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EPA-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해 4월 20일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을 가로막았던 장애를 제거하고 시성절차 개시를 승인했다. 라틴아메리카 교회의 요구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97년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을 검토하도록 지시하고, 이듬해 로메로 대주교에게 '하느님의 종' 칭호를 부여했다. 그러나 당시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라칭거 추기경은 로메로 대주교의 입장이 해방신학처럼 '좌파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내켜하지 않았으며, 그가 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선종에 따라 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되면서, 이 사안은 더 이상 추진하지 못한 채 묻혀 버렸다.
현재 도로시 데이와 로메로 대주교는 시복 직전 단계인 '하느님의 종'에 머물고 있다. 도로시 데이와 로메로 대주교는 물론 '공식적인' 성인이 되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자선을 베푸는 성인을 넘어서 세상을 바꾸는 성인을 요구하고 있다. 도로시 데이와 로메로 대주교가 '성인품'에 오른다면, 해방신학에 대한 교회 내 논란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변혁적 삶이 교회 안에서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사람들에게 상기시킬 것이다.
로버트 엘스버그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이란 책에서 '성인'에 대한 우리의 습관적인 생각을 바꾸어 주었다. 우리는 보통 성인들이란 결점이 없이 완벽하며, 기적을 행했고, 교회 안에서 생을 보냈으며, 고통 받을만한 기회를 열심히 찾고, 일찍 세상을 뜬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엘스버그는 "성인은 그들의 고행과 환시와 행적 때문이 아니라 사랑과 선함에 대한 탁월한 역량 때문에 성인"이라고 말했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일 텐데, 성인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상기시켜 주는 사람들, 그들의 사랑과 용기, 그리고 내적인 조화가 보통의 인간성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사람이 취해야 할 바를 알려주는 기준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느끼고,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며, 아마도 그들의 내적인 빛남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로메로 대주교의 시성은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로운 삶과 신앙의 기준을 제시할 것이다.
엘살바도르 민중들에게 순교로 간주된 그의 죽음군사정권이 통치하던 엘살바도르에서 하느님 백성은 '하느님 없음'을 경험했다. 이런 상황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교회는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면서 가난한 이들을 대변하고, 인권을 옹호하다가 우익 암살단에 의해 미사 중에 살해당했다. 그의 죽음은 엘살바도르 민중들에게 곧바로 '순교'로 간주되었고, 그동안 사회정의를 위해 투신하고 압제에 저항하는 교회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그는 '자기 땅에서조차 유배당한 사람들'에게 '하느님 있음'을 상기시킨다.
로메로 대주교가 살해당하기 바로 전날인 3월 23일은 사순 제1주일이었다. 이날 미사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군인들을 향해 "형제들이여, 그대들도 우리와 같은 민중입니다. 그대들은 그대들 형제인 농민을 죽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찬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한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들의 아픔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요구하고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로메로 대주교는 살해당하기 직전에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순교는 은총"이라면서 "내 피가 해방의 씨앗이 되고 곧 현실로 다가올 희망의 표징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례력에 따른 그날 복음말씀은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라는 구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