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직장' 그만둔 여성, 이유가 슬프다

[경력단절 원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①] 경력단절의 숨겨진 원인들

등록 2014.03.04 14:54수정 2014.03.0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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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부에서는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을 발표했다. 현재 전체고용률(약 60%)에서 10%를 더 올리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 하에 주요하게 고려된 대상이 경력단절 여성이었으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으로 시간제일자리가 크게 부각되었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과 노동주체성을 위해서 여성고용률을 높이는 취지 자체는 유의미하지만 경력단절의 원인 분석과 관련 정책으로 시간제일자리를 연결 짓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그간의 분석대로 여성은 임신·출산·양육 때문에 경력단절이 되는 걸까? 혹시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을까? 시간제일자리로 여성이 단절된 경력을 잇거나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경력단절 경험을 가진 여성 20여명을 만나 경력단절이 되었던 이유와 이후 재취업 경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가 경력단절 여성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진정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기자 말

'공백의 발견'으로 드러난 경력단절의 숨겨진 원인들

 '직장맘의 아침' 2월의 어느 아침,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위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직장맘의 아침' 2월의 어느 아침, 직장에 다니는 엄마들이 자녀를 어린이집에 맡기기 위해 바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이기태

먼저, 경력단절은 정말 임신·출산·양육 때문에 일어나는 것일까. 결혼한 여성노동자라면 불가피한 문제일까. 

"문제는 사회인식이지. 여자가 공무원이거나 학교 선생님이면 그만 두면 아깝다는 식으로 친정엄마든 누구든 애를 맡아 볼 수 있는 방법들을 만들어냈겠죠. 안 그만두지."(40대 중반, B씨)

B씨는 여성의 경력단절에 대해 직업이 모두 '공무원'이라면 달랐을 거라고 말한다. '아이를 낳아서'라는 단순한 원인으로 경력단절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의 특성·노동조건 그리고 주변의 가치판단 등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단절을 막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출산∙육아휴직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거나 업무강도가 적정한 '괜찮은' 조건의 일이라면 노동시장 안쪽에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변의 인식은 단순히 생각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경력 단절 이전에 대학강사로 일했던 G씨는 성차별적 인식 때문에 일의 지속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교수님이 대놓고 여자 제자는 필요 없다, 본인 전시회에 그림을 걸어줄 수 있는 제자들만 키운다고 해요. 예술 쪽이 여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긴 하지만 기득권을 가진 남자 교수님들이 육아나 결혼 때문에 단절되는 여자들을 교수로 가게 하기는 너무 힘들어요."(30대 후반, G)

G씨의 경험은 유리천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강사 일을 얻기 위해 대학원 진학 등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 연결의 주요 매개자인 교수는 여성을 키우지 않는다고. '육아나 결혼으로 단절된 여자들'에게는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으며 진입조차 쉽지 않은 현실적 문제에 부딪힌다는 것이다.


결혼은 남자에겐 디딤돌, 여자에겐 걸림돌

최근 한 취업 포털사이트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남성에게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원동력이고, 여성에게는 걸림돌'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설문결과로 비추어보았을 때 성차별 경험은 G씨만의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한 여성들이 '결혼은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로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가 컸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출산·육아 휴가 사용의 어려움, 임신·출산으로 인한 퇴사 압박, 승진 및 임금 차별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에 의한 것이다.

 '신의 직장'을 그만둔 한 여성은 사직 이유에 대해 '출산'때문이라고 했지만 '폭주'하는 업무과중과 야근 그리고 출산·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성차별적 조직문화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진은 자료 이미지.
'신의 직장'을 그만둔 한 여성은 사직 이유에 대해 '출산'때문이라고 했지만 '폭주'하는 업무과중과 야근 그리고 출산·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성차별적 조직문화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진은 자료 이미지. sxc
"여직원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여, 몇, 급 이런 거 있잖아요. 직급이 아예 달랐죠. 남녀가 구분이 되어 진급의 차별이 있었어요. 여직원은 여 5급, 여 6급 딱 두 등급밖에 없었어요. 중간에 차별이라고 해서 합쳐졌어요. 합쳐지면서 저희는 맨 바닥으로 깔린 거죠. 둘째를 낳고 휴가 쓸 생각을 했었는데 너무 힘들겠더라고요. 업무적으로도 굉장히 폭주했어요. 업무가 많은 상태에서 애를 낳으면 다시 적응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처음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다들 주위에서 난리였어요. 그 좋은 회사를 왜 그만 두냐. 완전 신의 직장이에요. 저희 친정엄마도 아깝다고. 주위 친구들도 그렇고 남편 친구들까지 말렸어요. 그런데 일이 힘든 게 더 먼저였던 거 같아요. 지금은 더 좋은 직장이 됐어요. 그만큼 일이 많죠. 제 업무가 야근이 많았어요."(40대 중반, A씨)

A씨는 스스로 '신의 직장'으로 표현할 정도로 안정적인 공공기관에서 일했다. 근무기간 18년 동안 과장으로만 머무르고 승진이 안 된 이유는 성차별적 직급제에 따른 결과였다. 직급제가 차별로 판정되면서 승진 장벽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A씨는 일을 그만뒀다.

그 이유를 '출산'때문이라고 했지만 '폭주'하는 업무과중과 야근 그리고 출산·육아휴직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성차별적 조직문화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가속화되고 여성 비정규직 비율이 80%에 달하는 사회구조적인 현실 또한 여성의 경력단절을 이끌기도 했다. 

"학교에서 2년을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한 학기가 남았는데 자르더라구요. 1년 6개월 일한 시점에 6개월 남은 기간마저 하면 정규직시켜야 하니까."(30대 후반, G씨)

2007년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기간제법'이 제정되었다. 2년 이상 채용할 경우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법조항 때문에 오히려 가장 열악한 노동 지위에 있는 시간강사들이 무더기 해고되는 사태가 속출했고 두 아이를 키우며 강사 일을 하던 G씨도 이 상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2년의 계약기간 중 1년 6개월을 일한 뒤 해고되었다. 6개월만 더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니 계약기간 만료 전에 해고되었고 이후 G씨는 경력단절되었다.

임신·출산·양육 때문에 경력단절이 일어난다는 일반적인 분석으로는 위 여성들의 경력단절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여러 여성들의 경력단절 상황과 맥락을 살펴보니 임신·출산·양육은 계기였을 뿐 경력단절은 성차별, 비정규직, 노동조건 등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제일자리'로 메워지지 않는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

연령대별 성별 경제활동참가율 및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 (단위 : %, 만원) 경력단절 이전인 25세이상 30세미만 여성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38.2% 수준이지만, 경력단절 이후인 40대 여성의 비정규직 비중은 61.6%로 늘어났다
연령대별 성별 경제활동참가율 및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 (단위 : %, 만원)경력단절 이전인 25세이상 30세미만 여성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38.2% 수준이지만, 경력단절 이후인 40대 여성의 비정규직 비중은 61.6%로 늘어났다 새사연

두 가지 일을 하는 U씨는 하루에 공공근로 4시간, 의류매장 '아르바이트' 8시간 총 12시간동안 일을 하고 있다.

"오전에는 공공근로로 한 4시간 근무하고요. 끝나고 나서 점심에 애들 밥 챙겨놓고 잠깐 쉬고 그리고서 곧장 의류매장으로 8시간 아르바이트 나가는 거죠. 지금 일하면서 제일 힘든 건 아무래도 임금. 너무 최저임금 수준이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는 많이 받아야 5천 원 간혹 6천 원 주는 데는 식당이거나 굉장히 힘든 곳이에요. 6000~7000원 주는 데가 있긴 한데 가보면 그만큼 또 힘들어요. 많이 받아야 5천원 선이다보니까 임금은 적고 근무시간은 너무 길고 그렇죠."(40대 중반, U)

시간제일자리 하나만으로는 생활 유지가 힘든 U씨는 생활유지를 위해 여러 개의 일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시간제일자리의 현실에 있다. 최저임금수준인 데다 그에 비해 일은 고되다.

"처음에 생각했던 거랑 현실적으로 다르구나. 수업 수에 따라서 임금이 책정되는데, 수업을 많이 해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출근은 오전 9시에 하지만, 아이들 수업은 학교 끝나고 오후 2시 이후부터 하거든요. 일하기 전에는 아이들 교육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침 조회 회의 등 부수적으로 드는 시간이 많았어요. 영업이나 상담도 해야 하고. 일이 너무 늦게 끝나니까 내 아이를 케어할 수가 없었어요. 돈 벌기 위해서 일을 시작했는데 늦게까지 일하지 않으면 돈이 적었어요. 평균 오후 10시까지 일을 해야 어느 정도 수준이 되더라구요. 아이 때문에 오후 7~8시에 끝내고 돌아오면 월급이 적었어요."(30대 중반, P)

아동전문 방문교사인 P씨는 평균 오후 10시까지는 수업을 해야 '적지 않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늦게까지 일하면 일·가정양립을 포기할 수밖에 없고, 일·가정양립을 위해 노동시간을 줄이면 임금이 낮아지는 딜레마적 상황에 놓인다.

"파트타임도 힘드니까 많이들 그만 둬요. 한 달 만에 그만 두시는 분도 계시고. 어떤 경우냐면 애들 유치원 보내놓고 일하러 왔는데 갑자기 아이를 돌보러 가야하는 거예요. 파트타임이면 4시간인데 그 사이에도 아이들 때문에 중간 중간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40대 초반, J)

학교 급식조리원인 J씨는 파트타임으로 시작해서 현재는 전일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4년 가량 일하면서 갑자기 아이를 돌보러 가야 하느라 파트타임 일도 여의치 않아 그만두는 분들을 봤다고 한다.

"동생 애 봐주려고요, 저처럼 이것저것 전전하지 않게"

위의 U, P, J씨의 사례를 통해서 여성노동문제의 대안을 시간제일자리에서 찾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여성이 지속적으로 일하기 위한 조건은 굳이 시간제일자리가 아니라 적정노동시간과 적정임금의 일이다.

여성노동자에게 파트타임이든 전일제 노동이든 일∙가정양립을 위해서는 각 노동자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상황과 여건을 충분히 고려한 정교한 정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단순히 시간제 일자리만 많이 만든다고 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여동생들한테 내가 아이 봐 줄 테니까 일 할 수 있으면 하라고 해요. 제가 경험해봤기 때문에 동생들이 애기 낳으면 키워준다고 얘기하죠. 저처럼 이것저것 전전하지 않게."(40대 초반, J)

인터뷰를 마친 뒤에도 여운이 오래 남았던 이야기이다. 경력단절 경험을 거울삼아 동생에게 경력단절을 대물림 시키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무엇인지 고민된다. 여성의 경력단절은 J씨나 동생의 고민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응답해야 할 모두의 문제이다.
#경력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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