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어 2호 발사 장면이 위성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위성 시대에 들어갔다
중국위성왕
10월 1일에는 중국의 달 탐사위성인 '창어(嫦娥) 2호'가 시창(西昌)위성발사센터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이 위성의 목적은 달 선회비행으로 2기로 예정된 착륙을 위한 전 단계였다. 3기 공정은 달 표면 물질을 채취해 복귀하는 것이었다.
1969년 미국이 달 착륙에 성공한 이후 어느 나라도 진행하지 않았던 달 프로젝트를 2020년까지 목표로 추진하는 것은 중국의 과학기술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자, 우주시대 개척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1월 5일 새벽에는 타이위앤(太原) 위성발사센터에서 장정로켓을 추진체로 중국의 두 번째 기상 위성 '펑윈(風云) 3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중국의 우주 계획은 이후에도 지속해서 추진되어 2013년 12월 14일에는 '창어 3호'에 실려 우주로 온 옥토끼호가 달 표면에 착륙에 성공해 미국, 소련에 이은 달 착륙국가가 됐다. 옥토끼호는 큰 기온 차로 인해 2주일 만인 27일 '굿나잇 인류여, 굿나잇 인류여'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긴 휴면에 들어갔지만 100% 중국산이라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는 큰 자부심으로 남았다.
또 다른 우주계획으로 2011년 9월 우주정거장인 톈궁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2013년 6월 23일에는 톈궁 1호와 선저우10호가 도킹에 성공해 본격적인 우주 정거장 시대를 열기도 했다.
11월 23일에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 명백한 무력행사여서 한반도 상황이 다시 급속히 냉각됐다. 26일에는 인민일보 계열의 국제시사신문인 <환치우스바오(환구시보)>가 북한을 맹비난하는 사설을 실었다. "북한은 사실상 독약을 마신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적으로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교착 사태에 빠진 북핵 6자 회담을 조기에 추진하기로 하고, 분주히 움직였다.
포격 사건을 전후해 나는 다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나라일터를 통해 새만금군산경제자유구역청에서 중국 관련 전문 인력을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제법 높은 직급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응시했는데, 의외로 합격했다. 내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진 분야는 투자 유치보다는 관광객 유치 등 곧바로 결과를 낼 수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경제청은 그 분야보다는 투자유치 본연의 역할을 중시해 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내 첫 역할은 새만금을 방문한 톈진 빈해신구 간부들의 통역과 안내였다. 이때 방문단의 가장 높은 직위는 쉬따통 상무위 주임이었다. 그는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중국 최대 경제특구인 빈해신구의 서열 5위 정도의 위치였다. 그 자리를 통역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한마디다.
"먼저 친구가 됩시다." 교류나 실질적인 일을 하기 전에 더 친해지자는 이 말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 이 말을 제목으로 칼럼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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