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이푸르로 오는 버스는 잘 닦이지 않은 길 탓에 심하게 덜컹거렸다. 텀블링에라도 오른 듯, 온몸을 들었다 놨다 하는 2층 침대칸 버스에 누워 4시간여를 자니 우다이푸르에 도착했다. 더스틴은 경이로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온몸이 들썩이는 가운데 어떻게 그렇게 평화롭게 잘 수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도 승차감 좋은 승용차에서조차 단 한숨도 잘 수 없었던 예민한 소녀였는데 말이지. 점점 터프해 지는 나 자신이, 나도 무섭다.
Dustin Burnett
놀고먹는 것 말고 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만, 어쨌든 재충전이 필요했다. 시티 팔라스가 내려다보는 호숫가. 일광욕하는 느린 소들과 빨래하는 여인들. 한적한 풍경이 여기저기 채색된 우다이푸르는, 혼동과 소음에서 벗어나 평화를 즐기기에 적당한 도시인 듯했다.
숙소에서 한숨 늘어지게 잔 후, 바가지로 물을 받아 밀린 빨래를 했다. 콜카타와 바라나시에서 산 물이 잘 빠지는 싸구려 셔츠와 바지. 이제 그 물도 빠질 만큼 빠졌는지 빨아도 색이 나오지 않는다. 색이 빠져 선명함이 사라진 자리에 흐릿한 회색 물이 들었다. 찌든 때는 어쩔 수 없지. 나름 깨끗해진 빨랫감을 탈탈 털어, 우다이푸르의 햇살 아래 널었다. 지난 한 달간의 피로와 때가 싹 씻겨나간 듯 개운하다.
낮잠도 잤겠다, 빨래도 해치웠겠다. 지난 우여곡절과 생고생은 모두 잊고, 아무 생각 없이 평온한 휴식을 취할 테다. 인도고 마살라고 다 잊어 버리고, 한적한 서양식 카페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을 테다.
우리는 호숫가 입구 앞에 있는 독일식 베이커리로 갔다. 향기로운 차, 달콤한 케이크, 따뜻한 햇볕. 내가 찾던 삼박자다. 5루피(한화 약 100원)면 마실 수 있는 짜이지만, 오늘은 기분이니 무려 20루피(한화 약 400원)나 하는 고가의 짜이를 기꺼이 주문했다. 커피를 주문한 더스틴은 두 달 만에 처음 마셔보는 제대로 된 커피라며 기뻐했다. 짜이를 한 모금 마시니 온몸이 녹아내리듯 나긋나긋하다. 역시 돈을 준 만큼 받는 것인가. 북인도 최고의 짜이로 인정한다.
현지 식당보다 값이 조금 더 나가는 카페여서 그런지, 카페에는 향긋한 비누 냄새가 나는 여행자들 말고는 없었다. 배타적인 특권이란 게 이런 건가. 돈이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평화. 나는 잠시 골치 아픈 인도를 잊었다. 소똥 냄새도 잊고 마살라 따위도 잊었다. 평화롭다. 따뜻하고 달콤하다.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평화... 소똥 냄새, 마살라 따위 잊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