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무어콕의 소설 <이 사람을 보라> 표지.
시공사
주인공 칼 글로거는 타임머신을 타고 자신이 살던 1970년대의 영국에서 서기 28년의 예루살렘 인근으로 떠난다. 성경이라는 책을 통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신화적 인물, 예수를 찾기 위해서다.
여기 가지의 이야기는 과학과 종교, 양 쪽을 모두 만족시킬 듯 하다. '타임머신'을 만들어 타고서 '예수'를 찾아 떠나는 설정이라니.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와 '종교적 신념의 중심이 된 인물과의 만남'이 동시에 이루어지니, 그 전개가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줄거리의 중후반부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이어진다. 칼이 타고 온 타임머신은 완전히 망가져서 1회용 편도행인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끝내 발견한 예수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모습과 매우 다르다. 칼은 근엄하고 초인적인 자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남자를 마주하고 큰 충격에 빠진다.
결국 <이 사람을 보라>는 종교적 설화를 바탕으로 한 SF소설이지만, 과학이나 종교 어느 쪽을 쉽게 옹호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에서 느껴지는 두 분야의 무기력함과 그럼에도 이에 기대려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을 차분한 시선으로 응시할 뿐이다.
이런 이유로 소설이 출간된 이후, 작가 마이클 무어콕은 기독교 근분주의자들로부터 항의편지와 살해협박까지 받았다. 이에 마이클은 자신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한 독자에게 '내용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니 미안하다'며 정중히 사과했고, 책값과 우표값을 동봉하여 답장했다고 한다. 작가가 인위적으로 기울이지 않은 판단의 저울에, 약간의 다른 해석조차 용납하지 못한 종교계가 부끄러운 행동으로 무게추를 올려놓은 셈이다.
발칙한 상상으로 제 역할 해낸 <이 사람을 보라>
본문에서 작가는 타임머신의 작동원리나 이를 만드는 사람의 눈물겨운 노력에 대한 설명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 대신 <이 사람을 보라>의 줄거리는 한 인간의 삶에 더 촛점을 맞춘다.
주인공 칼은 어릴적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계기로 사회부적응자가 된 소심한 남자다. 독실한 신자도 아니면서 종교에 회의적인 여자친구와 토론이라는 명목으로 시시콜콜 설전을 나눈다.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자신도 허탈해진다.
우연한 계기로 타임머신에 승선하게 된 칼은 '과거로만 여행할 수 있다'는 말에 망설임없이 목적지를 정한다. 바로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당하기 1년 전의 예루살렘이다. 그는 자신이 믿던 신념의 증거를 찾아서 떠나지만, 결과는 어느 쪽으로도 기대와 달리 참혹했다. 그가 알던 '역사'는 직접 목격한 것과 꽤 달랐던 것이다.
이 부분의 묘사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예수의 존재 자체가 허구일 수 있다는 내용이 노골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이 지점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뭐가 먼저일까? 그리스도라는 개념일까 아니면 그 존재일까?"라는 대사를 통해 드러나듯, 작가는 진정 중요한 것이 종교계가 매달리는 '진위여부를 통한 정당성 입증'인지 '종교가 해야할 시대적 역할'인지 묻는다.
"과학은 '어떻게'라는 질문에 답을 주는 것이지 '왜'라고 묻지는 않아. 대답을 할 수 없거든." (본문 194쪽 중에서)'과학'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기술의 발달은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인류의 불안한 미래에 희망이 되기엔 여전히 부족한 모습이다. 종교는 긴 세월동안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관의 토대가 되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인류애'보다 교리 그 자체를 보호하려는 태도로 실망을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며 방황하고 고통받는 주인공 칼의 모습이 그저 소설 속 상상에 불과할까? 아니면 현실 속 우리의 자화상에 가까울까?
"세상에는 외로워야 할 이유가 언제나 있어." (본문 93쪽 중에서)이런 물음에 독자가 고개를 저으며 의문을 갖고 더 깊이 생각하게끔 만드는 것 만으로도 이미 이 책은 SF소설 특유의 발칙한 상상과 더불어 문학적 소명을 다했다고 본다. 물론 판단은 이 책을 읽는 독자 개인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이 사람을 보라
마이클 무어콕 지음, 최용준 옮김,
시공사,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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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간 남자, 예수를 만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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