래도 제 진심이 담긴 글이기에 이사 선물로 띄웁니다. 정 국장님, 부디 건강 건필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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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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