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가 리허설 하는 나와 곰씨.
홍현진
드디어 오후 1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아빠와 곰씨 아버지, 엄마와 곰씨 어머니. 그리고 나와 곰씨 차례로 입장했다. 스티비 원더의 'My Cherie Amour'가 울려 퍼지고, 오른발이 먼저 나가야 할지, 왼발이 먼저 나가야 할지, 드레스가 끌리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었다.
아버님이 하객 여러분께 드리는 인사말을 했고, 이어 나와 곰씨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정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곰씨 편지를 들으면서 나는 눈물을 쏟고 말았다.
"처음에는 결혼도 하지 않는다고 했던 네가. '너니까 그래도 결혼하는 거야' 했던 거, 나는 정말 눈물 나게 고맙고 감동이었어. 결혼으로 인해서 네가 원하지 않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경우도 많을 거야. 네가 힘들어하는 거 다 알아줄게. 또 보상도 해줄게.,,(중략)..."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택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그로 인해 온전한 '나'로 살 수 없게 될까봐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곰씨는 누구보다 잘 안다. 곰씨의 편지 속에서 그 진심이 전해졌다.
눈물이 계속 흐르자, 하객석 맨 앞줄에 앉아있던 큰 엄마가 친구에게 노란 손수건을 건네주는 게 보였다. 나는 손짓을 해서 친구를 불렀다. 결국 친구는 결혼식 도중 몇 번이나 연단 위로 올라와 내 눈물을 닦아줘야 했다(다른 결혼식 가보니, 신부가 울 때는 헬퍼 이모가 화장을 바로 잡아 주더라).
내가 곰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두 사람이 함께 우리가 직접 쓴 성혼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어 아빠가 축사를 했다.
"어느새 높아진 가을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고, 만산은 홍엽으로 붉게 물들어 계절의 정취를 더해주는데, 소중한 너의 결혼식을 하게 되어 더없이 기쁘구나. 많은 시간과 정성으로 만들어진 너희 두 사람의 결혼식을, 밤하늘의 별을 따서 너의 앞길을 비춰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너의 결혼식을 축하해…(중략)… 또 이 자리를 빌려서 몇 가지 하고 싶었던 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에게 칭찬도 격려도 너무 인색했던 것 새삼 미안하게 생각해. 너는 항상 엄마 아빠에게 과분한 딸이었고 항상 고맙게 생각해…(중략)…아빠와 나는 어릴 때부터 많이 싸웠다. 엄마 말로는 우리 둘 다 '불'과 '불'이라서 그렇단다. 고집 세고 성격도 다혈질이고 애정 표현도 잘 못한다. 대학 입학 이후 떨어져 살면서 일 년에 통화도 몇 번 할까 말까. 얼마 전 축사 때문에 통화할 때는 아빠에게 "3분 이내로 해라. 길면 사람들 싫어한다"고 통보하듯 말했었다. 아빠는 "어떻게 3분 안에 다 읽노. 2장이나 썼는데"라며 서운해 했고, '그럼 중간 중간 빼고 읽고, 나중에 편지를 주는 걸로 하자'고 합의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 아빠는 어느덧 편지 2장을 다 읽고 읽었다. 엄마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나는 계속 눈물이 났다. '즐거운 결혼식'이 목표였는데, 하객석을 보니 친구들도 울고 있었다. '반전'은 마지막에 나왔다.
"이건 또 다른 욕심일지 모르지만 너희 아기도 빨리 태어났으면 좋겠어. 손주도 안아보고, 너의 옛날 모습처럼 예쁜 귀여운 손녀와 놀아도 주고, 너를 키울 때처럼 잘 해줄 수 있어. 느낌 아니까~"하객석에서 환호와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난여름, 곰씨와 부산을 찾았을 때 아빠는 "손주도 부모가 능력이 돼야 바랄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키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얘도 직장생활 해야 하는데 어떻게 손주를 무작정 바랄 수 있겠냐"고 말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든 적이 있다. 그런데 아빠 속마음은 이랬구나.
이어서 축가. 남동생이 정인의 <오르막길>을 불렀고, 곰씨와 내가 데이 브레이크의 <좋다>를 열창했다. 하객들이 동영상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날 준비한 안무는 생략했다. 동기가 만들어준 영상에는 나와 곰씨가 함께 보낸 8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내내 하객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언제 울었느냐는 듯, 나는 몸을 좌우로 흔들며 신나게 노래했다(한 선배는 "울다가 웃다가 30분 안에 모든 것을 하는 신부가 인상적"이었다고).
결혼식 마지막 배경 음악은 페퍼톤스의 'Ready and get set go'. 곰씨가 나를 보며 "달릴까?"라고 말했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한 발 한 발 다시 걸어 나갔다.
하나하나 우리 손으로 직접... 조금 달라도 괜찮아 결혼식에 대한 반응은 좋았다(물론 '결혼식 별로였다'고 직접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특히 어른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우리는 폐백을 하지 않고, 바로 하객들에게 인사를 드렸는데 "결혼식 많이 가봤지만, 끝까지 본 건 처음"이라는 분도 계셨다. 역시 어른들도 '보통의 결혼식'이 지겨웠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