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석현이와 오른쪽 성찬이왼쪽 석현이와 오른쪽 성찬이가 만난 후 롯데리아에 가서
허우범
십일쯤 지났을 때 모처럼 둘째아이를 위해 시간을 내었다. 실내 놀이터에 가고 싶어 해서 덕정동의 한 놀이터를 찾았다. 아이가 즐겁게 놀고 있는데 아내가 석현이 이야기를 꺼낸다. 약속도 했었고 회암동도 가까우니 석현이를 지금 찾으러 가는 것이 어떤지 아이에게 물었다. 십분만 놀고 간다더니 마음이 바뀐 듯 바로 가잔다. 오후 4시 즈음이었지만 무엇이 급한지 겨울 해는 서산으로 도망치듯 기울어가고 있었다.
회암동은 고려와 조선 초기까지 있었던 큰 사찰 회암사지가 있는 동네이다. 회암사지 서쪽으로 군부대와 공장들이 즐비하고 사이사이에는 주택들이 들어서있다. 시골냄새가 물씬 풍겨나지만 지름이 수 킬로미터나 되니 작은 마을은 아니다. 해 넘어갈 시간이 얼마 안 남은 늦은 겨울오후에 '동' 이름만 알고 아이를 찾기란 쉬운 것은 아니다. 다만 아이와의 약속을 지켜야했기에 가는 길이었다.
덕정동을 벗어나 회암동으로 차를 몰았다. 혹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심에 천천히 마을로 들어서고 있는데 오른쪽 개울 건너 새롭게 단장한 천보제일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교회 앞으로 한 아이가 애완견을 데리고 걸어가는데 낯설지 않아보였다. 주의를 기울여 확인해보니 석현이가 틀림없었다. 회암동에 들어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둘째가 그리워하던 친구라니. 가까이 가서 차를 세우니 어리둥절하던 아이가 알아보고 놀라는 눈치다. 무언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까?
둘째가 석현이를 만난 건 3년 전이다. 당시 그 아이는 아빠 없이 엄마와 함께 구옥 단칸방에서 월세로 살았다. 가족 하나가 더 있었다면 삼촌이라고 부르는 젊은 남성이다. 아이는 삼촌이 무서워 눈치를 보곤 했다. 둘째아이가 처음 그 집을 방문했을 때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져있었고 장난감이 없어 손으로 만든 망치 장난감으로 놀았다고 한다. 초등 1년생임에도 불구하고 활동성이 커서 1~2킬로미터 정도는 어렵지 않게 걸어 다니곤 했다. 어디에서나 인사를 잘해서 지역주민들은 아이를 거의 다 알고 있었다. 형들이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친구들이 놀려도 늘 긍정적 표현을 하던 아이였다. 많은 시간을 함께 놀았던 둘째는 석현이를 늘 마음에 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