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7, 8월은 썩은 달... '보살님' 덕분에 살아요"

[전통시장 고군분투기⑩] 모래내시장 '서울떡집'

등록 2014.02.22 12:16수정 2014.02.2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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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곳입니다.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우리에게 시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연재 '전통시장 고군분투기'는 기자를 지망하는 청년들이 시장을 직접 체험하며 느낀 점들을 다룰 것입니다. 장소는 서울의 전통시장 30곳입니다. 취재 원칙은 하나입니다. '시장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 기자 말

2013년 12월 14일 새벽 6시 영하의 어둠 속. 반들반들한 가래떡이 구수한 냄새와 함께 새하얀 김을 미친 듯 내뿜는다. 이흔현(59) 사장이 갓 뽑아져 나온 가래떡 줄기에서 한 덩이를 잡아 떼 건넨다. '쭈~욱'하고 가래떡 늘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손으로 받아든다. 몰랑한 감촉이 좋다. 따스한 온기가 가기 전 한 입을 베어 문다. 찰지다. 막 '탄생'한 가래떡의 점도는 치즈의 그것과 비등하다.

차가운 공기를 뚫고 콧속으로 떡 내음이 빨려든다. 오물오물 입으로 떡맛을 감상한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담백함, 그것이 입속에 머문다. 쫀득이는 그것을 씹고 또 씹는다. 떡을 꿀떡 삼키고 나자 아쉬움만큼의 입김이 피어오른다. 차마 더 달라는 말은 하지 못한다. 영하 8도의 날씨에 홀로 떡을 '짓는' 이 사장을 보며 오들오들 떨고 있다. 과묵한 이 사장이 입을 연다. "떡 좀 씹어." 따끈한 가래떡 한 뭉텅이를 다시 내 손에 쥐어준다. 나도, 이 사장도 잠시나마 웃는다.

모래내, 고요 속 서울떡집

새벽 4시 반 서울시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모래내 시장에 발을 들인다. 부쩍 떨어진 기온 탓에 거리에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른 시간 탓도 있을 것이다. 지하철도, 버스도, 어지간한 교통수단이 사람과 함께 잠들어 있을 무렵 졸린 눈을 부비며 손을 놀려야 하는 곳이 있다. 모래내 시장 속 '서울떡집'이 바로 그곳이다. 시장 주변에서 상호를 물어보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떡집, 그곳을 찾아왔다.

 이른 아침 햇볕이 시장에 내리깔리기도 전 이흔현 사장(우측)과 그의 아들 이동호씨가 입김을 내뿜으며 떡에 콩고물을 묻히고 있다.
이른 아침 햇볕이 시장에 내리깔리기도 전 이흔현 사장(우측)과 그의 아들 이동호씨가 입김을 내뿜으며 떡에 콩고물을 묻히고 있다.임경호

새벽 5시에 문을 연다는 주인의 말에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본다. 굳게 닫힌 가게들의 문 앞으로 소복 눈이 쌓여 있다. 컴컴한 골목길 사이로 하나씩 불을 밝힌 가로등이 옛 시장의 정취를 북돋아 준다.

모래내 시장은 서울 도심의 이름난 시장들과 달리 아직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현대화의 혜택을 입지 못한 것이 모래내의 단점이라면, 간판이나 차광막 등 사소한 부분까지 옛 것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모래내의 장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옛 시장의 추억을 언급할 때 모래내를 떠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며 시장을 걷다 보니 어느새 5시가 다 됐다. 한 귀퉁이를 돌아서면 서울떡집인데 어느새 '드르륵' 셔터문 올리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 맞춰 도착한 이 사장이 입김 가득 내뿜으며 가게를 연다.

셔터 속 가게에는 문이 없다. 투명한 비닐 막을 문 대신 사용한다. 한 쪽 모서리의 비닐을 돌돌 말아 올려 문처럼 공간을 내거나 추운 겨울에는 아래로 내려서 찬 공기를 막는다. 한창 추운 새벽에 출근한 이 사장은 오자마자 비닐을 걷어 올린다. 떡을 만들기 위해서다. 떡을 찌는 과정에서 김이 많이 나는 탓에 영하의 날씨에도 안팎의 구분이 없다.


떡 찌는 남자

이른 새벽의 떡집은 이 사장의 전쟁터다. 춥든 덥든, 사람이 있든 없든 묵묵히 떡 만들기에 몰입한다. 끊임없이 물을 뿌려야 하는 탓에 장화로 갈아 신고 앞치마를 동여맨다. 그에겐 떡과의 전쟁, 서막인 셈이다.

전날 불려놓은 찹쌀과 멥쌀을 확인하는 것이 시작이다. 대야에 가득 담긴 물을 따라 버리고 이내 쌀을 분쇄기에 붓는다. 기계가 돌아감과 동시에 고운 입자의 쌀가루가 아래로 흘러내린다. '웅웅-'거리는 기계 소리에 잠시 이 사장이 허리를 펴는 가 싶더니 다시 분주히 몸을 놀린다. 아무도 없는 아침의 그는 홀로 바쁘다.

쌀가루가 소복이 담긴 대야에 적당량의 물을 섞어 휘저어 준다. 그리고 다시 분쇄기를 돌린다. 다시 한 번 곱게 빻은 쌀가루를 분쇄기 옆 사각 틀에 옮겨 담는다. 적당히 가루를 담고 나자 사각 틀을 이중 삼중으로 올려 쌓는다. 다시 쌀가루를 담는다.

그렇게 쌓인 사각 틀 사이로 뭉게뭉게 김이 피어오른다. 찜통 세 대가 동시에 김을 내자 본격적으로 떡이 만들어진다는 느낌이 든다. 가래떡이나 찹쌀떡, 인절미 등으로 재탄생할 쌀가루들이 천으로 덮어놓은 틀 아래서 조용히 몸집을 부풀린다.

 이흔현 사장이 갓 나온 시루떡을 옮기고 있다.
이흔현 사장이 갓 나온 시루떡을 옮기고 있다.임경호

이 틈에 이 사장은 통을 씻고 바닥을 한 차례 물로 쓸어내린다. 틈틈이 찜통을 확인하며 다음 떡을 준비한다. 다음은 시루떡이다. 팥과 찹쌀을 차례로 틀에 깔자 시루떡 태초(?)의 모습을 갖춘다. 다시 천으로 덮어 찜기에 올린다. 김과 함께 다양한 떡들이 찜통을 데운다. 군침이 식도를 데우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찜통 사이를 오가던 이 사장이 마침내 완성된 떡을 꺼낸다. 천에 쌓인 떡을 살짝 찬 물에 데친 후 가래떡 뽑는 기계로 그대로 직행한다. 이 사장은 절구 방망이처럼 생긴 나무 방망이로 네모난 떡을 기계 구멍에 밀어 넣느라 바쁘다. 나는 입맛을 다신다.

그림의 떡? 눈앞의 떡!

동그란 틀을 통해 새하얀 가래떡 줄기가 뽑아져 나온다. 부드럽고, 매끈하다. 나오는 족족 찬 물에 담근다. 이 사장이 갓 나온 떡을 건넨다. 표면에 윤기가 흐르면서 뜨겁지 않은데 모락모락 김이 난다. 냄새는 구수하고 맛은 담백하다. 입 안 가득 찰진 떡의 감촉이 식감을 자극한다. 이 사장도 한 덩이 떼어 먹는다. 과묵한 이 사장은 말없이 떡을 씹는다. 나는 떡을 씹느라 말을 할 수 없다. 둘은 그렇게 묵묵히 떡을 씹는다. 새벽의 떡집에서 맛볼 수 있는 작은 행복이다.

"우리는 아침 겸 점심을 먹어요. 오전 11시쯤. 떡집 하는 사람들이 그래요. 그래도 배고프면 우유나 뭐 간단히 요기가 될 만한 것을 아침이나 새벽에 먹기도 하고요. 정 배고프면 떡 집어먹는 거죠, 뭐."

요즘 떡집들은 주문제작을 많이 한다. 가게 앞에 내다놓고 파는 것보다 주문 받아 판매하는 방식으로 거둬들이는 수익이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오전 내내 전날 받은 주문 물량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물론 가게마다 다르고 날마다 주문량이 다르지만 '서울떡집'처럼 입소문을 탄 곳은 대체로 주문량을 채우려면 아침나절 분주함이 필수다. 밥시간이 늦춰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오늘도 지난밤 들어온 주문을 확인하는 이 사장. 계속된 떡 만들기에 잠시도 추울 틈이 없다.

명절이나 구정 등의 대목에는 온가족이 떡집에서 얼굴을 마주한다. 돌릴 수 있는 기계는 한정돼 있고 주문량이 많다 보니 한두 명이 떡을 만들며 다음 재료를 준비하고 다른 사람은 배달을 다니는 식이다. 23년간 떡집을 운영하다보니 단골도 여럿 생겼다고. 무속업계의 '보살'이나 절, 교회, 장례식장 등이 서울떡집의 주된 손님들이다. 평소에는 단골 위주, 대목에는 가정집의 주문까지 더해져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하지만 장사란 것에 대목이 있으면 안 될 때도 있는 법.

"6, 7, 8월은 '썩은 달'이라고 해요. 장사가 안 된다고 봐야죠. 더운데 누가 떡을 먹겠어요. (그래서) 여름은 주로 주문 받아서 (판매) 하는 게 거의 전부라고 봐야죠. 장례식장이나 절에서 좀 해가지, 가게는 잘 안 나가요."

대를 잇는 전통 떡집

따끈한 떡을 뽑아 식히는 일이 한창이다. 떡을 진열하는 가게 앞 진열대와 비닐 문 사이에 한두 사람이 들어서 떡을 썰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이 사장이 그곳에 떡을 올려둔 채 어느 정도 열기가 빠진 떡을 떡 칼로 썰고 있다. 23년의 전통인답게 능숙한 손놀림으로 떡을 썰어 콩고물을 묻힌다. 인절미다.

떡을 썰다 말고 불쑥 한 덩이 내민다. 날름 받아먹고 또 한 번 감탄한다. 다음 떡으로 바뀐다. 시루떡이다. 또 한 덩이 내민다. 이번엔 꽤 크다. 과묵한 성격과 달리 인심이 후하다. 배가 차는 줄도 모르고 연신 감탄하는 찰나에 큰아들 이동호(34)씨가 도착한다.

 찜기에서 나온 시루떡을 식힌 후 잘라내고 있다.
찜기에서 나온 시루떡을 식힌 후 잘라내고 있다.임경호

일곱 시나 됐을까. 동호씨는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떡을 포장해 차에 싣더니 이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다. 그사이 다음 배달물건을 포장해 놓은 이 사장. 동호씨는 다시 물건을 들고 차로 향한다. 몇 박스를 나눠들고 뒤를 따른 나는 눈길이 미끄러운데다 밤눈까지 어두워 몇 차례 넘어질 위기에 처한다. 아는지 모르는지 동호씨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고, 우여곡절 끝에 차까지 무사히 당도한다. 트렁크에 한가득 떡을 실은 그는 다음 배달지인 김포의 한 예식장으로 향한다.

"원래는 생선 일(판매)을 하려고 했어요. 이 일을 도와드린 지는 5년 정도 됐네요. 그 전엔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이 다른 일을 한다고 그만둔 뒤 제가 하고 있어요."

가업으로 떡집을 물려받기로 한 동호씨는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단골이 많으면 가게를 유지하기 수월하다는 이야기나 휴일 없이 가족이 돌아가며 쉰다는 이야기 등 어느새 가게 운영에 대한 전반을 꿰고 있다. 특히 행인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줄 알았던 전통시장의 작은 떡집에 대한 이미지가 아니라,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나 단골을 늘려가는 방법 등에 대한 사업으로써의 떡집 이야기가 어딘가 그를 달라보이게 했다. '떡집 일을 시작한 이후 얼굴이 많이 삭았다'는 그였지만 여전히 동안인 데다 대화에선 원숙함이 풍겨왔다.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떡집에서 보낸다. 아침에 배달을 시작으로 아버지와 함께 떡을 만들고 낮에는 어머니(정성숙, 56)와 가게를 지킨다. 짬짬이 쉬기도 하지만 오후 다섯 시가 되면 모두가 퇴근한 가게를 찾아 다음날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떡을 만든다. 이 사장이 아침에 쓴 불린 쌀도 전날 동호씨가 준비한 것 중 하나이다. 동호씨도 가끔은 출근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러나 언제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는 떡집의 특성상 정해진 휴일이 없는 탓에 매일 아침 가게로 향한다.

"아침에 만들면 (떡이) 채 굳지 않기도 해서요. 일찍 나갈 물건은 밤에 만들어 놓기도 하고, 주로 오후 다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다음날 나갈 떡을 만들죠. 주문량에 따라 (만드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그렇죠. 거의 가게에 있는 편인데, 오후에 손님 없을 때 잠깐 쉬고 오기도 해요."

후계자 수업이라도 하는 걸까. 오늘날 그의 하루는 '서울떡집'을 대변한다.

배턴 터치

아침이 밝아오면 동호씨의 어머니 정성숙(56) 씨가 출근한다. 아홉 시 또는 그보다 늦게 출근하기도 하는 그는 아침나절 떡을 만드는 남편을 도와 마무리를 한 후 낮 동안 가게에서 판매를 담당한다. 열한 시쯤 되면 이 사장은 작업을 마치고 퇴근한다. 일종의 '배턴 터치'인 셈이다.

성숙씨는 만들어진 떡을 진열하고 가게를 지키며 전화로 주문을 받는다. 그래서 사실상 시장을 찾는 행인들에게는 성숙씨의 출근이 그날의 본격적인 서울떡집 시발점과 같다. 즉,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가 시장떡집의 진열대가 가장 풍성한 시간이라 볼 수 있다.

"시루떡이나 무시루떡이 가장 잘 팔려요. 우리 집 떡들 인기가 많거든요."

 정성숙씨가 떡을 비닐에 담고 있다.
정성숙씨가 떡을 비닐에 담고 있다.임경호

얼굴에 웃음을 띠며 농담조로 말하는 성숙씨다. 가래떡, 시루떡, 삼색 송편, 영양찰떡, 약밥, 찹쌀떡 등 갖은 종류의 떡들이 즐비한 가운데 성숙씨의 말대로 시루떡은 금방 동이 난다. 오후 두 시가 지나자 없어서 못 파는 경우가 생긴다. 떡집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다.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단가가 조금 더 쎄요. 재료를 좋은 거 쓰니까. 왜냐면 우리도 이거 만들다가 배고프면 먹고, 집에도 가져가고 하거든요. 우리도 먹는 건데 아무거나 먹을 수 없잖아요. 사람들이 또 그걸 알아요. 그래서 인기가 좋은가…"

한 번 서울떡집을 찾은 손님들은 대부분 다시 찾아온다고 한다. 주문 판매는 물론 시장 판매까지 한 번 생긴 단골은 끊기는 경우가 드물다.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단골이 유지된다. 서울떡집의 입지가 탄탄한 이유다. 요즘 들어 경기가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큰 불황 없이 서울떡집은 견뎌왔다. 만드는 상품의 품질과 고객과의 신뢰관계는 상도의 기본이다. 성숙씨는 그것을 알고 있다.

"예전엔 지금 위치가 아니라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어요. 재개발이다 뭐다 해서 자리를 한 두 번 옮겼는데 단골들이 다 따라왔어요."

이런 관계를 바탕으로 서울떡집은 살아간다. 그래서 평소엔 쉴 새 없이 일하다가 잠깐의 여유는 확실히 즐긴다. 성숙씨가 좋아하는 국내외 여행이나 스키, 수상스키 등은 이런 일상을 쉬어올 수 있는 작은 탈출구다. 내일도 태국의 치앙마이행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다고.

누구에게나 고비는 있다

지금은 안정기에 올라선 서울떡집도 궤도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떡집을 시작하기 위해 이 사장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성숙씨는 시장에서 액세서리를 팔다가 업종을 바꿨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일을 배우기 위해 다른 떡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고된 업무 강도 탓에 이 사장은 3개월 만에 포기하려 했고 그런 그를 달랬던 게 아내 성숙씨다. "1년만 참아보자"는 그의 말대로 두 사람은 버텼고 그 결과 마침내 떡집을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구두계약으로 물려준 떡집 주인은 2년 후 다시 찾아와 그들을 쫓아냈고 그때가 그들의 최대 고비였다고 한다.

"떡집 일이 고되니까 그때 일을 배우면서 견딘 사람이 없었던 거죠. 우리도 힘들었는데 배운 게 아까우니까 1년은 버티자고 했던 거고. 그랬더니 '너희 다 하라'는 식으로 가게를 물려줘놓고 2년이나 지나서 돈이 떨어졌다고 가게를 돌려 달라고 한 거죠."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는 걸까. '전화위복'이라고, 그런 위기를 겪은 후 그동안 모은 돈으로 다른 터를 빌려서 지금의 '서울떡집'을 차렸다. 포기하지 않았다. 그간 배운 기술로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고, 부부가 모래내 시장에 터를 닦았다. 하나둘 늘어난 단골은 오늘날 그들 떡집의 주된 동력인 한편 그들 부부가 동호씨에게 물려줄 소중한 인연이다.

동호씨는 그래서 열심인지도 모른다. 이런 디딤돌 위에 올라서 그들의 뒤를 받치려면 부지런히 떡을 매만져야 할 게다. 아니 어쩌면 성숙씨가 낮에 한 이 말을 들은 걸까.

"(동호 나이) 마흔이면 동호한테 물려주고 우리는 월급 받아야죠. 잠깐, 여행은 따로 보내달라고 해야겠네."(웃음)

아는지 모르는지 동호씨의 저녁은 떡 만들기로 한창이다. 하나둘 시장 불이 꺼져가는 그 순간에도 서울떡집 그의 모습이 찜기에서 올라오는 김 사이로 선명하게 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연재는 김진석 사진작가가 기획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 중인 안형준(30), 임경호(30), 박기석(28) 3명이 취재를 진행합니다.
#모래내시장 #전통시장 #서울떡집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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