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아베, 어쩌면 이렇게 닮았나

[탈핵의원 김제남의 일본 방문기③] 원전 고수하는 정부와 탈핵 시도들

등록 2014.03.25 16:46수정 2014.03.25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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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남 의원(정의당)은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의 대표의원이며, 후쿠시마 3주기를 맞아 일본 의회 내 원전제로회의 초청으로 3월 4일부터 3일간 일본 의회와 후쿠시마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한국 국회의원으로서는 처음으로 후쿠시마 현장을 확인한, 20년 환경운동가 출신 탈핵 국회의원의 일본 방문기를 3회에 걸쳐 게재하고자 합니다. - 기자 말

1936년에 완공했다는 일본 의회 건물 안은 어둑했다. 설치되어 있는 조명등의 3분의 1은 꺼져 있었다. 조도를 측정할 수는 없었지만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절전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500럭스 조도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국회 사무실의 조도를 1000럭스에서 500럭스로 낮추었는데 이와 비슷할 것 같았다.

작년 5월 독일 바이언주에 있는 에너지자립도시 빌트폴츠리드시의 시장을 만나기 위해 청사를 방문했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비가 와서 시청사 건물 안은 낮이라도 어두웠지만 그 누구도 조명을 켜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도시가 소비하는 전력의 5배 이상을 태양광, 풍력으로 생산하면서도 절전은 곧 발전이라는 것을 습관처럼 실천하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지난 4일 일본 의회 원전제로회 초청으로 일본 의회를 방문해 소속 의원들을 만났다. 자민당, 민주당, 사민당을 포함해 9개 정당과 무소속의원 64명이 참여하는 초당파 의원모임이다. 공동대표는 자민당의 고노 타로 중의원과 민주당의 곤도 쇼이치 중의원이 맡고, 무소속의 아베 토모코 중의원이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방사능물질에는 국경이 없다"

일본 의회 원전제로회는 2012년 3월 27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정치가 해야 할 첫번째는 원전제로로 향하는 정책결단에 있다'는 취지에 공감한 여야 의원이 초당파로 모여 출범했다.

한국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의원들로부터 '원전을 줄이자'는 목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일본에서 여야와 당파를 초월해 '탈원전'을 내거는 의원들이 뭉쳐 있다는 것이야말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주는 소중한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원전제로회 각 당파를 대표한 10여 명의 의원들은 한국에서 온 의원들을 환영하는 만찬 자리를 열어주었다.

필자는 인사말을 통해 "핵발전소는 국경이 있지만 방사능물질은 국경이 없습니다. 원전진흥을 계속하는 한국, 일본, 중국은 세계가 탈핵의 길을 걸으며 급속히 사양의 길로 내리막을 걷는 원자력산업과 핵마피아를 생존시키고 있습니다. 후쿠시마의 교훈처럼 한 번의 핵발전소 사고는 인류와 지구에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겨줍니다. 국경을 넘는 핵 재앙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 미래세대에게 나쁜 유산을 남기지 않기 위해 국경을 넘어서는 정치의 힘과 역할이 필요합니다"고 이번 방일의 취지를 설명했다.


또한 "오늘 아시아의 생명평화, 지속가능한 에너지 비전을 만드는 데 뜻을 같이하는 한일 의원 간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국경을 넘어서는 한일 의원 간의 탈핵외교, 탈핵의원모임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올 가을에 한국 국회에서 '탈핵아시아'를 본격 논의하는 국제 심포지움이 열릴 수 있도록 협력하면 좋겠습니다"고 했다.

이에 대표인 콘도 쇼이치 의원은 "김제남 의원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는 의미로 술잔을 모두 비우자"고 건배를 제안하며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비핵 의원모임으로 추진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는 의견을 냈다.

 원전제로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아베 토모코 의원(파란색 자켓)과 필자. 이번 방일은 아베 토모코 의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이뤄졌다.
원전제로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아베 토모코 의원(파란색 자켓)과 필자. 이번 방일은 아베 토모코 의원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해 이뤄졌다.김제남

아베 토모코 의원은 "독일이 '탈핵'이라는 정치적 결단을 하면서 '위험한 것으로부터 차례로 폐로해 나간다'는 정책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원전제로회는 일본 원전 50기에 대한 위험도 평가를 전문가 자문과 정보를 받아 실시했다"고 활동을 소개했다.

 원전제로회가 발간한 일본전국 원전위험도 순위 보고서
원전제로회가 발간한 일본전국 원전위험도 순위 보고서

2011년 5월 독일은 '탈핵국가'를 천명하며, 17기 핵발전소를 2022년까지 전원 폐로하기로 하고, 가장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한 8기를 즉각 폐로하기로 결정했다. 원전제로회는 사고가 난 후쿠시마 핵발전소를 비롯해서 지진 등의 피해를 입은 발전소와 활성단층대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 28기를 즉시 폐로 해야 하는 위험한 핵발전소로 평가했다. 나머지 22기는 9개 항목별 평가로 위험도 순위를 매겼다.

 방일 의원단과 간담회 중인 일본 의회 원전제로회 소속 의원들
방일 의원단과 간담회 중인 일본 의회 원전제로회 소속 의원들 김제남

원전제로회는 원전 전환을 위한 7개 핵심과제별로 담당 의원을 두고, 원전 제로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제로를 추진하는 정책제안과 '폐로 촉진법'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폐로로 인해 핵발전소 입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극복할 수 있도록 '폐로 지역 진흥 특별조치법'을 냈다.

원전제로회는 아베 정부의 원전 재가동을 담은 에너지기본계획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과 정책제안을 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반성과 교훈으로 삼지 않고, 원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로드맵이 없고, 원전제로 민의를 존중하는 국민 참여 의사결정 절차를 보장하지 않았고, 지구온난화 대책과 지속가능한 사회경제를 향한 에너지 비전이 없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핵발전소를 중요 기본 전력원, 경제성장 전략으로 삼은 원전 재가동 계획을 철회하고, 원전 제로의 길을 제시한 정책제언을 냈다.

그러나 아베 정부는 지난 2월 25일 후쿠시마 원전사고 당시 민주당이 내건 '원전제로' 방침을 뒤집어, 원전개가동을 담은 에너지기본계획 정부안을 확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원전정책은 원전안전 제일, 국민여론수렴을 우선하겠다'는 약속을 뒤집고 올해 초 원전확대 에너지기본계획을 밀어부친 것과 똑같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당시 집권 민주당 간 총리는 '원전 제로' 에너지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제산업성 에너지청을 비롯한 원전진흥관료, 원전업계 등 원전마피아가 수십 년 동안 만들어 놓은 커넥션 구조를 깨는 것에 실패하고 사퇴했다.

그나마 간 총리가 해 낸 일은 2011년 8월 30일 사퇴에 앞서 재생에너지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전력회사가 고정가격으로 구입하는 제도(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전력회사가 의무적으로 kw당 42엔에 구입하는 제도)를 통해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원전제로'로 가는 기반을 만들어 놓았다.

후쿠시마 대재앙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일본은 어떤 미래를 향하여 핵 재앙을 극복해 갈 것인가? 아베 정권이 원전을 성장 동력으로 하는 아베노믹스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최근 아베 총리에 대한 일본 국민의 지지도는 40%대로 떨어지고 있다. 이는 아베 총리의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는 국민여론이 반영되었다고 할 만큼 일본 국민 대수가 원전 재가동에 반대한다.

원전 멈췄지만 일본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일본의 원전 가동률은 '제로'다. 그런데 전력의 30%를 생산하던 원전이 모두 멈추었는데 일본의 전력대란은 없다. 지난해 여름 한국에서 핵발전소 시험성적서 위조 등 안전비리 사태로 10여 기가 멈추었을 때 전력 당국은 '초유의 비상사태' '블랙아웃' '전력대란'하며 국민을 겁박하고, 우리 국민은 생땀을 흘리며 초절전에 들어갔었다. 일본은 어떻게 했는데 전력대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전 동경도 환경국장 오오노 테루유키씨를 일본 의회에서 만났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전력위기에 대응하는 동경도 에너지 대책을 수립하고 집행을 이끌었다. 지금은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이 창립한 자연에너지재단 상무이사로 활동 중이다.

 브리핑중인 오오노 테루유키 자연에너지재단 상무이사
브리핑중인 오오노 테루유키 자연에너지재단 상무이사김제남

오오노 테루유키 이사는 "지금 일본은 원전 제로입니다. 앞으로 원전 없이도 에너지 대안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입증한 셈입니다"라며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른바 에너지 전환과 전망을 풀어냈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자 3월 14일부터 15일에 걸친 계획정전을 했다. 그러나 현장에 맞지 않는 방식임이 드러나면서 '15% 의무절전'으로 방침을 바꾸어 추진했다. 그 결과 2011년 여름철에 전력을 18% 이상 줄여 피크전력 위기를 해결했다고 했다. 2012년은 14% 절전, 2013년은 13% 절전을 기록했다.

오오노 이사는 "사고 이후 해마다 도쿄전력이 담당하고 있는 동경과 7개현에서만 1000만kW의 전기를 줄였다. 이는 원전 10기의 전력량이다. 일본의 절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지구온난화대책으로 추진해 온 절전대책이 시스템으로 작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후쿠시마라는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블랙아웃이 올 수 있다며 국민의 생땀을 쥐어짜며 겁을 주던 한국의 전력당국과 다르게 '절전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는 "동경도는 에너지효율도시가 목표다. 2020년까지 25% 에너지 절약을 목표하고 있다. 최근 3년 재생에너지법에 힘입어 태양광 발전량이 3배로 증가했다. 또한 원전 28기분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2800만kW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추고 있다. 다만 송배전망을 독점한 전력회사가 계통연계를 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오오노 이사는 "태양, 바람 등 자연에너지를 기간에너지로 확대하고, 에너지효율화를 하면 원전제로가 이루어진다. 이것이 일본 경제재생의 길이다"고 했다.

지금 일본은 자연에너지발전소와 절전, 지역분산형 전력, 에너지저장시스템, 열은 열에너지로 자립, 시민참여 자연에너지협동조합 운동, 신전력회사 설립 등의 에너지전환으로, 낡고 위험했던 핵발전소 의존 토대를 밑으로부터 걷어내고 탈핵이라는 건강한 생명나무를 심고 있었다.

계속되고 있는 후쿠시마 핵재앙, 이를 극복하는 희망을 일본 의회, 지역, 시민이 탈핵을 통해 봄꽃 피어나듯 피어내고 있었다.
#김제남 #일본 #원전제로회 #후쿠시마 #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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