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하려고 했던 학교의 대부분이 사립학교이다.
김행수
사실 교과서 채택은 이사장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현행 법률상 교과서 채택을 포함한 교육과정에 관한 사항은 학교장의 권한이다. 또 사립학교법 제20조의2에 의하면, 이사장이 학교장의 학사행정에 관한 권한을 침해하면 이사 승인 취소 사유가 되어 이사(장)에서 쫓겨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언론들은 교과서 채택 관련 멘트를 듣기 위해 학교장이 아니라 이사장의 입을 쫓아다니는 모습을 보였다.
더 황당한 것은 이들 사립학교들 중 또 일부가 과거 사학비리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학교이거나 우리 사학의 고질적인 병폐인 족벌사학이라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수원의 동원고와 동우여고는 경복대학교 등과 같은 학원 소속인데, 이 학교 설립자는 경동대와 동우대·경복대, 경문대 등을 포함해 10개에 가까운 사립학교를 소유하고 있다. 대표적 문어발사학인 것이다.
서울 창문여고도 '족벌세습 사학'이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학교는 부부가 이사장과 교장을 하다가 이후 그 아들에게 그 자리를 넘겨줬다. 40대 초반이었던 부부의 아들은 '전국 최연소 교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현재까지 교장을 역임하고 있다. 분당 영덕여고는 부부가 이사장과 교장을 맡고 있고 아버지는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경남 창녕고도 설립자 배우자가 교장을 하는 등 크게 다르지 않다.
교학사 교과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또 하나 주목할 것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려고 했던 대다수 학교의 전교조 조합원 비율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시도했던 학교 중 창문여고, 동원고, 동우여고, 청송여고, 분당 영덕여고, 지리산고, 상산고 등 등 10여개 학교는 아예 전교조 교사가 한 명도 없었고 전체 19개 학교에 전교조 교사는 24명으로 학교당 평균 1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최대 교원단체라는 교총은 326명이나 있어서 전교조 교사의 14배나 되었다.
이는 교장이나 이사장과 같은 권력을 비판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학교에서는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이번 교학사 교과서 파동은 역설적으로 족벌운영과 독단적 운영이라는 대한민국 사학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군인자녀들을 위한 학교인 한민고가 사실상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포기함으로써 끝나는 듯했던 교학사 교과서 파동은 서울디지텍고(청지학원)가 이어갈 듯하다. 서울디지텍고는 오는 24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열어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포함한 교과서 채택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디지텍고는 교학사 교과서를 복수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곽일천 교장도 지난 9일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학교에 비치해 교육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시교육청도 자료를 통해 "서울디지텍고가 교학사 교과서를 정식 교과서로 채택하는 게 아니라 학교 측이 일부 구입해 일정한 장소에 비치하는 참고자료로 활용하려 하기에 복수 채택은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서울시교육청까지 진화에 나섰지만,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일부 누리꾼들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고 있다"며 비판했고 시민사회단체와 교육계, 역사학계도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이렇게 우려하는 이유는 교학사 교과서가 한 학교에서라도 살아남는다면 이를 시작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학사 교과서 파동을 통해 노출된 대한민국 사학의 족벌경영과 독단적 운영은 국민의 상식과는 맞지 않다. '족벌세습'과 '독재'는 보수 우익이 입만 열면 증오하는 북한 체제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사학의 문제라는 점을 교과서 파동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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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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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 채택 학교들의 '희한한'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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