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일기자연출산을 꿈꾸다가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엄마가 울면서 휴대폰으로 일기를 7페이지나 썼다고 했다. 끝까지 자연출산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모습이 안타까웠다. 의사의 말 중 아이를 '꺼내야한다'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곽지현
어느 날 조산원 출산을 준비하는 예비 엄마 세 명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때 한 아빠가 퇴원준비를 하느라 조산원 강당을 왔다 갔다 했다. 조산사 선생님이 우리에게 저 두 부부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지 않겠냐고 했다. 우리는 좋다고 했고 예비엄마 셋과 조산사 선생님, 그리고 어제 출산한 두 부부가 마주앉았다.
우리와 마주앉은 두 부부는 참 편안해 보였다. 조산사 선생님 품에 안겨있는 아가도 편안한 얼굴로 곤히 자고 있었다.
"궁금한 거 한 번 물어보세요."조산사 선생님이 말문을 터주셨다. 난 조금 부끄러워서 웃고만 있었고 옆 엄마가 먼저 질문을 했다.
"진통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진통이 너무 무서워서 아기 안 가지려고 했었거든요."
"많이 힘들고 아프죠. 그런데 아기 보니까 다 잊히더라고요. 아기도 많이 힘들었을 거고요.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낳았고 아기도 어렵게 나왔는데 조산사 선생님들이 차분하게 잘 인도해 줘서 선생님들 믿고 끝까지 힘냈어요." 옆에 있던 조산사 선생님이 질문 했다.
"요즘 텔레비전에서 남편들이 부인의 출산장면을 보면 여자에 대한 환상이 깨진다거나 여자로서의 매력이 덜 느껴진다는 그런 얘기들 하는데 남편 분은 그 부분이 걱정되지는 않으셨어요?""저도 그런 얘기 듣고 조금 걱정하긴 했어요. 그런데 막상 아기가 나오는 걸 볼 때는 내 아기, 우리 아기가 나온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죠. 오히려 출산장면을 다 보면서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니까 아내와 아기가 더 소중하다고 느껴졌어요."나는 지난번 출산 장면을 보여주는 영상에서 아빠가 흐느껴 울던 장면이 기억나서, "울지는 않으셨어요?" 하고 물으니까
"울었어요. 그런데 감동의 눈물이라기보다는 아내가 힘들어하는데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눈물이 나왔던 것 같아요. 조금만 더 힘주면 아기가 나올 것 같은데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해줄 수도 없었고요."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내가 진통으로 힘들어할 때 옆에서 같이 힘들어 할 우리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직접 출산을 겪은 두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출산을 결심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출산을 경험하고 아기를 함께 맞이하면서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아빠가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 결국 한 가족 모두가 출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자연출산의 큰 매력이지 않을까.
자연출산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던 사람들조산원에서 마주치는 자연출산에 성공한 엄마들을 보면서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다. 지난 번 '열린 조산원'에서 자연출산 하자고 함께 마음먹었던 두 엄마가 모두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 엄마는 아기가 머리를 아래로 돌리질 않았다. 역아인 채로 자연출산이 어려워 제왕절개 수술로 아기를 만났다.
다른 엄마는 병원에서 한 달 동안 아기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며 당장 입원해서 유도분만을 권했단다. 그런데 입원한 다음날 자연 진통이 와버렸고 12시간 진통하다가 진행이 더 되지 않아 수술했다. 며칠 전 산후조리원에 면회 가서 이 엄마와 얘기하다가 결국 눈물이 나고 말았다. 자연출산을 성공하려고 열심히 운동도 하고 공부도 했는데 최악의 시나리오 대로 아기를 만나버린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버린 입원수속이나 배려 없는 내진 때문에 울었다는 이야기, 입원과 동시에 환자가 되어버렸고 병원에서는 남편에게 최악의 상황만을 전해 남편이 혼자 속앓이 했더라는 이야기, 수술할 때 어느새 정신을 놓아 버렸고 깨어보니 모든 처치가 되어있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그 엄마도 나도 속상해 했다. 이상적인 출산만을 꿈꾸고 있던 그 엄마는 '나'는 사라지고 '병원의 매뉴얼'만 있는 출산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둘 다 자연출산을 할 생각하고 공부도 많이 했는데 예상 못했던 일을 마주하느라 많이 당황해했고 실망스러워 하기도 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기가 위험하다는 데 엄마가 어떻게 자연출산에 대한 고집을 부릴 수 있었을까. 우리는 아쉽지만 엄마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하자고 다독였다. 지금 두 엄마는 내가 자연출산을 성공하면 그들의 실망감이 조금 덜해질 것 같다며 나를 응원해주고 있다. 두 엄마는 이제 육아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이제 나만 남았네.
출산 준비물, 대체 뭘 챙겨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