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시의 한 가구공장에서 한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버마 이주노동자 K씨는 이곳에서 3개월 동안 일했지만,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했다.
선대식
[기사 수정: 14일 오후 6시 49분]버마 이주노동자 K(24)씨는 며칠 전 고향에 전화했다. K씨는 부모님에게 "돈을 부쳐 달라"고 했다. 한국으로 돈 벌러 간 아들이 돈을 부쳐달라고 하자, 부모님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되물었다. K씨는 "한국에서 3개월 동안 일하면서 5만 원을 받았다, 이마저도 2명의 이주노동자와 함께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버마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생활했다"고 토로했다. 그의 부모님은 할 말을 잃었다.
K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K씨와 버마 이주노동자 2명은 경기 안산시에 있는 B사의 가구공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껏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가 가장 잘하는 한국말은 "사장님, 우리 월급 언제 나와요?"다.
이들은 또한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감내해야 했다. 매일 오전 7시 30분께 일을 시작해, 늦은 밤에야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2~3번 쉬었다. 몸과 마음은 이미 곪을대로 곪았다. K씨는 "큰 기대를 품고 한국에 왔는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난 12일 회사에서 나왔다. 현재 인천 부평구의 한 버마 절에서 생활하고 있다. 새로운 직장을 찾기까지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 K씨를 돕고 있는 버마 인권활동가 소모뚜씨는 "버마 이주노동자들이 3개월 동안 착취당하고 노예 생활을 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온 19년 전과 별반 달라진게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3개월간 월급 대신 '식료품 2만원과 용돈 3만원' 받아기자가 K씨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일 밤 소모뚜씨 사무실에서였다. K씨를 비롯해 앳된 모습의 버마 이주노동자 3명이 쭈뼛쭈뼛 사무실로 들어섰다. 소모뚜씨가 버마말로 "저녁을 먹었느냐"고 묻자, 이들은 일을 마친 뒤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3000원어치를 시켜 나눠 먹었다고 답했다. 소모뚜씨는 이들에게 버마식 쌀국수 몽힝카를 내밀었다. 이주노동자들은 3분 만에 허겁지겁 자신의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K씨는 버마 수도인 양곤 인근의 농촌지역인 바고에서 나고 자랐다. 농사일을 하던 그는 집안에 도움이 되고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지난해 1년 동안 농사일을 포기하고 도시에서 한국어 공부를 했다. 많은 돈을 썼지만, 기대가 컸던 탓에 한국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는 "민주화된 한국은 외국인 차별이나 착취가 없는 좋은 나라라고 들었다"고 전했다.
특히, 고용계약서는 K씨에게 '한국은 좋은 나라'라는 인상을 심어줬다. 지난해 10월 K씨와 회사가 맺은 계약서에는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8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는 쉰다고 나와 있다. 그해 최저임금인 시간당 4860원이 적용돼, 한 달 월급은 101만5740원이었다.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도 있었다. K씨는 "버마 고급인력의 월급이 20만~3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고향에 큰돈을 부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18일 인천공항에 내렸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2박 3일 동안 교육을 받은 뒤, 곧바로 일했다. 하지만 첫날인 21일부터 고용계약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토요일인데도 회사는 그에게 일하러 나오라고 했다.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한 일은 밤 9시 30분이 돼서야 마무리됐다. 일요일인 이튿날에도 일해야 했다.
같은 달 24일에는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일했다. K씨는 "일을 안 하겠다고 하면, 사장은 '버마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며 "사장은 노골적으로 밤늦게까지 일을 시키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강도 높은 노동은 계속됐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했다. 공장을 가득 채운 톱밥도 K씨를 힘들게 했다. 그래도 고향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근근이 버텼다.
지난 1월 15일 첫 월급날.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다. K씨는 사장에게 월급을 달라고 말했지만, 사장은 "곧 주겠다"고 답했다. 며칠 뒤 "돈이 없어 먹을거리를 살 수가 없다"고 하자, 유아무개 사장은 슈퍼마켓에서 3만 원어치의 라면·달걀·우유 등을 이들에게 사줬다. 이어 "용돈을 하라"며 1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넸다.
설 연휴 후, K씨는 다시 사장과 만났다. 유 사장은 "가구가 팔리면 월급을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가구가 모두 팔려나갔지만 월급을 들어오지 않았다. K씨는 "인력사무소를 통해 일하러 오는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매일 일당을 준다"면서 "우리에게 돈을 주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도 돈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K씨를 비롯한 이주노동자 3명은 겨우내 단 5만 원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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