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가 법 제정운동을 벌인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선행교육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이걸 법률로 규제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현실의 모순이 어떤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에 법률로까지 제정된 것이라고 봅니다."
이희훈
다음은 송 대표와 나눈 1문 1답을 정리한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 촉진 선행교육 규제 특별법'이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앞으로 일선 학교 현장에 어떤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학교 안에서의 선행학습 규제, 학원의 선행교육 확산 방지 등이 법안의 주요 내용입니다. 현장에서도 이로 인한 의미 있는 변화들이 많으리라 봅니다. 일례로 최근 아이들이 학원에서 70% 이상의 교과 내용을 배워와 학교 수업을 무력화 시키는 일들이 빈번한데, 법률로 규제함으로써 그런 것들이 줄어들고 정상적으로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일부 교사들이 진도 외 교과 내용을 가르치는 등 사교육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것도 적어질 것이고요.
한편 사립초등학교 1, 2학년 같은 경우는 '영어교육 금지'라는 교육부 지침은 있었지만 이걸 규제할 법이 없어서 현장에서 공공연히 시행되고 있었는데, 이제 할 수 있게 됐죠. 또 이번 법에 보면 특목고·자사고 등에서 각종 인증시험이나 경시대회 성적을 반영하지 못하게 돼있습니다. 요즘 그런 스펙을 만들기 위한 경쟁도 치열한데 그게 해소되겠죠.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 '선행학습은 대세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잡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는 겁니다. 이런 편견은 굉장히 비교육적이고 문제가 있는 것인데도 학교와 학원이 선행학습을 마치 당연한 듯 시행해오며 굳어진 겁니다. 이번 선행학습 금지법은 실효성을 떠나서 일단 상징적인 의미가 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낸 변화...현실 모순 임계치 넘었다"- 실제로 선행학습 금지법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12년 4월부터 역량을 집중해왔던 분야로 알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도 소감을 남겼던데, 논의를 주도한 단체 대표로서 한 마디 하신다면? "저희가 그 당시 법 제정운동을 벌인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황당하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선행교육은 문제가 있다면서도, 이걸 법률로 규제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013년 하반기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선행학습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고, 학원의 선행상품을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에는 찬성도가 더 높았습니다. 한 마디로 시간이 흐르고 현실의 모순이 어떤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에 법률로까지 제정된 것이라고 봅니다.
법 제정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굉장히 많은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저희 후원하시는 분들이 3200명 정도인데 모두 평범한 부모들이고 시민들입니다. 이 분들이 주도해 2만 여명 정도 지지서명을 받고, 하루 한 명씩 돌아가며 100일 동안 광화문에서 1인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고... 사실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일이 많지 않은데 이번에 해낸 것 아닙니까? 18일에 이 법이 상임위를 통과했다는 뉴스를 듣고, 기뻐서 회원 분들이 같이 울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저는 사교육걱정 대표로 일하면서, 청년시절 누구나 마음속에 있었던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정', 그러나 지금은 지워져버린 이 열정이 회원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을 봤습니다. 거리로 뛰쳐나가 시위를 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로서 생활에서 실천 할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그 과정에서 제도의 변화와 의식의 변화가 함께 일어나는 것을 굉장히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경쟁이 아닌 '협력'이라는 가치를 내 삶을 통해 먼저 살고, 나아가 제도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것. 그런 게 저희 단체의 목표이고, 이번 선행교육 금지법 제정도 그런 성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번 법률이 학원의 선행교육까지 규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쟁적인 입시 풍토 등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아 오히려 풍선효과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저도 그런 지적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말처럼 '선 구조개혁, 후 법제정'으로 일정을 잡는다면 선행교육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게 그렇게 쉬웠다면, 지금껏 수없이 많은 제도 개혁이 있었는데 왜 학생들에게 고통을 주는 현 체재는 그대로인걸까요? 교육 문제는 국민 모두가 이해당사자고, 나아가면 대학 학벌 문제 등 거대담론과도 맥락이 닿아있기 때문에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선행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당장 고통 받고 있는데 구조개혁 운운하는 것은 '사교육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님이 그런 비유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근본적 구조부터 해결하자고 하는 말은, 지금 아이가 상처를 입어서 피를 흘리고 있는데 '체질 개선'부터 하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말이지요. 선행학습 금지법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당장 선행교육 때문에 고통 받는 아이들을 '지혈'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이번엔 응급처지지만 이게 해결되고 나면 더 정교한 전략과 방법론으로 근본적 입시제도 개혁 등을 풀어갈 겁니다."
-선행학습 금지법에는 '영재교육진흥법'에 따른 영재교육,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조기진급 및 조기졸업 대상자는 적용을 배제한다는 특칙 등 특별법을 적용받지 않는 부분도 남아있습니다."그렇긴 하지만 거기 포함되는 대상자가 굉장히 소수고 제한적이라서, 또 과학고 같은 경우 조기졸업이 법률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한 가지, 제가 보는 법적 한계 중 하나는 자사고나 특목고처럼 교육 과정의 자율성이 인정되는 고등학교의 경우 이 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굉장히 약하다는 겁니다.
그런 학교에서는 50% 정도를 자율적으로 과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형평성의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걸 법제정 후에 더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육과정에 대한 지침이 교육부 장관령 정도로 나와있을 텐데, 일단 해당 고등학교들은 교과과정 운영에서 자율권을 허용하더라도 국영수 과목 편성에 있어서는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던지 해서 제재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정부, 교육 공약 좋았지만 불필요한 이념논쟁에 시간낭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