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현 하기에 있는 요시다 쇼인의 옛집과 생가 터. 1) 옛집의 일부는 쇼카손주쿠로 되어 있으며 이것은 강의실이다. 2) 쇼카손주쿠 뒤쪽, 쇼인이 하기에 강제 송환되었을 때 갇혀 있던 곳(표시 부분)으로 그는 이곳에서도 강연을 했다. '쇼인 신사'가 이 건물과 마주하고 있다. 3) 2의 표시 부분 내부. 4) 쇼인의 생가 터. 출처는 <에도의 여행자들>
에도의 여행자들
아베는 1954년 9월 21일 도쿄에서 당시 <마이니치신문> 기자였던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郞)와 어머니 요코(洋子)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베 집안은 계파 정치와 세습 출마가 전통인 일본의 대표적 정치 명문가다. 아베 집안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태동지인 조슈번(長州藩), 현재 혼슈(本州) 남단의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이다. 아베는 91년 이곳에서 아버지의 선거구를 승계한 이후 93년부터 지금까지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내리 당선된 7선 의원이다. (내각총리가 의회 해산권을 갖는 일본의 중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통상 2년반 만에 해산되고 선거가 행해진다)
야마구치는 아베의 '혼네'를 구성하는 정체성과 역사 인식의 출발점이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59)도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일본 역사사전은 그가 무사계급으로 사상가, 교육자, 병학자, 지역연구가라고 설명한다. 쇼인은 사쓰마번(薩摩藩, 현 가고시마현)과 함께 메이지유신(1868년)을 주도한 조슈 번벌(藩閥)의 스승이다.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게 이끈 근대화의 선각자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는 정한론(征韓論, 187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 정계에서 일어났던 조선 정복에 관한 주장)의 원조이자 일본 군국주의와 침략주의 선동가이다.
쇼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천하통일을 이루고 에도(江戶, 현 도쿄)에 수립한 에도막부(江戶幕府, 1603~1867) 말기에 조슈번의 도읍지였던 하기(萩)성의 쇼카손(松下村)에서 하급무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양부가 죽자 숙부가 세운 사설학당인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서 공부해 11살 때 번주(藩主)에게 병학(兵學)을 강의할 만큼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에도로 유학간 쇼인은 1853년 미국의 페리(Perry)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개항을 압박하자, 쿠로후네(黒船, 에도 시대 말기에 일본 근해에 출몰한 서양의 대양 항해용 대형함으로 당시 타르로 선체를 검게 칠해 붙여진 용어)를 시찰하고 큰 충격을 받아 해외유학을 결심한다.
서구열강이 군함을 앞세워 개항을 압박하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기운이 먹구름처럼 몰려오던 시절이었다. 쇼인은 한 번은 러시아 군함, 다른 한 번은 미국 군함을 타고 밀항을 시도했으나 두 번 다 실패했다. 그는 조슈로 이송되어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그는 한달 평균 50권씩 600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전해진다. 감옥 안에서 <맹자>(孟子)를 강의하고, 밀항 동기와 사상적 배경을 담은 <유수록(幽囚錄>을 썼다. 그가 24살 때였다.
"무력 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즉시 홋카이도를 개척해 제후(諸侯)를 봉건(封建)하여 캄차카와 오호츠크를 빼앗고, 오키나와와 조선을 정벌해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타이완과 필리핀 루손 일대의 섬들을 노획해 옛날의 영화를 되찾기 위한 진취적인 기세를 드러내야 한다…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조선과 만주, 그리고 중국의 영토를 점령하여 강국(유럽)과의 교역에서 잃은 것은 약자에 대한 착취로 메우는 것이 상책이다."일본인들이 꼽는 근대 최고 사상가의 국가전략이 고작 '약육강식의 하책'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들이 쇼인의 주장에 열광했고, 이 책은 나중에 일본 군국주의 침략의 배경이 된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와 그의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일본에 부국강병의 근대화를 이뤄냈지만, 이웃나라에는 근대화된 신식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보내 침탈한 두 얼굴의 침략자였다.
아베의 롤모델, 군국주의자 요시다 쇼인과 기시 노부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