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많은 정치인이 참석했다. 여수MBC사장을 포함해 박준영 전남도지사, 이성웅 광양시장, 주승용, 이낙연 전남도지자 예비후보등이 참가해 인사말을 건넸다.
심명남
드뎌 기다리던 출전의 날이 왔다. 섬진강에 도착하니 많은 차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섬진강에는 매화꽃이 활짝 폈다. 하얀 매화와 붉은 매화가 울긋불긋 꽃망울을 터트렸다. 봄기운이 절로 난다.
이날 여수MBC와 MBC경남이 주최한 '섬진강 꽃길 마라톤대회'는 전국에서 4000여 명의 마라톤 동호인이 참가했다. 풀코스와 하프코스, 10km, 5km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됐다.
사회자의 진행으로 가벼운 몸풀기가 끝나자 정치인 소개가 이어졌다. 이날 주최 측인 윤영욱 여수MBC 사장을 비롯해 박준영 전남도지사, 이성웅 광양시장, 주승용, 이낙연 전남도지사 예비후보 등이 참가해 인사말을 건넸다. 특히 광양시장의 인사말은 뇌리에 확 꽂혔다.
"팔봉산에서 만덕포구까지 220km에 이르러 매화꽃 향기가 넘칩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이 대회에 참가해 주실 것을 부탁 드리고 이 대회를 빠른 시간 내 국제대회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하지만 좋은 것은 딱 여기까지. 대회시작과 함께 약 10분 간격으로 출발이 이어졌다. 정치인들이 누르는 출발 폭축 속에 풀코스 주자들의 힘찬 레이스가 펼쳐졌다. 이어 하프주자는 그 뒤를 이었다. 나도 730여 명의 일행에 섞여 뛰기 시작됐다.
자신감이 넘쳤다. 하프쯤이야 아직 녹슬지 않았다는 것을 꼭 이 대회에서 꼭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마라톤은 후반이다. 하지만 초반에 뒤쳐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앞으로 치고 나갔다.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이 기분! 죽여준다.
출발선 비포장길을 벗어나니 오르막이 나왔다.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약 2km를 지나자 선두그룹이 180도 방향을 틀어 우리를 보고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막 소리를 질렀다.
"잘못 왔소. 턴하시오. 여긴 풀코스 길이요. 하프코스가 이 길이 아닌가베."굴욕이었다. 그 소리에 뒤따르던 주자들은 즉시 방향을 틀었다. 선두그룹을 뒤따라 갔다. 왕복 4km를 되돌아가니 출발선이 보였다. 알고 보니 하프코스는 출발선을 지나 약 150m에서 오른쪽 길로 턴을 했어야 했다. 오르막을 넘으면 안 되는데 아무런 안내판을 두지 않아 풀코스 주자를 따라간 게 화근이었다. 현장에선 참가선수들의 격한 불만이 빗발쳤다.
"이래 가지고 무슨 국제대회 나불거려. 참 한심한 *들!" 힘이 쭉 빠졌다. 좋은 날씨에 기록을 기대했던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또 분을 삭이며 달려야 했다. 처음부터 코스가 틀리니 중간 중간 거리를 알리는 안내표시판의 숫자도 맞지 않았다. 주최 측에선 부랴부랴 4km를 뺀 거리를 조정한 듯 싶었다. 그래서 반환점이 어디인지도 분간이 안 됐다.
한참을 가니 안내원이 반환점이니 돌아가라고 일려 줬다. 10.5km에서 찍어야 할 반환점 확인 전자센서는 유턴 후 한참 만에야 보였다. 거리가 제대로 맞을리 없다. 한마디로 규정을 어긴 개판이란 말 밖에 달리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다. 하지만 결승점을 통과하니 기분은 좋았다. 전광판엔 1시간 22분의 기록이 찍혔다. 지금까지 나올 수 없는 기록갱신이었다. 급조해서 거리조정을 한 탓에 거리가 맞지 않아 기록이 당겨진 셈이다. 기록상으로 약 2km의 거리가 사라졌다고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최악의 하프코스... 항의 빗발, 참가비 반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