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사이가을과 겨울사이 책표지
최원석
눈 내리는 날 소설을 읽는다. 이런저런 생업에 소홀할 수 없는 팔자여서 책을 손에 들어본 지가 언제였던가 싶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멀리 두고 사는 편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이번에 집어든 책은 지난해 11월 장편소설 <사람의 얼굴>로 제21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한 이종하(본명 이종득) 작가가 출간한 소설집 <가을과 겨울 사이>였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만난 사이지만 이종하 작가가 소설을 몇 달 사이에 두 권이나 발표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못해서 더욱 관심이 갔다.
먼저 표지 그림이 무엇보다 퍽 낯설다. 고무신을 신고 앉아 있는 남루한 차림의 여자인 것이 그렇다. 작품 해설을 쓴 임헌영 문학평론가는 이종하 소설을 '바람처럼 떠도는 이들을 위한 진혼가'라고 제목을 붙였다. 표지 그림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해설 말미에 쓴 글을 먼저 소개한다.
그의 소설은 우리 시대가 당면한 온갖 부조리와 비인간화 현상을 결손가족으로 상징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결손가족처럼 결핍된 공동체의식으로 야만적인 인간과 인간이 서로 이리인양 물어뜯어대는 이 복마전의 세태를 이종하는 분노나 절규가 아닌 담담한 목소리로 담아낸다. 정교성이 모자라는 대신 소박성이 돋보이는 이 소설들은 우리 시대의 수난 받고 핍박당하는 사람들의 언 가슴을 조금이라도 녹여주기를 기대한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바람처럼 떠도는 우리 시대의 생령과 망령을 달래 줄 수 있는 진혼가가 될 것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나는 본격적으로 책 읽기에 들어갔다.
첫 작품을 읽자, '내가 아는 이종하 맞네' 단편 2편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가을과 겨울 사이'와 중편 3편 '바람의 끝은 어디인가' '옥이' '안개소리'로 구성된 소설집 <가을과 겨울 사이>는 사실 연애 소설 같은 제목을 하고 있어서 내가 아는 작가 이종하와 얼른 매칭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첫 소설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를 읽자, 역시 내가 아는 이종하의 작품이었다. 작품 속에 서사를 따라가다 보니 곳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싶었다.
내 아들이 자동차 바퀴에 깔려 죽었는데도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평스러웠다. 텔레비전에서 아들의 죽음을 보도하는 여자아나운서도 전혀 슬픈 기색이 아니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당신은 왜 슬퍼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아이를 안은 채 함박웃음을 짓고 가는 어떤 부부 앞을 가로막고 싶었다. 유치원도 달랑 하루만 쉬더니 정상 운영이 되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고, 살아 있는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유치원 원장은 말했다. 사내는 원장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죽은 아들이 다시 살아나지도 않았고, 유치원도 그냥 그대로 있었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또 다른 단편 소설 '가을과 겨울 사이'는 정말 지독하게 이기적인 세상을 독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33살의 여자 '하영'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읽는 동안 답답한 마음에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도 들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던 것은 하영이란 여자가 나름대로 매력있는 여자라서 그랬다.
공사장에서 사고로 죽은 아버지, 어린 남매를 건사하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린 어머니 이야기도 그렇고, 그녀에게 작은 희망의 메신저로 등장하는 교감 선생 역시 너무 무기력하게 그려져 있다. 왜 작가는 이야기를 굳이 이렇게 엮어야 했을까. 답답했던 이유이다.
그 순간 작가 강기희가 '이종하의 소설은 김기덕의 영화만큼이나 감추고 싶은 무언가를 기어코 들춰내 보이는 불편함이 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종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직설적인 화법도 그렇고, 매사에 매우 적극적이면서 다혈질이라는 점도 그렇다. 그러니 그의 소설이라고 달라지겠는가.
불편하지만 '가을과 겨울 사이' 한 장면을 들여다보자.
어머니가 그랬다. 인물만 반반한 채 머리에 든 것이 없는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다 추락사고로 죽자 다방밖에 일할 곳이 없다고. 그러더니 술집으로 옮겨갔고, 종내는 8살짜리 동생과 13살이었던 나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그것도 산동네 단칸방에다가 쌀독마저 비워둔 채 집을 나갔다.나는 어머니가 사흘째 돌아오지 않은 그날부터 어머니를 기다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 어머니가 차라리 돌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을과 겨울 사이- 불편하지만 공감해야 하는 사회적 소설... 참 난감하네이종하 작가의 데뷔작 '바람의 끝은 어디인가'는 문학사상 신인상 수상작품이다. 책을 받아들고 먼저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지만 일부러 뒤로 밀어두었다.
'옥이'는 중편소설로 층층이 쌓아 올린 서사적 구조의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어느 여름 날 청량리 창녀촌에서 시작되는 소설이 동해 바닷가 마을에서 끝난다. 도입부분과 소설 중간,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병원장 아들 정우와 창녀 옥이의 슬픈 섹스 장면이 길게 묘사된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설정이겠다 싶지만, 읽다보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잘 들어난 인물 설정이고 서사 구조가 탄탄하다.
또한 우리 사회를 극단적으로 함축해서 보여주는 인물 설정이어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작가와 일 년에 한두 번 이상 술을 마시면서 세상 살맛 안 나는 일로 넋두리 하다가 헤어지기를 수 년 째 하는 사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녀는 대답 없이 시선만 내민다. 절대 스물 한 살의 처녀 같지만은 않다. 정우는 스물 한 살의 처녀가 어떤 모습인지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혜영이와 정미가 그 나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니들에게서는 지금의 이 여자 같은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니들은 그저 철부지였다. 좋으면 웃고, 싫으면 투정부리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사달라고 떼를 쓰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꼭 먹어야 한다고 고집만 부렸다. 그게 스물 한 살의 여자라고 정우는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이 여자는 세상살이에 알 거 모를 거 다 알아버린 서른 줄기의 여자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진지하게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빛에도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이 짙게 고여 있다."잘못한 거 같아 오빠, 오빠를 따라나서는 게 아닌데……. 내 주제도 모르고 따라나선 거야. 창녀 주제에 어떡해……." -옥이-이종하 작가는 <오마이뉴스>에서 이종득이란 본명으로 그동안 활동했다. 선거 때마다 특별취재단에서 활동한 그는 혼탁한 사회를 늘 아프게 바라본다. 2007년 대선에서는 대선 특별취재단으로 활동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기자 명함을 내던지고 창조한국당 강원도당 창당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렇다고 정계에 입문을 하겠다는 계획이나 마음도 없었다. 당시, 대선 운동 기간이 끝나는 날 모든 정치 활동을 그만둔 것을 보아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서도 강원지역을 돌아다니며 취재를 해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송고하더니, 국회의원 9석 모두를 새누리당에서 차지한 결과에 어이없어 했다. 그러다 대선에서 마저 강원도에서 야당이 참패를 하자 지난해에는 정당에 가입해 바로 당직을 맡아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그가 쓴 소설이니 눈여겨보는 것이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소설 '옥이'를 읽는 동안 나는 슬펐다. 그가 우리 사회의 도덕적이지 못한 부분에 광적으로 흥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서 더욱 슬펐다.
그의 소설 '바람의 끝은 어디인가' '안개소리'는 가족사 소설 형식으로 쓴 사회적 소설이다. 작가 강기희의 말처럼 정말 우리 사회에서 들춰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이종하의 소설 읽기는 그래서 읽는 내내 참 난감했고, 읽고 나서는 나도 분노하게 만들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바로하면 바로된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