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지금처럼만 살았으면..."

9년째 '무인 양심가게' 운영하고 있는 전남 장성 신촌마을

등록 2014.02.18 13:20수정 2014.02.1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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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 신촌마을 주민들의 윷놀이. 9년째 주인없는 무인 양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마을주민들이 지난 14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장성 신촌마을 주민들의 윷놀이. 9년째 주인없는 무인 양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마을주민들이 지난 14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이돈삼

가게 앞 공터가 떠들썩하다. 마을사람들이 한데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다. 던져진 윷의 모양새에 따라 환호와 탄식이 엇갈린다. 그럼에도 윷을 던지는 사람이나 윷판을 지켜보는 구경꾼들 모두 즐겁기만 하다. 윷판 한켠에서는 돼지고기가 숯불에서 노르스름하게 익고 있다. 소주도 한 잔씩 오고간다.


윷놀이의 최종 우승은 신우상(70)·임숙자(66)씨 팀이 차지했다. 사실 이들의 우승은 진즉 예견이 됐었다. 예선 때부터 윷이나 모가 나오는 비율이 높았다. 승리도 비교적 수월하게 챙겼다. 파죽의 기세로 결승에서도 상대팀을 손쉽게 이겼다.

이들에겐 큼지막한 주방용품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2〜4위에게도 생활용품이 상품으로 전달됐다. 참석자와 구경꾼들에게는 치약이 기념품으로 나눠졌다. 마을주민 모두 선물을 하나씩 챙겼다.

 신촌마을 윷놀이 시상. 박충렬 이장과 김동남 재무가 윷놀이 입상자에게 부상을 주고 있다.
신촌마을 윷놀이 시상. 박충렬 이장과 김동남 재무가 윷놀이 입상자에게 부상을 주고 있다.이돈삼

 윷놀이 우승 시상. 마을의 재무를 맡고 있는 김동남 어르신이 윷놀이 우승을 차지한 신우상 어르신에게 주방용품을 선물하고 있다. 왼편에 서 있는 이는 신우상 어르신과 한 조를 이뤄 우승을 한 임숙자 어르신이다.
윷놀이 우승 시상. 마을의 재무를 맡고 있는 김동남 어르신이 윷놀이 우승을 차지한 신우상 어르신에게 주방용품을 선물하고 있다. 왼편에 서 있는 이는 신우상 어르신과 한 조를 이뤄 우승을 한 임숙자 어르신이다.이돈삼

그사이 마을경로당에는 푸짐한 점심상이 차려졌다. 명절 차례상에 버금갔다. 윷놀이에 참가했던 마을주민들이 다 함께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김태원(77) 어르신의 큰아들이 부인의 박사 학위 취득 기념으로 돈을 내서 돼지도 잡고 떡과 과일도 장만했다"는 게 이장의 설명이었다.

덩달아 구경꾼이었던 길손도 점심식사를 배부르게 했다. 모든 시골 마을이 이렇게 알콩달콩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인 양심가게가 운영되고 있는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신촌마을 풍경이다. 정월대보름인 지난 14일이었다.

 공동 식사. 윷놀이를 끝낸 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 경로당에 한데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공동 식사. 윷놀이를 끝낸 신촌마을 주민들이 마을 경로당에 한데 모여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이돈삼

 신촌마을의 무인 양심가게. 마을 주민들이 모여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신촌마을의 무인 양심가게. 마을 주민들이 모여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이돈삼

"여그가 우리덜 놀이터요. 여그 와서 이런저런 야그도 허고, 술도 한 잔썩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주인이 없응께 더 좋아. 눈치 안 봐도 되고."


마을의 재무를 맡고 있는 김동남(79) 어르신이 무인 양심가게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을 주민들의 자부심이라고도 했다.

실제 이 가게는 마을주민들의 소통공간이다. 먼저 온 사람이 커피도 빼주고, 술도 한 잔씩 권한다. 집안의 크고 작은 일도 여기서 논의된다. 농사 정보도 교환한다.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주인 없는 무인 양심가게. 김유순 어르신이 양심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
주인 없는 무인 양심가게. 김유순 어르신이 양심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다.이돈삼

이 가게가 주인 없이 운영되고 있는 무인 양심가게다. 지난 2005년 4월 5일 문을 열었으니 벌써 9년째다.

"마을에 하나 밖에 없던 구멍가게가 사정상 문을 닫았죠. 주인도 떠나고. 가게가 없어지자 마을사람들의 불편이 컸죠. 가까운 곳에 슈퍼도 없고. 해서, 어르신들의 부탁으로 도시에서 물건을 사다드렸는데. 한두 번도 아니고 솔직히 번거롭잖아요. 그래서 무인 가게를 생각했죠."

무인 가게를 처음 제안했던 박충렬(55) 이장의 회고다. 무인 양심가게는 이장을 맡은 지 5개월 만에 내놓은 그의 첫 작품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무인 양심가게가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자녀들의 손을 잡고 찾아온 부모도 많았다. 와서 보고선 '아직도 이런 곳이 있냐'며 감동을 받고 돌아갔다. 마을주민들도 뿌듯했다.

 박충렬 신촌마을 이장. 주인 없는 양심가게를 제안하고 운영해 온 주인공이다. 10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박충렬 신촌마을 이장. 주인 없는 양심가게를 제안하고 운영해 온 주인공이다. 10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이돈삼

 신촌마을 경로당과 양심가게 전경. 천년고찰 백양사에서 가까운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에 자리하고 있다.
신촌마을 경로당과 양심가게 전경. 천년고찰 백양사에서 가까운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에 자리하고 있다.이돈삼

양심가게는 지난 9년 동안 조금 바뀌었다. 장성군의 지원과 지역주민․출향인들의 도움을 받아 건물을 새로 지었다. 안에는 대형 텔레비전과 지폐 교환기, 싱크대, 담배 자동판매기를 갖췄다. 장성농협과 면사무소, KT&G 등에서 설치해 주었다.

하지만 운영은 예전 그대로다. 물건마다 가격이 따로 적혀 있다. 박 이장이 다 써서 붙여 놓았다. 다 팔린 물건을 채워놓는 것도 그이의 몫이다. 물건을 사고 돈을 넣을 나무금고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양심껏 물건을 가져가고 계산도 그렇게 하며 살고 있다.

"첨엔 어째야 헐지 몰랐제. 지대로 계산 허고 돈을 넣는디, 행여 넘이 오해할까봐 걱정되기도 허고. 근디 지금은 더 좋아. 다 믿고 산께. 양심가게가 생긴 뒤로 동네사람들 인심이 더 좋아졌어. 동네 돌아다님서 봐바. 대문 잠그고 산 데가 있능가? 없어."

'옥천댁'으로 불리는 김유순(82) 어르신의 얘기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마을 주민이 물건을 사고 양심껏 돈을 나무금고에 넣고 있다.
누가 보지 않더라도... 마을 주민이 물건을 사고 양심껏 돈을 나무금고에 넣고 있다.이돈삼

 신촌마을 주민들의 정월대보름 윷놀이. 무인 양심가게 앞에서 펼쳐졌다. 양심가게 앞마당이 마을주민들의 놀이터이면서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
신촌마을 주민들의 정월대보름 윷놀이. 무인 양심가게 앞에서 펼쳐졌다. 양심가게 앞마당이 마을주민들의 놀이터이면서 쉼터로 활용되고 있다.이돈삼

"모다 형제간 같이 우애하고 살어. 다 형님 동생이고. 마을에서 결정하믄 다 따르고. 단합도 잘돼. 무인가게도 잘 되는 거 봐. 우리마을 최고여."

김용중(77) 어르신의 얘기다. 무인 양심가게 덕분에 주민 모두 '행동하는 양심'이 되고, 주민들 사이도 더 돈독해졌다는 게 마을주민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주민들의 참여의식도 높아지면서 마을 분위기가 예전보다 더 활기를 뗘 함께 사는 공동체의 본보기라는 주변의 평가도 받고 있다.

"2004년 말 이장을 맡았고, 2~3년만 할라고 했는데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귀찮고 힘든 게 사실인데 그래도 뿌듯하고요. 지금처럼 마을주민들이 서로 믿고 의지하며 오손도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4월 마을의 단체여행도 다 같이 가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같이 어울리면서."

박충렬 이장의 말이다. 그이의 말처럼 마을주민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장성 신촌마을의 무인 양심가게 전경. 마을공동체의 본보기로 자리잡고 있다.
장성 신촌마을의 무인 양심가게 전경. 마을공동체의 본보기로 자리잡고 있다.이돈삼

#양심가게 #신촌마을 #박충렬 #정월대보름 #윷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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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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