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폭돔,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져서 부서진 건물을 원폭돔이라고 해서 보존하고, 평화공원을 만들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했습니다.
박현국
26일 오후 히로시마 원폭 돔을 찾아갔습니다. 원폭 돔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17초 히로시마 하늘에 원자폭탄이 터진 곳입니다. 원폭으로 히로시마 사람 약 13만 명이 그해 12월까지 죽었습니다. 이 숫자는 그때 히로시마 시민 5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지금은 원폭 돔을 중심으로 주변은 평화공원으로 만들어져 있고, 한가운데에 희생자 위령비가 있습니다.
이 원폭 돔은 1996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처음 일본에서도 의견이 일치되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의 제안에 미국과 중국이 반대했지만, 지정은 성사되었습니다.
미국은 원폭 사용으로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게 되어 미군의 희생을 막았다고 하여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중국은 일본의 전쟁 가해를 부정하는 목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원폭 돔은 원래 1915년 지어져서 주로 히로시마현립 상품 진열소로 사용되다가 원폭이 떨어지던 때에는 내무성 쥬고쿠시코쿠토목사무소, 목재주식회사 등이 있었습니다. 이곳은 히로시마 시내의 거의 한가운데입니다.
당시 히로시마가 공격을 받은 이유는 군사도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곳은 메이지 시대 이후 육군과 해군의 거점도시였으며, 청일전쟁 때는 대본영과 군 관련 산업 시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히로시마 옆에 있는 구레시(呉市)에는 일본 잠수함 건조 시설이 있습니다.
원폭은 원폼 돔 건물 위 600미터 지검에서 폭발하여 처음 강한 빛을 내고, 0.8초 뒤 초속 440미터 이상의 충격파가 몰아쳤다고 합니다. 원폭 돔의 다른 건물을 모두 부서졌지만 원폭 돔이 있는 부분만 남아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곳 창문이 커서 먼저 유리가 깨졌기 때문이고, 돔은 구리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먼저 녹아버려 건물이 받는 압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원폭 돔은 원폭의 피해를 받았기 때문에 그 뒤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보존 기법을 사용하여 보강하고, 형태를 그대로 둔 채 끊임없이 수리를 하고 있기에 지금처럼 보존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는 나가사키시에도 원폭이 터져서 비슷한 피해를 입습니다. 1945년 여름 일본의 패색이 짙어지는데도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하지 않다가 원폭의 피해를 입습니다. 그 이유는 일본군이 연합군에게 전쟁의 책임을 일본 천황에 묻지 않고, 일본의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조건을 제시하여 협상이 길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8월이 되면 일본 매스컴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와 참상에 대해서만 자세히 보도합니다. 왜 전쟁이 일어났고, 왜 일본이 원폭의 피해를 당해야 했는지, 동북아에서 일본이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전혀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보면 중국이 염려한 대로 자신의 전쟁 책임과 동북아 여러 나라에서 자행한 침략과 살육의 죄악은 개입될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히로시마시는 인구 118만 명의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크기로 대략 일본에서 열 번째 도시입니다. 히로시마시는 평화와 반핵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 피해를 입어야 했는지 먼저 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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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3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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