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림사건 5명, 재심서 33년만에 무죄

국보법·집시법·계엄법 등 무죄..."남은 피해자 14명에 대한 재심 청구도 진행""

등록 2014.02.13 12:04수정 2014.02.13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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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대체 :  13일 오후 1시 30분]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 직후 고호석씨를 비롯한 재심 청구인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 직후 고호석씨를 비롯한 재심 청구인들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정민규

"무죄를 선고한다."

13일 오전 10시 30분, 반백의 중년이 돼 판사 앞에 선 남자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된 부림사건 피해자들이다. 무죄를 선고하는 한영표 부장판사의 말이 끝나자 부산지방법원 254호 법정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재판 전부터 긴장한 표정을 보여 온 고호석씨를 비롯한 재심청구인 5명은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불과 20분도 되지 않았던 판결. 하지만 이 짧은 시간을 위해 33년을 기다렸다. 그들의 인생에서 잊지 못한 날이 된 1982년 6월 26일. 당시 부산지방법원은 이들이 국가보안법, 집시법, 계엄법 등을 어겼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조작이라고, 고문에 의한 허위진술이었다고 수없이 항의했지만 법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법원은 재심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며 화해의 악수를 청했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단순히 정권에 반대한다거나 사회주의에 관한 공부를 한 정도가 아닌,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므로, 피고인들의 학생운동이나 현실비판적인 학습행위만으로는 위 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검찰이 이적성이 담겼다며 법원에 제출했던 서적 역시 증거로 인정받지 못했다. 법원은 "서적들이 사회주의에 관한 내용을 설명하는 등의 사정이 있지만 그러한 사정만으로 국가의 존립 등을 위협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고, 또한 피고인들에게 이적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 "집시법 위반은 전두환 범행 저지하거나 반대한 정당 행위"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심청구인 고호석씨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재심청구인 고호석씨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밝은 표정으로 법정을 나서고 있다. 정민규

재판부는 계엄법과 집시법 위반에 대해 "피고인들이 계엄령을 위반하여 집회를 한 점은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 및 5·18 광주 민주화항쟁을 전후한 일련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함으로써 헌법의 존립과 헌정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정당한 행위에 해당하여 무죄"라고 판결했다.

또 집시법 위반이 "현저히 사회적 불안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는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하는 법률규정이 폐지되어 처벌이 되지 아니하는 행위에 해당하므로, 범죄 후 법률의 개폐에 의하여 형이 폐지된 경우에 해당한다"며 면소 판결했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서로를 도피시키고, 은닉시켰던 점과 관련해서도 "피고인이 도피시킨 공동 피고인에 대하여 무죄 내지 면소판결이 선고될 것이므로 이들을 도피시켰다 하더라도 범인도피죄 등은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재판 전까지 말을 아끼던 재심 청구인들이 법정을 나서면서 가장 감사의 인사를 전한 건 '변호인' 노무현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고호석씨는 "무엇보다도 오늘의 무죄선고가 33년 전 저희를 위해 헌신해주신 노무현 변호사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당시 공안검사들 아직도 헛소리"...피해자 전원 재심청구 나설 듯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 직후 재심청구인들이 법정 앞에 섰다. 오른쪽부터 노재열, 이진걸, 최준영, 설동일, 고호석.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판결 직후 재심청구인들이 법정 앞에 섰다. 오른쪽부터 노재열, 이진걸, 최준영, 설동일, 고호석. 정민규

이어 고씨는 국가보안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때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시기뿐 아니라 최근까지도 국보법은 정권 안보위해 국민 인권 무참히 정말 유린하는데 악용되었고 그 애매한 법적용의 용처가 도저히 합리적인 법이라 할 수 없고, 악용 우려가 많은 법률이기 때문에 저희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국보법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재심청구인들은 아직도 부림사건이 정당한 법집행이었다고 주장하는 당시 수사 관계자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최준영씨는 "그 당시에 큰 역할을 했던 공안검사들이 아직도 헛소리를 하고있다"며 "전두환의 하수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그 당시 잘못을 반성하지 못하고 저희를 아직도 폄훼하고있다"고 말했다.

이진걸씨 역시 "최병국 검사 같은 경우는 제 담당했던 검사였고 (당시) 그런 사실 없었다고 검찰 취조에서 이야기 했는데 그런 걸 일절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며 "그런데 최근의 인터뷰에서 자기는 (유죄를) 확신한다는 것을 보고 서글픔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설동일씨는 부림사건 뿐 아니라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행위에 대한 진실규명과 국가적 반성을 촉구했다. 설씨는 "그 당시에 국가의 불법 행위로 피해를 입은 많은 분들이 있다"며 "이 분들에 대해 국가가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재심에 참여하지 않았던 다른 부림사건 피해자들도 재판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19명의 사건 피해자 중 5명 만이 선 재판. 1명은 세월을 기다리지 못하고 저 세상 사람이 됐다. 사건 피해자인 송병곤 법무법인 부산 사무장은 "일부는 기존에 집시법과 계엄법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국가보안법에 대한 무죄판결을 받지 못했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건 피해자들이 재심을 청구해 명예회복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림사건 #변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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