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루 운하 걸어서 한 바퀴, 왜 안 될까?

[홋카이도행 설국 버스를 타다 ⑦] 오타루

등록 2014.03.25 09:50수정 2014.03.2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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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하 옆의 창고와 식당
운하 옆의 창고와 식당이상기

정오가 가까워오자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간다. 그래선지 도로에 눈이 녹는 것이 보인다. 2월말이면 낮에 눈이 녹으면서 도로가 지저분해진다고 한다. 우리는 린코센(臨港線) 거리를 따라 오타루 운하 쪽으로 간다.

중간에 사카이하마(堺浜)다리 근방에서 차를 내린다. 운하 건너편으로 대동(大同) 창고와 오타루 운하식당이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걸어서 아사쿠사(淺草) 다리로 이동한다. 그곳이 운하 관광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아마쿠사 다리 건너에는 오타루 관광안내소가 있다. 나는 먼저 관광안내소로 들어가 오타루 관련 자료를 몇 가지 얻는다. 우선 일본어로 되어 있는 오타루 관광안내 책자를 살펴본다.

오타루의 정서, 체험, 음식, 숙박을 소개한 책자로, 가운데 지도가 있다. 그리고 오타루 오르골당을 소개하는 책자가 있다. 오타루 사람들은 오르골을 오타루를 찾아온 천상의 음악이라고 한다.

 도로에 녹아내리는 눈
도로에 녹아내리는 눈이상기

그런데 자료를 보니 오르골이 독일어 오르겔(Orgel)에서 온 것 같다. 그리고 오르겔은 오르간을 말한다. 그렇지만 여기서 오르골은 음악상자(Music Box)를 뜻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자료는 베네치아 공예관을 소개하고 있다. 공예관에는 베네치아의 역사와 예술을 알 수 있는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베네치아에서는 특히 무라노 섬에서 생산한 유리공예품이 가장 유명하다. 공예관 건물은 르네상스 양식이다.
 
관광안내소를 나오니 운하를 따라 사람들이 걷고 있다. 아사쿠사 다리 위로는 눈이 녹아 질퍽거린다. 지붕 위 얼음이 녹아 떨어지니 고드름에 주의하라는 간판도 보인다. 2월말이 되면 홋카이도에서도 눈이 녹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도가  아닌 일반도로의 눈이 녹으려면 아직 멀었다. 나는 오타루 운하를 제대로 보기 위해 운하를 따라 주오(中央) 다리 쪽으로 걸어간다.  

오타루 운하 즐기기

 오타루 운하
오타루 운하이상기

오타루 운하는 이제 다리 때문에 화물선이 다닐 수 없는 죽은 운하가 되었다. 사카이하마에서 기타하마(北浜)까지 운하는 존재하지만 관광용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오타루 운하 크루즈가 운행될 뿐이다.


운하의 북쪽으로는 창고 건물들이 있어 과거 이곳에서 화물이 내려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리 근방에는 인력거꾼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가한 분위기다.

오타루는 메이지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어촌에 불과했다. 그러나 1880년 삿포로 오타루간 기차가 개통되면서 항구도시로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1899년부터는 오타루가 미국, 영국, 러시아와 교역하는 무역항이 되었다. 오타루의 상징 오타루 운하는 1923년(大正 12년)에 완성되었다. 배에 실은 화물을 쉽게 내려 창고에 보관할 목적으로 해안을 매립해 만들어졌다.


 오타루 운하의 인력거꾼
오타루 운하의 인력거꾼이상기

운하가 도시 북쪽 항구에 면해 있기 때문에 오타루 운하 또는 북쪽 운하(北運河)라 불리게 되었다. 오타루 운하는 폭이 40미터로 소형 선박만 운행할 수 있었다. 1920년대까지 오타루와 삿포로는 비슷한 인구를 가졌지만, 그 후 오타루는 삿포로의 관문항으로 그 위상이 낮아지게 된다. 현재 홋카이도와 오타루는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다.

오타루는 1958년 인구가 20만이 넘어 최대를 기록한 후, 점차 인구가 줄어들었다. 이것은 오타루항의 쇠퇴와 관련이 있다. 1960년대에는 오타루 운하를 매립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그것은 운하가 폐수로 인해 악취만 풍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오타루 운하의 일부를 매립하고, 일부를 남겨 관광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오타루의 인구는 12만 6천 8백 명이다.

 얼어 붙은 운하
얼어 붙은 운하이상기

그런데 오타루 운하를 걸어서 한 바퀴 돌 수는 없다. 왜냐하면 바다 쪽으로 창고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운하의 남쪽 길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간다. 길은 주오 다리, 류구(龍宮) 다리, 기타하마 다리로 이어진다. 운하 주변에는 아직도 눈이 높게 쌓여 있다. 창고의 지붕에는 눈이 흘러 내려 처마에 고드름이 길게 매달려 있다. 주오 다리를 건너면 오타루 항구로 나갈 수 있지만 시간이 없어 포기한다. 시간이 있으면 오타루 운하박물관도 보고 싶은데 안타깝다.

사카이마치도리의 상점들과 유리(硝子) 가게들

 사카이마치도리의 제과점
사카이마치도리의 제과점이상기

우리는 걸어서 사카이마치도리로 이동한다. 사카이마치도리는 과거 구보(久保) 상점, 기타이치(北一) 유리, 다이쇼(大正) 유리 같은 기업이 번창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건물들이 대부분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점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베네치아 유리공예관, 오르골당 등이 생겨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이치와 다이쇼 건물은 역사적 건조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길을 따라 동쪽으로 가면서 다이쇼 유리 본점, 오르골당, 음식점, 공방, 제과점, 기념품점이 이어진다. 이들을 잠깐 스쳐만 가도 시간이 꽤나 걸린다. 우리는 이제 메루헨 교차로에 이른다. 여기서 메루헨은 독일어 매르헨(Märchen)의 일본식 발음이다. 매르헨은 동화(童話)를 뜻한다. 이곳이 아기자기하고 동화적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조야토와 르 타오 본점
조야토와 르 타오 본점이상기

이 교차로 주변에는 르 타오(Le Tao) 본점, 오르골당 본관, 사카이마치 우체국, 등대, 카페, 캐릭터 하우스 등이 있다. 나는 먼저 조야토(常夜燈)로 불리는 등대를 살펴본다. 이 등대는 오타루 세관을 밝히는 등대로 1871년 세워졌다고 한다. 길 건너에는 매 15분마다 증기를 내뿜는 증기 시계가 서 있다. 이것을 보고 우리는 오르골당 본관으로 들어간다.   

오르골 전시관

 오르골당 내부
오르골당 내부이상기

오타루에는 오르골 전시관이 여럿 있지만 이곳 본관이 가장 크고 유명하다. 이 건물은 1912년 미곡상 창고로 지어졌다. 2층의 붉은 벽돌 건물로, 현관 부분을 르네상스 양식의 아치형으로 처리했다. 이곳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 9m 높이의 대형 홀이 펼쳐진다. 그리고 벽 쪽으로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오르골당은 가운데 1개의 대형 전시 코너, 사방으로 2층에 네 개의 전시 코너가  있다.

나는 가운데 대형 홀을 한 바퀴 돈다. 이곳에는 유리로 만든 오르골 기념품이 많다. 그리고 상감 세공을 한 보석상자도 있다. 2층으로 올라가자 다양한 형태의 오르간이 보인다. 벨기에에서 들어온 페어 그라운드(Fairground)도 있고, 오르페우스(Orpheus)도 있고, 축음기 형태도 있다. 포터(Porter)라는 제품도 보인다. 이들은 가격이 몇 천만 원씩이나 한다. 한 마디로 전시용이다.

 앤틱 뮤지엄
앤틱 뮤지엄이상기

나는 오르페우스 오르간에서 나오는 파헬벨의 카논을 잠시 들어본다. 일본 사람들은 오르골에서 나오는 소리를 천상의 음악이라고 부른다. 젊은 관광객이 그 소리에 끌려 스마트폰으로 그 음악을 녹음하기도 한다. 이곳을 지나 다른 쪽으로 가니 옛날식 저울과 선풍기도 보인다. 이들은 오르골과 직접 관련은 없으나, 옛날 미곡상에서 쓰던 물건이어서 전시해 놓은 것 같다. 오르골을 실컷 본 나는 이제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멀지 않은 오르골 2호관 앤틱 뮤지엄(Antique Museum)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제작시기가 오래된 가치 있는 오르간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1890년 제작된 콘솔형 오르간 스텔라도 보이고, 1924년 제작된 스타인웨이(Steinway)도 보인다. 또 파이프 오르간도 있고, 피아노 형태의 오르간도 보인다. 이곳은 판매보다는 전시목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뮤지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베네치아 유리공예관

 베네치아 유리공예관
베네치아 유리공예관이상기

이들을 보고 나서 아내와 나는 사카이마치도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과자도 얻어먹고 초콜릿도 얻어먹는다. 그리고는 마침내 베네치아 유리공예관으로 들어간다. 이 건물은 1988년 완공되었고, 1989년부터 꾸준히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지금도 '환상적 가면축제의 세계'라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베네치아 카니발을 위해 제작되었던 가면과 의상, 유리 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상설전시장이 있어 귀족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볼 수 있다. 중세 귀족의 거실, 침실, 서재, 식당 등이 재현되어 있다. 그 외 곤돌라도 있고 유리제품도 있다. 유리 제품은 색깔이 들어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들을 보고 나서 5층 카페로 올라가 차를 마시며 잠시 쉴 수도 있지만, 패키지 여행에서 그럴 시간여유가 없다.

 유리공예품
유리공예품이상기

우리는 1층으로 내려와 마지막으로 유리공예품을 살펴본다. 정말 대단한 기술과 예술성이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유리공예로 재현하기까지 한다고 한다. 이곳의 유리제품은 예술성은 높지만 가격은 비싼 편이다. 우리는 이들 유리공예품과 작별을 고하고 다시 거리로 나선다.

길가 건물 창문 아래 배 모양으로 만든 화분받침이 눈에 띈다. 이를 통해 오타루가 항구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곳 오타루에서 점심을 먹고 삿포로로 떠날 것이다. 삿포로에서는 아사히 맥주공장을 견학하고, 홋카이도 도청사에 들러 홋카이도 개척사를 살펴볼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홋카이도의 중심도시 삿포로로 들어간다. 
덧붙이는 글 이번 기사에서는 오타루 운하의 과거와 현재, 오르골과 유리공예품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 오타루는 항구 도시여서 외래문물을 자연스럽게 수용할 수 있었고, 그것을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오타루는 또한 영화 [러브레터]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오타루 #오타루 운하 #사카이마치도리 #오르골당 #베네치아 유리공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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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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