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들어가려 아등바등... 그래봤자다

[주장] 정말 중요한 것은 '취업' 아닌 '진로'

등록 2014.01.28 16:53수정 2014.01.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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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군 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해입니다. 그때에도 영어는 취업 문을 무섭게 지키고 선 최대 방해꾼이었습니다. 토플(TOEFL)이 한참 뜨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나서서 취업용 토플 강좌를 개설해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해 가을, 그 토플 강좌 중 하나를 신청했습니다. 영어로 된 문학 이론서를 본격적으로 읽어 보자는 욕심에서였습니다. 당연히 한편으로는 진로 준비를 겸하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취업을 포함한 진로 문제는 고학년에 이른 대학생들의 최대 고민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국어국문학도였던 저는 복학 후 한참 동안 중국어에 빠져 지냈습니다. 한어수평시험(HSK; 일종의 공인 중국어 인증시험)을 몇 번 치르고, 중국 연수도 꽤 길게 다녀왔습니다. 중국으로 나가 한글 학교를 세워 보자는 남다른 야심(?)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중국어 탐닉은 말하자면 제 나름의 '창업' 준비였던 셈입니다.

잠깐이었지만, 4학년 1학기에 언론사 시험에 빠져든 때도 있었습니다. 수년 간 학보사 주임교수로 있었던 학과 지도교수에게 조언을 구하러 간 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언론고시'라는 말은 이미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달리 말하면 '비공식적인' 수험 정보가 무척 중요했습니다.

"교수님, 저 신문사 시험을 치러 보려고요."

지도교수 연구실을 찾아가 무턱대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언론사 채용시험에 관한 수험서를 찾기 힘들더라고요. 마땅한 게 없어요."
"서점을 잘 뒤져 봐. 아마 책들이 좀 있을 거야. ○○신문사에 아는 친구가 하나 있으니 나도 한번 알아보겠네."

지도교수는 제게 아버지 같은 분이셨습니다.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연구실을 나와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여전히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울 도심의 대형 서점으로 가 볼까 하다가 다음으로 미루고 그만두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뒤 지도교수 연구실을 다시 찾았습니다. '정보'부터 알아보자는 얄팍한(?) 계산에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 불성실한 취업 준비생이었습니다.


"수험서 하나 제대로 고르지 못했다고 말했더니 아예 포기하라고 하던데?"

지도교수가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허술한 열정과 의지로 어떻게 기자가 되려고 하느냐는 질책이었겠지요.


그래도 시험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제법 많이 들었습니다. 그걸 자극제 삼아 학과가 다른 몇몇 친구들과 함께 공부 모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영어 시험을 준비한다며 <타임(Time)>지 같은 영어 잡지 기사를 나눠 읽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친구들은 외부의 여러 대학 학생들이 연합한 공부 모임을 찾아 하나둘 학교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는 학원에서 강사 알바(아르바이트) 하느라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렇게 바깥으로 오가며 쓸 돈도 넉넉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국 혼자서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따로 신문과 잡지를 스크랩하면서 시사 상식을 공부했습니다. 칼럼 분석을 통해 논술문 작성 연습도 했습니다. 얼마나 오래 갔겠습니까. 서너 달 반짝 하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습니다.

불량한 제도 철회했지만... 누가 삼성에게 자신감을 주었나

 제 천성이나 성격에 그런 면이 좀 있기는 합니다. 좀 더 근본적인 배경이 있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었습니다. 그즈음 저는 그때나 그 이전이나 제가 책을 보고 글을 쓰며 '공부'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천성이나 성격에 그런 면이 좀 있기는 합니다. 좀 더 근본적인 배경이 있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었습니다. 그즈음 저는 그때나 그 이전이나 제가 책을 보고 글을 쓰며 '공부'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sxc

그 사이에도 같은 학과 친구들은 대부분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학원에 다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찌감치 그만둔 토플 강좌도 여전히 열심히 듣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동기들에게 가장 흔한 일은 학교 취업지원과를 들락날락거리는 일이었습니다. 그곳 게시판에 붙어 있는 채용 정보를 유심히 보는 친구들이 참 많았습니다. 제 눈엔 모두 무망한 일들로 보였으나 모두들 열심이었습니다.

물론 그때 저는 그렇게 한가하게 남일 말하 듯 할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생활비와 학비는 학원 강사 노릇을 하면서 충당했습니다. 급여 받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하루 끼니를 어떻게 챙겨 먹나 하는 걱정도 함께 늘어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 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마셨습니다. 좋은 영화가 나오면 혼자서라도 꼭 보러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지'식의 자포자기나 체념주의에 빠졌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어떻게든 되겠지'와 같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에 더 크게 물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천성이나 성격에 그런 면이 좀 있기는 합니다. 좀 더 근본적인 배경이 있었습니다. '공부'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었습니다. 그즈음 저는 그때나 그 이전이나 제가 책을 보고 글을 쓰며 공부부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즐기면서 뜨겁게(?) 할 수 있는 일도 공부에 매진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아침 일찍 진행된 토플 강의 시간에 꾸벅꾸벅 졸면서, 그리고 언론사 시험 준비도 제 풀에 지쳐 시들해지면서 불현듯 깨달은 저의 놀라운 역량(?)이 바로 공부였습니다.

대학 졸업 학년 즈음해서야, 그것도 아주 천천히 오랜 시간에 걸쳐 제 깜냥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르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늦었다고 해야 할까요. 어디 답이 있겠습니까. 그 뒤부터는 모든 것이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좀 더 강력한 낙관주의를 따라 흘러갔습니다. 지금도 저는 공부를 향한 불길이 그 시절 못지 않게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삼성이 올해부터 자사 채용시험에 대학별 총장추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밀려 사흘 만에 철회했습니다. 그간 20여 만 명이 삼성 채용시험에 지원하고, 따로 그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학원이 성업 중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왔습니다. 삼성이 '불량한' 총장추천제를 철회했다고 해서 그런 열풍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을 비롯한 이른바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대학과 대학생들이 치는 몸부림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삼성은, 사람들이 그 인원수로 대학 서열 순위를 매길 게 뻔한 총장추천제를 도입할 생각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걸까요. 이번과 같은 거센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는 제도를 거리낌 없이 내놓는 자신감을 누가 삼성에게 심어 줬을까요. 자존심도 뭣도 없이 대기업과 좋은 직장에 목을 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학과 대학생의 현실일 뿐일까요. 제 찌질한 과거 이야기를 꺼내게 한 배경 질문들입니다.

대학 4학년 때 제가 진정으로 고민한 것은 '진로'였지 '취업'이 아니었습니다. 좀 거창하게 말하면 제 인생 행로가 어떤 세계관과 가치관을 따를 것인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취업'은 그런 '진로'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자 수단에 불과할 뿐이었습니다. 토플과 중국어 공부, 언론사 시험 준비 등에 죽자사자 매달리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때 정녕 죽자사자 매달려 어느 회사에 취업이라도 했다면, 지금과 같이 즐기듯 공부하며 사는 삶은 결코 쉽게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입니다. 욕 먹을 각오하고 씁니다. '진로'가 중요하지 '취업'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장난이 아닙니다. 세상 물정 무시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취업, 곧 일자리가 진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취업은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는 진로이자 인생입니다. 이 명백한 사실을 잊고 많은 사람이 취업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삼습니다.

능력주의에 대한 의심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상담이라는 걸 합니다. 꿈을 물으면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답하더라도 꿈이 아니라 장래 희망 직업인 경우가 태반입니다. 물론 장래 희망 직업조차 말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어느 경우든 아이들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합니다. 꿈이 없으니 자신을 못나다고 보는 것입니다. 장래 희망이 시원찮거나 그마저도 없으니 이보다 더 못난 데가 어디 있겠느냐며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꿈과 희망, 없어도 된다. 아이들은 사뭇 놀랍니다. 한마디를 더 합니다. 온전히 자기 꿈과 희망 따라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 계획대로 인생이 진행된다면 그 얼마나 지루하겠느냐. 아이 눈에 살짝 빛이 보입니다. 그때 회심의 한 마디를 던집니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충실하라.

계획을 세워 미래를 준비하라는 말은 자기계발 논리의 정석과도 같습니다. 계획성 있게 미래를 준비하는 삶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많은 이가 현재를 계속 유예하는 삶을 삽니다. 10대 시절의 좌충우돌은 20대에 가서 하라고 합니다. 20대 청춘 시절의 사색과 방황은 철없는 짓으로 치부됩니다. 추구하는 이상이 있더라도 직장 얻은 다음에 하라고 조언(?)합니다.

직장을 얻으면 맘껏 자기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일단 승진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를 수 있도록 일에 충실하라고 말합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하라고 합니다. 그뒤로도 결혼, 출산, 자녀 양육, 자녀 취업 등등이 줄줄이 기다립니다. 끝 없이 이어지는 그 압박 속에서 '나'의  '현재'는 계속 유예됩니다.

하지만 정녕 안타깝게도 '그래 봤자'입니다. 10년 3개월. 지난 해 계산된 대기업 평균근속연수(<연합뉴스> 2013년 7월 31일 자 기사: 대기업 직원 평균 10.3년 근속…연봉은 5천980만원)입니다. 그 좋다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스펙을 준비하며 빛나는 청춘 시절을 바친 결과치고는 그다지 만족스럽게 보이지 않는 성적표입니다.

평균근속연수 10년 3개월은, 여자는 대략 30대 초·중반에, 남자라면 30대 중·후반에 제2의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30대면 한참 일할 나이입니다. 그 물오른 나이에 새 직장을 얻으려고 이곳저곳을 전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정도라도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인생에 비하면 어디냐며 나무란다면 그냥 조용히 입 닫겠습니다.

이제 삼성은 총장추천제의 후속타로 과연 어떤 새로운 제도를 내놓을까요. 그 무엇을 내놓더라도 '을' 신세인 대학이나 대학총장들이 삼성을 향해 제대로 된 댓거리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한다'면서, 스스로 노력해 얻은 '능력'에 따라 차별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는 '괴물' 20대들(오찬호 지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참조)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20대를 향한 기대를 완전히 접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 땅의 20대들이, 맹목적인 스펙 경쟁이 좀 더 부유하게 사는 집 자식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무모한 게임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기계발이 전제하는 공정한 게임이나 능력주의가 과연 실제 현실에 바탕을 둔 절대적인 '진실'인지 의심해 보았으면 합니다.

더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나'가 누리는 'SKY'의 명성이 오롯이 '나'의 '능력' 덕만이 아니듯, '지잡대'가 '나'에게 주는 열등감이나 피해의식 역시 결코 '나'의 탓일 수는 없음을 깨닫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대들이 성실하고 열심히 살되,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나 때문만은 아님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개인의 노력과 열정, 의지조차도 '배경'에 크게 좌우됩니다. 설마 이건희 삼성회장의 아들로 태어난 이재용 씨가 남다른 능력이 있어서 지금 삼성전자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요. 대니얼 리그리가 <나쁜 사회: 평등이라는 거짓말>에서 적절하게 비유한 것처럼, 투 스트라이크를 맞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과, 3루에서 태어난 주제에 자기가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엄격히 구별하는 게 맞습니다. 그게 진짜 '공정'이고 '합리'가 아닐까요.

게임은 공정하다는 '신화'가 조금은 허물어지고, 능력주의에 대한 과신이 살짝 누그러질 때 대한민국이 한 발 더 전진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이번 삼성의 총장추천제 같은 '멘붕' 제도는 언제든지 다시 찾아와 우리 뒷덜미를 후려칠 것입니다. 이 땅 대한민국에 다시는 총장추천제 같은 '불량한' 제도가 발을 들여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총장추천제 #능력주의 #스펙 경쟁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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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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