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 경기도청 앞, 마지막 선전전
금속노조 경기지부
- 말이 5년이지, 쉽지 않은 시간이었잖아요. 해고 기간 동안 가장 힘들거나, 혹시 포기하고 싶던 때가 있었나요?"조합원들이 힘들어할 때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내가 이 사람들한테 괜한 희망을 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회사가 '송기웅 저놈은 회사 안 다녀도 먹고살 만한 놈이다. 당신들은 이용당하는 거다'라고 이간질시키고, 사실 그때 현장 조합원들이 많이 떨어져나갔어요.
인원이 조금 남으니 특히 현장에 있는 조합원들이 회사한테 매일같이 시달리고, 기업노조와 차별 당하고, 임금도 우리 조합원들만 5년 동안 안 오르고…. 그래도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 술 사주고 밥 사주고 '힘내라' 다독거려주고. 제 하소연을 잘 들어주셨어요. 그래서 다시 힘내고, '그래, 해보자'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금속노조 내에서도 그렇고 지역 노동계에서 송기웅 지회장은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나 있어요. 주변에 적이 없다고 할까? 하지만 솔직히 그런 모습이 전부는 아닐 텐데, 스스로 인간 송기웅을 평가한다면요?"2009년 5월 정리해고 되고 나서 첫 집회를 했는데 그때 제가 그랬거든요. '끝까지 가겠다. 약속은 지키겠다'고요. 배신하고, 당하는 일들도 주변에 많고, 자기 잇속들도 먼저 차리고, 또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 당하는데 저는 그런 걸 싫어해요. 사람들과의 의리를 중시하는 것 같아요. 원래 낯을 가리는 편인데, 대신 한번 마음을 주면 끝까지 가죠."
- 결혼 안 하셨죠?"못 한 거죠.(웃음) 해고당하기 전엔 소개도 좀 들어오고, 저도 결혼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딱 해고당하고 나서 소개도 안 들어오고, 이렇게 5년이 지났네요. 어머니랑 같이 사니까 아무래도 어머니가 빨리 장가가길 바라시죠."
- 가족들은 그동안 많이 도와주셨나요? "가족들에 관해서 전 행복한 편이에요. 다들 저를 믿고 지지해주셨거든요. 큰 누이, 작은 누이가 있는데, 재판 이긴 날 너무 좋아서 밥도 안 먹었대요. 어머니한텐 처음 해고되었을 때 딱 한 번 얘기했어요. '아들놈이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니 믿어주십시오' 하고요. 그동안 속상하고 말리고 싶으셨을 텐데, 정말 가족들이 단 한 번도 내색을 안 했어요."
- 이번 판결문의 의미는 무엇일까요?"정리해고 건이 이렇게 승소한 것은 몇 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2007년 처음 구조조정이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희망퇴직을 했고 당시엔 잘 대응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2008년 공장 이전을 한다고 해서 회사에 즉각적으로 고용보장확약서를 요구했죠. 처음엔 회사가 '회사한테 해고도 하지 말라는 소리냐'며 못 써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끈질기게 요구했어요. 그래서 공장이전 합의서에 고용보장확약 내용을 넣을 수 있었죠. 판결문에서 해고가 부당하다고 하는 주요한 근거가 그 확약서예요."
-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을 꼽자면?"우선 현장에서 회사가 온갖 회유와 협박을 했는데도 금속노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 조합원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처음엔 기업노조와 금속노조(산별노조)가 반반이었는데, 저희가 해고된 이후 많은 분들이 금속노조를 탈퇴하고 기업노조에 가입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기업노조 조합원이 200명이 조금 넘고, 저희 조합원이 현장에 7명 남았어요.
그리고 해고되었던, 함께 싸웠던 조합원들이요. 그 우여곡절들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가 있겠어요. 그간 상처들이 해소가 되려나…. 아마 안 될 거예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다 큰 어른들이 스스로 껴안고 극복해야 할 것들이 있죠. 각자의 몫이 있는 것 같아요."
"'고생했다' 한마디에 담긴 수백 가지 의미 잘 알고 있습니다"